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세계 - 하설(夏雪)
글을 쓴다는 것은, 나에게 마치 하나의 운명과 같다. 하나의 우연처럼 내게 찾아왔다.
초등학생 때는 나는 로봇 공학을 하고 싶었다. 당시에 TV에서는 과학고 학생들과 공과대학교 학생들이 로봇을 만들어 대전을 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나에게는 너무나 감명 깊었다. 아마 그때부터는 수학과 과학을 나름 재미를 가지고 열심히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어서는 자연스럽게 공대 진학을 꿈꿨다.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꿈과는 반대로 공부에 대한 열정이 어느 순간부터 식었다.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 것이 좋았고, 방황을 닮은 비행을 하기도 했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내 인생에 가장 큰 변화가 찾아왔다. 아버지의 주재원 파견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멕시코, 영화에서만 들어봤던 나라를 가게 된다는 사실과 친구들과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아쉬움도 있었지만, 사실 두려움은 없었다. 어쨌든 내 미래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가장 큰 걱정은 차별과 적응이었다. 당시 나는 'Hello' 외에는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영어 문장도 없었거니와, 스페인어는 단 한 단어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 걱정을 가지고 처음 교실에 들어갔을 때, 생각보다 환하게 친구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다행히, 학교에 멕시코에서 10년 이상을 거주한 한국인 또래 친구가 있었던 덕분이었다. 그들은 동양인인 나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오히려 배려해 주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했다.
외국에 나와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니 나는 자연스럽게 다른 공부보다 언어 공부에 집중하게 되었고, 나름 언어에 재능을 보이며 빠르게 성장했다. 그렇게 어렸을 적의 '로봇 공학자'라는 꿈과는 자연스럽게 이별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연처럼 내가 입학한 고등학교는 멕시코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공과 고등학교였고, 나는 로봇 동아리에 들어가 직접 대회도 운영하고 꿈에 그리던 로봇도 직접 만들어보았다.
문제는 내 수준은 여전히 중학교 수준에 멈춰있었지만, 다른 동아리 회원들은 이미 멕시코 내 대회에서 수상할 만큼 고등학교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들을 따라갈 수 없었고, 그들도 나를 배려해 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천천히 뒤처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룹에서 나왔다.
그때부터 내 일상은 매우 단순해졌다. 공부, 그리고 게임 가끔. 지금도 책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남들보다 조금은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라고 말할 것 같지만, 그때 당시에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확언할 수 있다. 그리고 2017년, 내 운명은 다시 한번 바뀌었다.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다. 어렸을 때 로봇을 보았을 때의 충격과 비슷한 무언가를 느꼈다. 당시 내 지식수준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문장의 향연은 아름답다 못해 황홀했다. 그리고 문득, 나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날이 2017년 4월 16일 일요일 오후 4시경, 창밖에 쏟아지는 비를 보며 내린 결정.
8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지금까지 수십만 개의 단어들과 수만 개의 문장을 만들고, 수천 개의 글을 썼을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제 내게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되었다. 살아있기 때문에 쓰고, 쓰기 때문에 나는 아직 살아있음을 느낀다. 가끔 잠이 오지 않는 날이면 멍하니 누워 내가 썼던 글들을 되돌아보곤 한다. '왜 이렇게 썼을까', '이런 표현은 좋지 않은데', '그때는 이게 최선이었겠지-' 생각하며 과거를 회상하고 기억한다. 가끔은 신기하다는 생각도 든다. 우연하게 시작한, 작은 취미 같은 건데, 생각보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이제는 과분하지만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는 이들도 생겼다.
결국, 인생에 정해진 것도 없고, 답은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연히 내 앞에 떨어진 종이 하나는 운명이 적힌 이정표였고, 나는 그것을 따라 걷고 있다. 이 걸음의 마지막에는 그저 내 이름을 기록할 수 있는 작은 방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게는 과거를 기록하며 나를 남기는 것. 그리고 그것을 미래로 보내는 것.
문득, 궁금해졌다.
당신의 글을 적는 이유가, 의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