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출신 동탄댁의 겨울 생존기
내가 이곳에서 살게 될 줄이야. 인생의 항로는 때때로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곳에 닻을 내리게 한다.
길었던 주말 부부 생활을 청산하고, 가족이 함께 살 터전을 고르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나는 '동탄댁'이 되었다. 그리고 벌써, 이곳에서 맞는 세 번째 겨울이다.
여기 이사 오기 전엔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거참 동네 이름도 이상하네. 연탄도 아니고 동탄이 뭐야 ㅎㅎ" 바람이 분당, 판교 안 판교 같은 말장난에 킬킬거리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온라인을 떠돌던 '동탄맘'이라는 단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다.
별난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그곳에서, 아는 이 하나 없는 내가, 과연 정을 붙일고 살 수 있을까? 거대한 아파트 숲속에서 나 혼자 외딴섬이 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살아보니 그 모든 걱정은 기우였다. 이곳 역시도 그저 오밀조밀 사람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터전이었고, 오히려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균질해서, 평온하다 못해 단조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도심 안에 공원과 아파트, 학교밖에 없는 이 심심한 풍경. 하지만 아이들의 활기찬 비명이 끊이지 않는 도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역시나. 2년 반이라는 시간은 나라는 이방인을 제법 그럴싸한 주민으로 둔갑시켜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몸이 적응하지 못하는 한 가지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이 동네의 가혹한 겨울이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내게 수도권의 겨울은 제법 혹독했다. 살갗을 파고드는 칼바람의 강도부터가 다르고, 코끝을 파고드는 공기의 탁함도 확연히 달랐다. 서쪽의 공기질은 확실히 동쪽보다 좋지 않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건 눈의 실체였다. 부산 사람에게 눈은 낭만의 결정체다. 눈이 온다 그러면 다들 설레서 방방하기 마련. 하지만 이곳에서의 눈은 그저 치워야 할 쓰레기이거나, 도로를 마비시키는 그 어떤 것일 뿐이다.
하늘에서 내릴 땐 희고 고왔던 눈이 바닥에 닿자마자 시커먼 땟국물이 되어 겨우내 길가에 방치된 걸 보았을 때, 나는 일종의 충격도 받았다.
"아, 눈은 흰색이 아니라 회색이구나." 낭만이 현실로 바뀌는 순간이랄까. 이제 나는 겨울 동안 세차를 포기하는 법도 배웠다.
오늘 밤, 이곳에도 첫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다. 저녁 외출에 뭘 입어야 할까? 옷장을 열어본다. 부산에 살 땐 한겨울에도 코트 자락을 휘날리던, 소위 '얼죽코(얼어 죽어도 코트)'였는데. 이젠 두툼한 패딩 없인 못 사는 내가 되었다.
요즘의 '영포티' 담론에 따르면, 패딩 모자에 달린 털은 촌스러움의 상징이라고 한다. 영포티 논란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그 털을 떼어내야 한다는데. 하지만 나는 옷장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털을 찾아내 꾸역꾸역 모자에 다시 부착한다.
영포티면 어떤가. 내가 춥다는데. 나이가 든다는 건, 남의 시선보다 내 몸의 안위를 더 챙기게 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유행을 쫓기보다 내게 필요한 것을 선택할 줄 아는 단단함이 생기는 것일지도.
부산 여자 동탄댁의 세 번째 겨울.
이곳의 추위와 바람에 적응해 가며 나 역시도 그렇게 단단하게 여며지고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