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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Sep 22. 2020

[체코 이야기] #1 인간 온도계

4년 차 체코 살이, 쉽지 않았던 처음의 기억.


"와 덥다! 오늘은 한 29도 되겠는데?"


내 말이 끝나자 조용히 현재 날씨를 검색해보던 동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닌 진짜 미치갱이다."*


일기예보에서 알려주는 지금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의 날씨는 29도. 그래서 동생은 나를 인간 온도계라고 부른다.


 6년이란 세월 동안 몸담아온 내 직업이 선물해 준 능력 중 하나다. 하도 밖에서 돌아다니니 저절로 체득이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손을 뻗어 핸드폰을 켜고 날씨를 확인한다. 비가 오는지, 가장 한낮의 온도는 얼마인지 최저 온도는 얼마인지를 확인하고 나면 그날의 출근 복장이 정해진다. 무엇보다 날씨에 맞는 편하고 실용적인 복장과 신발을 고른다. 비가 오는 날은 고어텍스 재질의 신발을, 날씨가 좋은 날엔 오랜 시간 내 발에 편하게 꼭 맞춰진 샌들을 신고 나간다. 애석한 것은 터키와 스페인에 살 때만 해도 지중해성 기후 덕에 '최소한의 천 쪼가리'만 걸치면 되는 가벼운 복장으로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체코에 살게 되면서 고어텍스 신발과 플리스 재킷과 경량 패딩, 발열내복 따위의 의복들이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여름과 햇살을 너무나 좋아하는 8월에 태어난 본 투 비(Born to be) 여름 성애자인 나에게 체코에서의 생활은 지난 그 어떤 타국 살이 보다 힘들었다. 그저 겨울이 '조금 더 길뿐인' 나라로 이사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연히도 체코 이전의 내 타국살이는 언제나 바다가 있는 지중해 혹은 사막 기후를 가진 국가들로 이어졌고, 뜨거운 태양만큼 외부인을 대하는 그들의 환대도 뜨거웠다. 이집트와 요르단에서는 '아랍어를 하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쉽게 친구들을 만들 수 있었고, 유난히 작은 체구와 여성이라는 이유로 현지 친구들로부터 더욱 살뜰한 관심과 보호를 받았다. 

(좌)내 마음의 0순위 터키, (우)나의 영원한 짝사랑 스페인.

 형제의 나라 터키에서는 한국인이라는 내 정체성 하나로 차 한 잔부터 식사 대접에 이르는 몸 둘 바 모를 무수한 호의와 애정을 받았고, 서바이벌 터키어를 알음알음 배워가던 내게 동네 이웃들은 손녀의 옹알이를 대하는 것과 같은 인내심을 발휘해 나의 엉터리 터키어를 들어주고 찰떡같이 이해해 주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유러피안답게 적당한 선을 두고 낯선 이를 대했지만 언제나 대화 속에서 유머와 쾌활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게다가 마치 노래하는 것 같은 그들의 언어가 가진 마법 때문일까, 그들이 나를 사랑하든지 말든지 나는 스페인을 지독하게 짝사랑했다. 거리를 걸을 때면 5초마다 스치는 각기 다른 스페인 남자들과 5초마다 새로운 사랑에 빠졌고, 그들보다 더 매력적인 스페인 여자들을 보면서 '다음 인생은 스페인 여자로'라는 다음 생의 꿈까지 정해버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체코에 오니 모든 것이 '쌩'했다. 구름 잔뜩 낀 하늘 아래 폐 안을 채우는 공기의 온도부터 외부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눈빛과 말투까지 모든 게 다 차갑다 못해 냉랭했다. 체코의 상점 직원들은 외국인의 서투름을 굳이 이해하거나 도와주려 애쓰지 않았고 조금만 얼빠진 행동을 하면 한숨을 쉬었다. 그런 반응에 마음이 급해진 내가 허둥지둥 대면 그야말로 한심한 눈길로 나를 보는 이들도 있었는데, 그날은 하루 종일 의기소침해하며 나를 자책하다 잠들곤 했다. 때문에 나는 한동안 식당이나 슈퍼마켓만 가면 잔뜩 긴장하고 주눅 들었다. 


