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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올라프 Sep 20. 2020

강아지를 잃어버리신 적이 있나요?

"재롱아, 누나가 많이 미안해."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던 무렵 우리 집에서 강아지를 키웠던 적이 있다. 부모님 지인께서 주셨던 강아지로 찐빵 같은 얼굴에 호기심 많은 눈을 갖고 있던 수컷 아기 시츄였다.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좋아하던 여동생은 강아지에게 엄청난 사랑을 주었고 이름을 '재롱이'라고 붙였다. 몸집이 작았던 아기 시절 재롱이가 이불속에서 꼼지락 거리는 모습은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재롱이 이빨이 나기 시작할 무렵에는 나의 발가락을 껌 삼아서 질겅질겅 물어대기도 했다. 개구쟁이 다섯 살 아이처럼 활달했던 재롱이는 가족들의 사랑, 특히 내 여동생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우리 집 막내였다.  


재롱이는 식탐이 많았고 낯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매우 잘 따랐다. 하루는 목줄 없이 한강고수부지 산책을 시키다가 재롱이가 시야에서 사라진 적이 있다. 갑자기 패닉 상태가 된 우리 가족은 "재롱아~재롱아!~" 목 놓아 부르면서 한강고수부지를 뒤졌다. 결국 재롱이를 발견한 곳은 돗자리 펴고 삼겹살을 굽고 있던 어느 소풍 무리에서였다. 고기 냄새를 맡고 홀린 듯 그쪽으로 갔던 모양이다. 재롱이는 먹을 것을 주는 사람들이라면 아무나 졸졸 쫓아가는 못 말리는 철부지였다. 꼬리를 흔들며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삼겹살을 받아먹고 있던 재롱이의 뒷모습을 발견했을 때 느꼈던 황당함이란.. 

"얘가 먹을 것에 정신이 팔려서 주인도 못 알아보고 아무나 쫓아가네" 재롱이를 안고 집에 돌아가면서 아빠가 서운한듯 하셨던 말씀이다.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집에서 첼로 레슨을 하던 날이었다. 집에는 재롱이와 나 둘만 있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선생님께 문을 열어드리고 첼로 레슨을 받았다. 수업을 끝내고 방에서 나왔는데 재롱이가 보이질 않았다. 분명히 선생님 오시기 전까지 나랑 같이 있었는데 머리가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 

선생님께 "선생님, 아까 집에 들어오실 때 재롱이 보셨어요?"라고 여쭤보았다. 선생님께서는 재롱이를 현관문 앞에서 본 기억은 나는데 그 이후 재롱이가 어디 갔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생각해보니 선생님께 문을 열어드리면서 재롱이가 문 밖으로 나갔는데 나는 선생님께서 들어오시자마자 문을 닫은 것 같았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한 시간 동안 레슨을 받은 거였다. 


'큰일 났다.'

안 그래도 낯선 사람을 경계 없이 따라가고 이리저리 탐험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 탓에 산책하다가 재롱이를 잃어버릴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이번엔 나간 지 벌써 한 시간이 흘러서 도대체 어디로 갔을지 짐작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바로 재롱이를 찾으러 나서지 않고 가족들이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저녁 어스름이 내릴 때쯤 엄마, 동생과 나는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면서 재롱이를 애타게 찾기 시작했다.  

"재롱아~ 재롱아~"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물어봐도 본 사람은 없었고 한강고수부지, 구반포, 신반포 단지까지 다 뒤져보아도 재롱이를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재롱이가 워낙 칠렐레 팔렐레 사람들을 잘 쫓아가니까 '어떤 사람이 발견하고 데려갔겠거니'라고 결론지었다. 그렇게 허무하게 우리 가족의 막내 재롱이를 잃게 됐다. 

이 사건으로 내가 부모님께 크게 혼나진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재롱이를 특히 예뻐하던 내 동생이 며칠간 울었다는 것, 그 이후 9년 동안 강아지를 키우지 않았다는 사실만 확실히 기억이 날 뿐이다. 


