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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Aug 14. 2021

이곳에 다시 돌아와 편지를 씁니다.

[프라하 일기] 보고싶은 당신에게




158일, 작년에 제가 한국에 머물렀던 시간입니다. 여섯 번의 비행 편 취소로 저는 몇 년 만에 한국에서 두 개의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을 보았지요.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그 어느 해보다도 그리운 이들과의 만남이 적었던 해였습니다.


여전히 미운 바이러스는 우리의 삶에 존재하고 있으나 지난 일 년 동안 우리는 판데믹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방법을 습득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삶이란 흘러가야 하는 것이니까요. 여느 해와 다름없이 저는 초봄에 한국으로 휴가를 왔고 2주 간의 격리와 세 번의 코로나 검사를 거쳐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고 싶은 이들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고작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것이 전부이지만 다행히도 마음의 거리란 물리적 거리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어서 연례행사와도 같은 이 만남들은 더 큰 반가움과 즐거움을 가져다줄 뿐, 그 어떤 공백이나 마음의 거리를 안겨주진 않아요. 함박웃음을 머금은 환한 얼굴과 힘주어 안는 포옹은 더 애틋하기까지 하니 더없이 좋고요.


제가 삶에서 가장 감사하는 부분이자, 믿어 의심치 않는 가장 큰 복이 있는데 바로 인복입니다. 제 삶 속으로 성큼 들어온 따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감사하게도 저는 꽤 힘든 시간 속을 지날 때에도 마냥 외롭지는 않았습니다. 서로의 십 대를 기억하는 친구들부터 찬란했던 이십 대에 만난 인연들, 여행 중 만난 인연들까지. 그 모든 이들의 따스한 손길이 나의 모난 부분들을 깎아내며 지금의 내가 빚어졌을 테고, 그런 이들이 내 삶에 계속 존재하고 또 새롭게 나타나는 한 미래엔 더 나은 내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함께 쌓아온 세월을 더듬다 보면 나 자신은 기억조차 못하는 내 생의 어느 순간을 친구들이 기억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중에서는 내가 그랬다고? 를 연발하게 되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나의 모습도 더러 있고요. 혹은 그 시간을 되짚던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내가 저지른 미성숙한 행동이나 실수를 깨닫고 얼굴이 달아오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 옆에 그들이 있다는 사실이, 가끔은 얼마나 몸 둘 바 모르게 고마워지는지 몰라요.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응원과 믿음을 받을 때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거든요. 이런 깨달음의 순간마다 저 또한 다른 이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결심하곤 합니다.


돈과 능력, 건강 등등 살아가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깨닫게 돼요. 하지만 동시에 나의 또 다른 하루를 살아내게 하는 것은 누군가가 건넨 따뜻한 인사와 위로, 응원 한마디라는 것을 더욱 절절히 느끼게 되지요.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당신이 나에게 보여준 애정과 그로 인해 오늘도 살아갈 힘을 얻은 나를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해 줘서 고마워요. 부디 당신에게도 내가 그런 존재이길, 다시 돌아온 이 먼 곳에서 보내는 나의 마음이 수천 킬로미터를 가로질러 당신에게 오롯이 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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