 언제나 받던 환대와 눈만 마주쳐도 싱긋 웃어주는 여유와 관대함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는 생애 첫 시련과도 같은 복병이었다. 그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체코는 겨울이 일 년의 절반 이상인 내륙 국가였고, 낯선 이에게 마음을 내어주기엔 너무나 가슴 시린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언제나 정복당하고 지배당했던 역사는 '외부에서 온 것은 좋지 않다'라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 심어주었고, 이웃이라 생각한 이가 나를 비밀경찰에게 밀고한다던가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공산주의 아래에서 쓰인 근현대사는 '남을 쉽게 믿지 않는' 성향을 국민적 기질 속에 밀어 넣었던 것이다. 친구들에게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을 한탄할 때면 난 항상 이렇게 열변을 토했다. "생각해봐. 밀란 쿤데라, 프란츠 카프카! 하나같이 멜랑꼴리한 작품들만 있는 건 다 날씨 때문이라니까?!"


 설상가상 체코에서는 나의 온도계 기능이 잘 작동하지 않았다. 특히나 유독 추운 날이 그랬다. 온도가 영상 5도 밑으로 내려가는 순간 나의 온도계 기능은 무용지물이 되었는데, 숫자로 표기된 온도의 체감 정도를 전혀 가늠하지 못해 온종일 일을 하며 덜덜 떨거나 반대로 땀을 뻘뻘 흘리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한국에서 살았던 20년조 차 눈이라곤 보기 힘든 부산과 창원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영하 20도까지도 내려가는 겨울 날씨는 말 그대로 남의 나라 이야기였던 거다. 그렇게 호된 첫겨울을 보낸 내 몸은 두 번째 겨울에 -10도까지, 그다음 해에는 -18도까지 구분해내는 장족의 발전을 스스로 이루어냈다. 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소프트웨어로 업데이트하는 데에 성공한 셈이다.


 경험해본 적 없는 추위 앞에서 허술하기 짝이 없었던 나의 옷차림처럼 냉랭한 응대와 눈길에 혼자 상처를 받고 외로워했던 내 시린 마음 또한 결국 경험 부족으로 인한 결과물이었다. 마치 자신이 가진 눈금의 하한선 아래로는 더 이상 측정하지 못하는 온도계처럼, 내게는 이전에 경험했던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문화와 성향을 가진 이 나라의 온도를 읽어낼 감각이 없었던 것이다. 더듬더듬 구글 번역기와 친구의 도움을 받아 가며 서바이벌 체코어를 배웠다. 이곳에 살기로 결심한 이상 앞으로 나는 365일의 절반 이상 추운 날과 마주할 것이고, 그에 적절한 감각을 기르지 않는다면 영원히 '이방인'으로 살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애석하게도 여전히 나의 체코어 실력은 '인사와 안부', '숫자' '길 묻기', '물건 사기', '식당 및 카페에서'와 같이 여행 가이드북에 부록으로 실려있을 것 같은 주제 밖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지만.(또 그 사실이 나름 언어엔 재능이 있다고 믿어왔던 나의 자존심을 크게 박살 내버렸지만) 나의 그 하찮은 체코어 실력과 체코 사람들의 성향을 학습한 이후로 나는 덜 상처 받고 더 의연할 수 있었다.


 아직도 어둡고 삐딱한 체코의 유머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고(체코 사람들의 유머를 이해한다면 '체코 사람 다 됐네!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아직도 여름만 되면 바다가 그리워 끙끙 앓고, 아직도 여름의 끝자락에 비가 내리며 다시 추위의 계절을 예고하면 구질구질하게 여름의 끝자락이라도 잡아보려고 비겁하게 스페인과 터키로 도망가 버리는 나다. 그래도 이제는 들리는 체코어가 낯설지 않고, 특유의 겨울 냄새를 맡을 줄 알게 되었으며, 체코 사람들에게서 미소를 이끌어내는 기술도 체득하게 되었다. 지중해와 사막의 햇살에 잔뜩 올라갔던 나의 감정의 온도를 꼬박 3년 만에야 절반 이상 뚝 떨어뜨릴 수 있게 된 거다. 비로소 체코는 나의 집이 되었다.


*미치갱이: 단어를 쓰고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경남 사천의 작은 섬에서 나고 자란 외가 식구들 외에는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 당최 어떻게 번역을 해야 할지 몰라 검색을 해봤다. 혹시 몰라서 기대 없이 해 본 검색 결과에서 비슷한 단어를 발견했다.  '미친 갱이'는 미치광이의 경상도 방언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 동생이 쓰는 단어는 '미친 갱이'가 아닌 '미치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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