중학교 2학년 말이었을까 중학교 3학년 초반이었을까. 학교를 마치고 학원을 가다가 동네 동물병원 유리창에서 굉장히 낯익은 시츄 한 마리를 보았다. 양쪽 귀에 초록색 물이 들어있었던 것만 빼면 몇 개월 전 잃어버린 재롱이의 모습과 똑같았다. 강아지는 큰 눈으로 나를 보다가 금세 눈길을 거두고 아래로 떨구었다. 왠지 내 눈길을 피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무리 봐도 재롱이 같았지만 재롱이를 잃어버린 지 몇 개월이 지나기도 했고 양쪽 귀에 초록색 염색이 되어있는 걸로 보아 주인이 있는 강아지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강아지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이내 학원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고 나서 8년이 흘렀다. 


나는 대학생이 됐고 휴학 후 6개월 동안 미국을 다녀왔다. 내가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우리 집은 반포에서 상도동으로 이사를 마친 상태였다. 새로운 집에서 짐을 풀고 정리하다가 인터넷을 사용할 일이 있어서 동생에게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물었다. 


"와이파이 비밀번호 뭐야?" 

"재롱이 678"


"...."


순간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재롱이를 잃어버린 지 벌써 8년이 지났는데, 재롱이가 기억에서 없어진지도 꽤 되는데, 내 동생은 재롱이를 잊지 못하고 있던 거였다. 


가슴이 아려왔다. 미안했다. 


재롱이를 품에 안고 자다가 엄마한테 혼날 정도로 재롱이를 사랑하고 옆에 끼고 살던 동생이었는데, 나는 재롱이를 잃어버리고서도 진심으로 동생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마음은 안 좋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재롱이를 잃어버린 건 내 탓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오지도 않고 경계심 없이 다른 사람을 잘 쫓아간 바보 같은 재롱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시츄는 다른 강아지보다 좀 멍청하대. 멍청하니까 다른 사람들 쫓아갔지. 어디 가서 굶어 죽진 않을 거야. 다른 주인 만나서 잘 살고 있을 테니까"라고 매정한 말을 무신경하게 쏟아내기도 했다.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듣고 나서 나는 8년 만에 재롱이를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당시 나는 우리 집 귀여운 막내 재롱이를 너무 안일하고 편리하게 떠나보냈다. 재롱이를 잃어버리고 상처를 받았을 동생의 마음도 충분히 헤아려주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당시의 나는 재롱이를 부주의하게 잃어버렸다는 죄책감을 애써 외면했던 것 같기도 하다. 가족 구성원이던 사랑하는 강아지 재롱이를 나는 그때까지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다. 


내가 예전 동물병원에서 본 강아지는 재롱이었을까? 재롱이었다면 자기를 부주의하게 보냈던 주인인 나를 알아보고 상처 받은 마음에 눈길을 피한 건 아니었을까? 왜 나는 그때 문을 열고 들어가서 수의사에게 강아지에 대해 물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재롱이처럼 보이는 강아지를 발견하고 나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지만 이내 사그라들었고 재롱이를 오랜 시간 잊고 지내왔다. 그동안 묻어뒀던 미안한 마음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우리 집 강아지 예랑이. 

그로부터 1년 뒤 내 동생은 말티즈 강아지를 분양해왔다. 강아지 이름은 예랑이, 벌써 올해 12살이다. 다행히 예랑이는 재롱이와는 다르게 겁이 많고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않는다. 목줄 없이 산책을 할 때면 총총 명랑하게 걸어가다가도 주인이 따라오는지를 철저히 확인하는 겁 많은 강아지이다.   

시집가기 전까지 동생은 참 예랑이를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 재롱이 생각이 문득문득 날 때가 많았고 그때마다 마음이 짠했다. 재롱이와 함께 했던 짧은 기간 동안 미처 주지 못한 사랑을 예랑이에게 퍼붓는 느낌이었다. 


재롱이를 키우던 때가 벌써 20년 전이니까 재롱이는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너서 하늘나라에 있을 것이다. 먼 훗날 재롱이를 만나게 되면 호기심 많던 큰 눈을 보고 꼭 안아주며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재롱아, 그때 누나가 무신경하게 너를 보내서 미안해. 참 많이 보고 싶었어. 이제는 헤어지지 말고 같이 행복하게 잘 살자. 이제는 누나가 널 놓지 않을게. 사랑해." 


#강아지 #상실 #시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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