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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 쓰는 마음 Sep 12. 2024

[수업] 2031년의 너에게

나에게 보내는 편지 2024.9.11 

50번째 생일 축하해. 


2031년이라.. 내가 몸 담은 2024년이나 오지 않은 2031년이나 딱히 실감이 안 나기는 마찬가지인 거 같네. ‘2020 원더키디’ 시점을 지난 이후로는 그냥 그런가 보다, 미래가 왔다 보다, 하면서 살고 있거든. 지금도 2023년이라고 쓰는 게 미처 익숙해지기도 전에 2024년이 오고 그러더라. 


오십. 많이 살았네 싶긴 한데 반백살이 어쩌고 무게 잡는 소리를 하기에는 턱도 없는 120세 시대 아냐? 어쩌면 지금까지 산 것보다 더 오래 살아가야 할지도 몰라 ㅎㅎ 그러니까 그냥 가볍게 살자. 내키는 대로 팔랑거리면서 유유자적, 알지?


일단 궁금한 건 가족이지 뭐. 애는 잘 지내? 그 아이도 스무 살이 넘었네. 원하던 대로 A학교에 갔어? 아니면 그새 생각이 달라졌으려나? 아무튼 그림은 계속 좋아하고, 꾸준히 그려? 여전히 어둠의 다크 속에서 멱을 감으면서? 지금의 청소년은 자기가 다른 동네로 대학 가면 엄마가 따라와서 적응될 때까지 같이 살아달라고 했는데, 그 마음 안 변했는지 궁금하네. 


남편은? 학교로 돌아가서 강사 됐어? 애초에 자기 지식을 남한테 나눠주는 게 천성인 사람이니까 어울리긴 해. 한국에서 먹물 먹다가 갑자기 해외 나와서 기술직으로 전환하느라 고생도 많았고. 강사까지 하려면 언어 실력 좀 멱살 잡고 끌어올려야겠지만.. 알아서 했겠지. 그는 자유의지가 있는 독립적인 성인이잖아. (자, 뇌주름에 새겨질 때까지 5번 정도 반복해 보자. 우리 가정에 평화를 주는 주문이다 생각하고) 결혼 20주년 몰디브는 잘 다녀왔어? 안 싸우고 행복한 추억 만들었기를. 


즐거움 영역은 여전해? 지금도 글쓰기수업을 하고 있을까? 2023년 10월부터니까 아직까지 하고 있다면 8년 차네. 이거 참 엄청난 일이다.. 그만큼 주제가 나왔다는 것도 놀랍고, 그렇게 꾸준히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도 놀랍고. 이 정도면 진짜 ‘쓰는 시간’ 문집 3권 정도는 냈겠지? 그거야말로 지역공동체문학전집이네. 

북클럽 '읽는 시간'은 어때? 잘 되고 있으면 좋겠어. 그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네가 최선을 다했을 테니까. 믿음이란 건 혼자 유지하기 어렵잖아. 조직화가 필요해, 나 말고 단 한 사람이라도 더. 관성이 흔들리는 건 두 사람부터야. 둘이 같이 믿으면 일이 굴러가고, 변화가 일어날 수 있어. 내가 좋아서 열심인 일들을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체가 건재하기를 바랄게. 


데이잡은 어때? 아직도 B회사에 다녀? 그건 그거대로 엄청난 일이다.. 안정적인 수입은 중요하고, 회사에서 주는 혜택도 나쁘지 않지. 마음 같아서는 풀타임보다 주 2-3일 정도면 딱 적당할 거 같지만. 온전히 내 시간인 주말보다 오히려 풀타임과 병행하는 주중에 책도 더 읽고, 운동도 더 하면서 열심히 사는 지금의 나를 생각하면.. 일상에 데이잡이라는 무게추를 내리고 있는 편이 최선일지도 몰라.  


운동 얘기 나온 김에 건강은 어때? 저속노화를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중? 2024년 여름휴가 이후 결심한 대로 이동과 운동을 분리하지 않고, 탄소 발자국 좀 줄이면서 대중교통 잘 타고 다녀? 외식 줄이고 건강한 집밥도 잘해 먹고? 매주 PT 받는 거랑 매일 근육운동 15분도 유지하고 있어? 매일 15분씩 일주일 하니까 벌써 좀 달라지는 거 같은데, 8년을 했으면.. 세월을 거스르는 핫바디가 된 거 아냐? ㅎㅎ 

부모님도 건강하시지? 우리 집 시니어들은 강철의 시니어니까 큰 걱정이 없네. 저속노화 생활습관의 표본처럼 생활하시는 분들이잖아. 


새로운 역량 개발은 어떻게 됐어? 읽기와 쓰기, 소통과 연결을 접목하는 새로운 영역을 찾았어? 개인 뉴스레터가 그 답일까. 하지만 주구장장 내 이야기만 하는 건 지겹잖아. 혹시 그걸 위한 공동체를 만들었어? 그리고 읽기와 쓰기를 벗어난 제3의 영역은? 음악도 좋지만, 악기 연주는 내 길이 아닌 것 같고.. 역시 운동이려나?


50이 된 지금의 키워드는 뭐야? 여전히 유유자적, 안분지족? 뜻밖에 새로운 야망이라거나 정열이 끓어오른 건 아니겠지? ㅎㅎ 아휴.. 이삽십대 살면서 많이 태웠다. 그 불구덩이에서 타 죽지 않고 빠져나온 게 다행일 만큼 이글이글 태웠어. 40대의 나는 물 같은 기분이야. 물길대로 흐르고, 고일 만한 곳에 멈추고, 다시 물꼬가 트이면 흐르고. 철통 같은 의지와 계획도 좋지만.. 결국은 운이 좋았어. 좋은 시대를 타고나서, 좋은 사람들한테 신세 지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니까. 


2031년의 너한테 내가 바라는 건.. 별일 없이 살고 있기를. 큰 걱정 없이, 몸 건강하고,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면서, 여전히 좋은 사람들과. 나 역시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좋은 사람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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