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요령'이 아닌 '본질'이 이기는 시대
나는 브런치 작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네이버 블로거이기도 하다. 어제, 네이버 블로그에 조용하지만 의미있는 지각변동이 있었다. 네이버가 블로그 관련 API 지원을 종료하기로 했다는 소식.
이 말인즉슨, 이제 네이버가 더 이상 외부 서비스에 블로그 지수를 판별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흔히 자신의 블로그 등급을 확인하기 위해 들락거렸던 블덱스 같은 사이트들이 사실상 그 효력을 잃게 된 셈이다.
누군가에게는 이 소식이 불안한 뉴스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블로그라는 공간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미물 블로거인 나에게, 이 변화는 꽤 큰 충격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면,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 속이 시원하기도 하다.
우리는 늘 숫자에 갇혀 살고 있다. 그것도 지나치게 말이다. 나의 기록이, 내 생각이, 고작 '지수'라는 이름의 등급표로 매겨지는 세상이었다. 최적화라는 명목 아래, 기계가 좋아하는 글쓰기 공식도 난무했다. 키워드를 몇 번 반복하고, 사진은 몇 장을 넣어야 하며,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해 억지스러운 구성을 짜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글의 주인인 '나'는 뒤로 밀려나기 일쑤였고, 이미 자리를 잡은 강자들에게만 절대적으로 유리한, 그 기울어진 운동장도 썩 달갑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이제 판이 바뀌고 있다. 네이버가 지향하는 방향은 명확히 '개인화'를 가리키고 있다.
획일화된 점수판도 사라졌다. 이제 이 사람에게 상위 노출된 글이, 저 사람에게도 똑같이 정답일 거라는 보장은 없다. 독자의 취향과 관심사에 따라 검색 결과가 달라지는 세상. 이건 곧, 억지로 지수를 맞추기 위해 끼워 맞춘 글이 설 자리를 잃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 그렇지. 지수를 높이기 위해 영혼 없이 찍어낸 글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 주객이 전도된 블로그 운영을 하며 남는 건 또 무엇이고.
이제는 정말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AI가 대량 생산해 내는 차가운 텍스트가 범람하는 시대.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진짜 사람 냄새가 나는 글이 더 귀해질 것이다. 투박하더라도 직접 겪은 경험, 그 안에서 우러나는 고유한 시선, 콘텐츠 자체가 가진 진정성이야말로 그 모든 것을 뚫고 독자의 마음에 닿는 유일한 열쇠가 될 것이다.
물론 여전히 클릭률이나 체류 시간, 재방문율 같은 숫자들이 성적표처럼 따라붙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맹목적인 점수 따기에서 벗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번 변화는 블로그 생태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비단 블로그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연봉, 평수, 자산, 실적 같은 숫자에만 매몰되다 보면, 정작 내가 왜 살고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삶의 본질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숫자는 우리를 설명하는 도구일 뿐, 우리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나 역시도 다시, 쓰는 마음을 다잡아 본다. 우리가 왜 이 공간에 글을 쓰는지, 왜 이 하얀 화면을 꾸준히 채우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누군가에게 노출되기 위한 그 어떤 요령이 아니라, 나를 표현하는 본질을 글에 담고 싶다. 숫자가 아닌 진심을 담고 싶다.
변화의 파도가 아무리 거세게 몰아쳐도, 결국 살아남는 것은 진심이 아닐까. 숫자가 걷힌 자리에, 무엇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될지 내심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