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하는 글쓰기 2024.9.24
[독서감상문, 왜 그리고 어떻게] - 한 권을 읽어도 열 번 읽은 효과
#1. 독서, 그 평범한 취미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
“독서요.”
벌써 따분하다. 열 명을 잡고 물어보면 다섯 명은 할 것 같은 대답. 특수취미 한 명을 제외하면 다른 네 명은 아마도 음악 감상이겠지. 독서는 음악 감상과 더불어 취미계의 양대산맥이다.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밝힐 수 있고 '교양과 상식을 갖춘 지식인'이라는 자기소개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입사지원서 취미란에 넣어도 무난하고 소개팅 자리에서 꺼내도 손색이 없으니 그야말로 휘뚜루마뚜루, 만능템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특색이 없다는 거다. 취미가 독서라는 말에 눈이 번쩍 떠지면서 나에 대해 흥미를 가질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오늘은 이 평범한 취미를 특별하게 만드는 양념, 독서감상문을 소개하려 한다. 읽을 시간도 없는데 왜 쓰기까지 하라는 건지, 쓴다면 어떻게 쓰는 게 효과적인지 지금부터 함께 알아보자.
#2. 평범을 넘어 특별함으로
“읽었으면 됐지, 굳이 쓰기까지 해야 되나요?”
“당연하죠.”
“왜요?”
“부자 되고 싶지 않으세요?”
“당연하죠?!”
“그럼 쓰세요. 읽고 쓰면 보물창고가 생기니까요."
독서한 다음 감상문을 써야 하는 첫 번째 이유, 사람은 잊어버린다. 아무리 무릎을 치면서 감탄한 명문장도, 이게 인생의 진리였구나 싶은 통찰도 시간이 지나면 전부 잊혀진다. 그래서 적어야 한다. ‘풀꽃’으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의 딸, 나민애 교수(서울대 국문과)는 읽은 책에서 반드시 한 문장씩을 뽑아 적어두라고 권한다. 이런 방식으로 표현력 사전을 만들면 ‘헐, 대박, 미쳤다’만 돌려 막는 어휘력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표현력뿐 아니라 아이디어도 마찬가지. 책의 핵심 아이디어를 적어두면 일상을 살아가느라 바쁜 두뇌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잊지 않으려고 애쓰며 무겁게 살아가는 대신 머리를 가볍게 하고,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보낸다. 대신 위기가 닥치면 언제든지 열어볼 수 있는 비단주머니를 따로 챙긴다. 그게 바로 독서감상문이다.
둘째, 독서감상문은 정신세계의 사진첩이다. 책을 읽을 당시의 나 자신을 기록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책 읽은 감상이 나랑 무슨 상관인지 의아할 수도 있지만, 감상이란 결국 책이라는 원재료를 나라는 체로 걸러낸 결과물이다. 책을 읽은 뒤에 남겨지는 생각과 감정은 필연적으로 그때의 자신을 담고 있다. 처음 읽을 때는 이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냐고 욕했던 책인데 몇 년이 지나 다시 보면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부족해서 안 보였던 지평선 너머까지 활짝 열리면서 내 세계가 그만큼 넓어진 것이다. 감상문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멀리 왔는지, 삶의 궤적을 확인하는 기록이다. 별로인 책도 감상을 남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오늘의 내가 품을 수 없는 책이 있다면 잘 적어뒀다가 3년 뒤의 나에게 다시 건네보면 어떨까? 성장을 검증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3. 어떻게 써야 할까
책 읽는 중간에 감상을 남겨라: 앞서 말했듯이 사람은 잊어버린다. 망각은 읽는 도중에도 수시로 들이닥치기 때문에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놓치지 않으려면 그때마다 꽉 붙들어 종이 위에 가둬야 한다. 토막 감상은 전체 감상문이라는 큰 과제를 잘게 쪼개 난이도를 낮추는 효과도 있다. 완독이라는 과제를 해결한 직후에는 의지력이 상당히 소진돼서 곧장 다음 과제로 넘어가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쓰기를 미루면 내용이 가물가물해진다. 이럴 때 미리 준비된 감상의 조각들을 모아 연결이 매끄럽도록 재배치하고, 표현을 다듬으면 한 편이 뚝딱 완성된다.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라: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면 진짜 지식이 아니다. 머리로는 대충 알 것 같은데 막상 남들에게 설명하려니 말이 안 나오는 건, 아직 그 지식을 완전히 소화해서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는 뜻이다. 수동적인 '읽기'로 습득한 책의 내용을 능동적인 '말하기'로 출력하려면 막연히 흩어진 정보를 정리하고 연결해서 의미를 부여하는 재가공 작업을 거쳐야 한다. 이걸 언어로 포장해 상대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내가 하는 말을 내 귀로 들으며 재입력이 일어난다. 한 번 입 밖으로 꺼내 말이라는 형태를 갖춘 정보는 글이라는 다른 형태로 변환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남의 감상을 들어라: 책을 아무리 꼼꼼히 읽어도 내용을 100% 흡수하기는 어렵다. 나라는 필터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내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만 남고, 나머지는 아깝게 버려진다. 모처럼 시간을 들여 읽었는데, 한 권에서 최대한을 뽑아낼 수는 없을까? 남의 눈을 빌리면 가능하다. 다른 사람이 자기 식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한 지식을 같이 흡수하면 한 권을 읽어도 열 번 읽은 것처럼 입체적으로 독서할 수 있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과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이 내용을 감상문으로 정리하는 것은 책 한 권을 가장 효과적으로 맛보고 즐기는 방법이다.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
“보물창고 채우기요.”
"아, 독서감상문 쓰시는구나."
"네, 올해는 지금까지 비단주머니 8개를 챙겼어요."
"제가 요새 힘든 일이 많은데 이럴 때 열기 적당한 주머니가 있을까요?"
얼마나 아름다운 대화인가. 책은 이렇게 움직인다. 독서감상문이라는 날개를 달고,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그러다 보면 세상이 앞으로 한 발짝 굴러가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 모두 부자가 되자. 보물창고에 색색가지 비단주머니를 가득 쟁여놓고 마음껏 베풀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