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글쓰기 2024.4.6
옛날 사람들은 인간의 이성을 믿었다. 인간은 동물과 차별화되는 이성을 지닌 존재고, 이성의 인도에 따라 행동한다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뇌과학의 발달 덕분에 좀 더 진실에 가까워졌다. 감정만 없으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살 것 같지만, 감정 영역이 망가진 인간은 우선순위를 잃고 헤매며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게 된다는 진실. 싫다, 좋다는 감정 없이는 당장 오늘 저녁 메뉴조차 정할 수 없고, 소파에 드러누워 게임이나 하는 것과 하나뿐인 자식의 졸업식에 참여하는 것 중 뭐가 더 중요한지도 알 수 없게 된다. 이성의 가장 큰 쓸모는 감정적으로 내린 결정을 정당화하는 데 있다. 내가 저 사람을 싫어하는 이유? 배려가 없어서, 식탐이 많아서, 이기적이라서. 하지만 실은 그 모든 구체적인 이유에 앞서 이미 ‘싫다’는 감정이 먼저 존재하는 것이다.
내 일상을 함께하는 친숙한 감정 몇 가지가 있다. 짜증, 분노, 경멸, 불안, 초조. 이들에게는 나름의 서사와 이름까지 존재한다. 사냥개, 미친개, 머리 셋 달린 케르베로스, 혹은 독지네. 그들은 지옥불이 끓어 넘치는 듯한 화산지대에 서식하며 화산 폭발이 한 번 일어날 때마다 땅속에서 칼이 솟아나 바위산이 조금씩 칼산으로 변한다. 이 중에서도 우두머리 격인 핵심 감정은 분노다. 왜 일을 이 따위로 하지? 라는 짜증에서 시작해 미친 거 아니야? 라는 경멸로 진화하고, 니가 이러니까 내가 내 일을 할 수가 없잖아 라는 불안과 초조의 도화선에 불이 붙어 끝까지 타면 거대한 분노가 폭발한다. 독지네가 몸을 일으켜 포효하는 것이다.
나는 오랜 시간, 분노를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성취의 동력으로 삼아왔다. 충직한 사냥개인 줄 알았던 분노가 미친개로 돌변해 내 소중한 사람들까지 닥치는 대로 물어뜯기 전까지는. 그때부터는 미친개를 어떻게 통제할지 고심하며 전전긍긍하다가 최근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분노의 분화구 밑바닥에는 독지네가 살고 있다는 것을. 독지네가 한 번 분화구를 벗어나면 주변이 초토화된다. 독지네는 천성이 독지네기 때문에 파멸을 갈망한다. 끝장을 볼 때까지 분노를 활활 태워 저 자신과 제가 속한 세계마저도 파괴하려 한다. 독지네뿐 아니라 내 가족과 친구, 글과 꿈과 상상, 고양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유니버스 전체를. 세상을 지킬 힘을 얻으려고 흑마법에 손을 댔다가 결국 어둠에 삼켜져 세상의 멸망을 앞당기는 마법사 꼴이 나는 셈이다.
독지네 퇴치는 불가능하다. 설령 분화구에서 끌어내 소멸시키더라도 그 빈자리는 반드시 독두꺼비, 독전갈, 독뱀으로 대체된다. 다른 무엇이라도 독을 품고 있기는 마찬가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의지와 행위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를 정확히 알고, 그 근원이 독지네라면 속절없이 끌려가는 대신 브레이크를 잡는 것뿐이다. 나는 유니버스를 지키는 수호자니까.
그렇다면 독지네를 어떻게 통제해야 할까. 일단 독지네가 더 강해지라고 제물을 바치는 짓을 그만둔다. 다음으로는 화산지대의 영향력을 억제할 수 있도록 다른 구역의 힘을 키워야 한다. 화산지대를 봉인하는 삼각지대의 명칭은 각각 사랑과 행복, 틈새 구역이다.
사랑 구역을 떠받치는 두 기둥으로는 감사와 인류애가 있다. 내가 누리는 일상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되새기며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 냉전 중인 남편이 아침 인사를 씹고 나가도 부글부글 화를 끓이며 독지네를 살찌우는 대신 새벽부터 식기세척기를 돌려놓고 간 마음 씀씀이를 고맙게 여기는 자세. 한 번에 말을 못 알아먹는 회사 애들한테 짜증이 나도, 그래. 너도 일하느라 힘들지? 내가 두 번 설명해주면 되지, 라고 은은하게 따스한 마음을 품는 것.
행복 영역에서는 조용한 평화와 만족감에 발을 담근 채 찰박거리고 싶다. 우주가 내 장단에 맞춰 춤을 추는 정도의 낙관이나 짜릿한 흥분 같은 건 내게 맞지도 않고, 심장 건강에도 해롭다. 그저 맑은 날의 호수처럼 차분하고 고요한 마음. 싫을 것도 좋을 것도 없이 개울처럼 졸졸 흐르는 평화. 이 정도면 괜찮네 싶은 만족감이면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틈새 정원에서 가끔씩 예고 없이 활짝 피어나는 감동의 꽃향기를 들이마시고, 깨달음의 과일을 딸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읽고 쓰고 연결되면서 차근차근 꽃송이와 과일로 양동이를 채운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가득 찼던 양동이가 텅 빈 것을 보고 놀라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반딧불이 한 무리가 반짝이며 내 곁을 맴돌고 있다. 소유할 수는 없지만 누릴 수 있는 경이로움.
그건 제법 멋진 세계인 것 같다. 지금 내 안에 거주하는, 그리고 앞으로 초대를 받아 이주하게 될 유니버스 주민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비록 위험한 화산지대를 품고 있어도 삼각지대가 제대로 기능하는 한 이 세계는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