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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 쓰는 마음 Oct 27. 2023

탐미적 비극의 의의

사람 잡는 빨간 구두

탐미적 비극이란 어떤 세계인가. 빨간 구두. 사람을 홀리는, 미치게 하는 빨간 구두. 그 새빨갛고 유혹적인 아름다움. 거기에 이끌려서 어머니 장례식장에도 빨간 구두를 신고, 지금껏 사랑으로 돌봐 준 노부인의 임종도 저버리고. 사람을 패륜하게 하는 빨간 구두. 그리고 주목을 받는다.


- 아아, 저 구두를 봐. 저 구두를 신은 아가씨를 봐.


그녀의 허영심은 빨간 구두를 신고 한껏 충족된다. 그런데 문제는, 춤을 멈출 수가 없다. 신을 벗을 수가 없다. 그렇게까지는 원하지 않았는데. 신을 신고, 욕망을 움켜쥐고 얼마간 시간이 흐르니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세상으로 와 버렸다. 무도회에서만이 아니라 가시덤불 속에서도 정신 없이 춤을 춘다. 소녀가 아니라 구두가 주체가 된다. 구두를 욕망하던 소녀는 저 멀리로 밀려났다. 소녀가 더 이상 구두를 원하거나 말거나 구두는 제 욕망을 불사르며 춤을 춘다. 주변에 오는 모두를 걷어차면서. 인간이 아니라 욕망 자체에 드라이브가 걸리면 이렇게 위험하다.

 

소녀가 빼앗긴 주체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제물을 바쳐야 한다. 그래서 발목을 잘라 버린다. 구두를 신은 채로. 구두는 제게 남은 발목을 이끌고 춤을 추며 어디론가 사라진다. 한 번 불이 붙은 욕망은 결코 순순히 떨어지지 않는다. 내 인생에서 가장 어리석은 소비였던 샤넬백처럼. 그게 없으면 곧 숨이 넘어갈 것처럼 꿈에까지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매일 들고 다니는 건 코치백이다. 다만 나라는 멍청이가 꿈에서 깨기 위해서는 먼저 생돈 300만원을 날려야 했다. 그 어리석음의 결과물을 손 안에 쥐기 전까지는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실감할 수가 없으니까. 혹은 기생충의 기우에게 달라 붙던 수석처럼. 그 수석을 버리기 위해서는, 머리가 깨지고 재판정에 서고 동생이 죽고 아버지와는 생이별하는 푸닥거리를 치러야 했다.


이것이 탐욕이다. 주체의 욕망이 주입된 객체는 주체로 성장하고, 결국 주객이 전도된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최고의 악당은 왕비가 아니라, 날마다 그 욕망을 받아 먹고 영향력이 비대해진 거울이다. 그토록 욕망하던 대상을 얻었는데 주체는 불행해진다. 인간으로서의 도리와 행복을 송두리째 바쳐 욕망을 실현한 다음에야 깨닫는다. 아차, 이게 아니었구나.


인간은 꼭 맞아야 아픈 줄을 안다. 하지만 만약 어떤 인간이 맞기도 전에 아픈 줄을 안다면? 그래서 뼈 아픈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그건 현명한 삶도, 진짜 삶도 아니다. 달려들었다가 실컷 얻어 터져야만 한다. 인생의 의미는, 맞으면 아프다는 깨달음이 아니라 맞더라도 좋으니 승부를 보겠다며 덤벼드는 지점에 있으니까. 그래서 욕망을 실현하는 전반부와 욕망으로 몰락하는 후반부는 동일한 비중을 지닌다.


그렇다면 탐미적 비극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간을 계몽하려는 게 아니고, 이 이야기를 보고도 결국 맞을 사람은 맞아야 끝이 나는 결말이라면.  


글쎄. 인간은 살아야 하니까? 인생은 생각보다 기니까? 밥 먹고 똥 싸는 이상의 욕망을 추구하고 싶으니까? 에드몽 당테스가 복수극 말미에서 복수는 허망하구나, 저들을 모두 죽여도 내가 잃은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해서 그 대장정에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그가 복수하기도 전에 감방에서 이미 아아, 복수는 허망하구나, 굳이 탈옥할 이유도 없고 복수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인생이란 원래 부조리하니까, 라고 수긍했다면 아무도 그 진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테니까?


어쩌면 이 이야기의 목적은 역시 계몽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이 좆된 사람의 입으로 설파하는 진리는 한결 설득력을 지니기 때문에. 하지만 화자가 계몽을 하고 싶거나 말거나 청자는 제가 듣고 싶은 부분만 듣는다. 에드몽의 호쾌한 복수극과 돈자랑에 열광하고, 빨간 구두를 보면서 욕망의 한숨을 쉰다. 각자 지들 멋대로. 떠들고 싶은 얘기를 떠들고,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는다. 그냥 그게 사람이고 인생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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