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을 모델로 세우고 초상화를 그린다. 올해의 의미를 찾아서. 일단 손 가는 대로 러프하게, 각도를 달리 해서 두 점을 스케치한다. 한 편은 '나는 길을 잃었다,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다'고 우는소리를 하는 글. 다른 한 편은 올해의 굵직한 사건들을 추려보는 글. 나쁘지 않다. 여기에는 분명 2024년의 조각들이 담겼다. 하지만 올해를 정확히 포착하는 글이라기엔 뭔가 부족하다. 형상은 있지만 영혼이 없다.
일 년이라는 시간은 글 한 편에 담아내기에 너무 큰 덩어리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좀 더 작은 단위에 초점을 맞춰, 어제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하루가 모여서 일주일, 한 달, 일 년, 결국은 평생이 된다. 어쩌면 인생이란 부분을 합쳐 전체가 되는 초상화보다 끝없는 자기복제를 통해 확산되는 프랙털 이미지에 가까울 수도 있다. 어제 하루의 어떤 순간이 내게 의미를 남겼을까.
아침 식사 - 뜨끈한 소고기뭇국에 밥을 말아먹었다. 위장을 채우고 영혼을 적시는 국물. 충만하고 행복하다.
PT - 삐걱대는 몸뚱이를 끌고 나가서 PT 수업을 받았다. 크리스마스 주간이라 그런지 체육관이 한산해서 좋았다. PT 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점점 강도를 높여 운동했다. 마지막 스쿼트 때는 등줄기에 땀이 나면서 다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한 시간.
브런치 - 운동 후 PT 쌤과 송년 브런치를 함께 했다. 브런치 식당은 체육관과 반대로, 크리스마스 주간이라 대환장 파티였다. 브런치는 캐나다인의 국밥이다. 다들 여기가 아니면 영혼을 적실 수 없다는 기세로 모여, 전투적으로 웃고 떠들면서 먹고 마신다. 우리는 그 소란 속에서 한강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해 얘기했다. 서로의 생각이 100% 일치하지는 않지만 귀 기울여 듣는다. 그럴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반찬 장만 - 진미채와 무생채를 만든다. 연말에 만나기로 했지만 애가 아파서 꼼짝 못 하고 있는 친구에게 갖다 주려고. 딸이 와서 무 썰기를 도왔다. 전날 진미채를 할 때 오징어 냄새가 심하게 났던 것을 떠올리고, 불리는 물에 레몬즙 몇 방울을 떨어트렸더니 좀 나아졌다. 약간의 발전에 흐뭇하다.
딸과 쇼핑 - 손목이 아프도록 무를 썬 딸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쇼핑몰에 데려간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눈 아래 빙판이 깔리지도 않은 쾌적한 실내를 사뿐사뿐 걷는다. 한껏 예쁘게 꾸미고 갈 수 있는 번화한 곳. 쇼핑몰이야말로 도심 속 축제의 현장이 아닐까. 모두 저마다의 축제 의상을 걸치고, 밝고 화사한 즐거움을 찾아 인파 속에 뛰어든다. 나는 모처럼 핑크빛 여우털 조끼를 꺼냈다. 20살에 백화점에서 처음 만나 홀린 듯이 집어든 물건. 아빠는 당연한 것처럼 사 줬고, 엄마는 이걸 어디서 입겠느냐고 타박했다. 아빠는 늘 그랬다. 내가 충동적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진지하게 내 것으로 만들어줬다. 이 분야의 갑은 역시 피아노. 할부값을 갚기도 전에 난 이미 피아노에 진력이 났지만, 매몰비용이 너무 컸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체르니 40까지 진도를 뽑아야 했다. 엄마의 예언대로 그 모피는 너무 화려해서 좀처럼 입을 일이 없었다. 게다가 몸통은 후끈후끈한데 팔은 애매하게 드러나는 디자인이라 언제 입을지도 애매했다.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모피전문점에 리폼을 맡겨 조끼로 만들고, 캐나다까지 싸들고 온 다음에도 역시 입을 일이 없었다. 이걸 입는 건 7년 내 2번째다. 그래도 버릴 수는 없다. 언제 어디서나 날 지켜주는 아빠의 사랑이니까.
초대 - 느긋하게 쏘다니던 중 갑자기 친구에게서 호출이 온다. 오늘 동네 스케이트장이 무료 개방하는데 같이 가자는 초대였다. 남편들끼리도 동갑, 애들도 한 살 차이라 모두가 서로의 친구인 집이다. 우리는 부리나케 귀가했고, 딸은 다시 그 집 차에 실려 스케이트장으로 갔다. 평소 애정 표현이 별로 없는 친구인데 이럴 때 자기를 생각해서 불러준 게 고맙다고 하면서. 나도 그 마음이 고맙고, 그 마음을 아는 딸이 대견하다.
자기 전 모녀 타임 - 신나게 놀고 온 딸과 뒹굴대면서 잡담을 한다. 도파민 뿜뿜한 연애담에서 예고 진학을 위한 포트폴리오 준비에 이르기까지. 내친김에 지금까지 딸이 그린 작품들을 같이 보면서 얼마나 멀리 왔는지를 실감한다. 참 꾸준히도 그렸고, 놀랍게 발전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내 초상화를 그려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사진까지 선정한 다음 모녀 타임이 막을 내렸다.
이렇게 선정한 의미 리스트에서 키워드를 뽑아본다.
1. 맛있고 건강한 식사
2. 좋은 사람과의 만남
3. 내가 나를 혹은 남을 위하는 마음
4. 남이 나를 위해주는 마음
5. 사랑하는 사람과의 일상 공유
6. 나 또는 사랑하는 사람의 성장
이날 유튜브에 2시간 43분, 웹툰에 49분, 인스타에 23분을 소비했지만, 여기서는 기억나는 게 없다. 의미 리스트에 싸구려 도파민 조달처를 위한 자리는 없다. 다가오는 2025년, 의미 있는 삶을 원한다면 어디에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하는지가 자명해진다.
또 하나. 리스트에서 제외된 주요 인물인 남편이 있다. 매 끼니와 대화를 통한 연결을 중시하는 나에게 그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아무리 정성껏 차린 밥상도 10분 만에 뚝딱 해치우고, 그와의 대화는 대체로 짜증 내지는 분노를 유발한다. 화법 자체가 편의점 진상 스타일이다. '봉투 드릴까요?'라고 물어보면 대답하는 대신 '그럼 내가 이걸 다 손으로 들고 가겠어요?'라고 반문하는 식으로.
하지만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일단 빈 화폭이 필요한 것처럼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생활의 기반이 필요하다. 그는 의미 창출에는 별 기여가 없지만, 생활을 함께 꾸려가기에 좋은 동반자다. 힘들다고 우는소리를 하거나 못 하겠다고 드러눕는 일 없이, 소처럼 묵묵하게 자신의 쟁기를 끌뿐이다. 그렇게 의미 없는 곳에도 의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