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2017년. 지금의 회사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주변인들은 입을 모아 사업을 하면 인스타그램은 필수라고 조언했고, 페이스북은 한 물 갔다고 충고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인스타그램으로 '갈아탄' 친구들을 보았지만 나는 여전히 페이스북에 머물러 있었는데, 스무 살에 처음 시작한 페이스북은 내 이십 대의 기록이자 국적도 사는 곳도 제각각인소중한 인연들과의 유일한 연락처이기 때문이었다.
한번 익숙해진 것은 도통 바꿀 줄 모르는 성격 탓에 인스타그램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던 나였지만 그런 나를 결국 인스타그램으로 인도한 건 '현실'이었다. 매달 통장으로 들어오던 월급이 사라지고, 내가 일한 만큼 내가 벌게 되는 자영업자의 현실 말이다.
회사 이름으로 계정을 만들고, 앱을 실행했다. 페이스북에선 글 아래에 사진이 올라왔는데 인스타그램에서는 화면을 꽉 채운 사진 아래 글이 떴다. 구성 요소는 같지만 우선순위는 명확하게 달랐다. 쳇, 나는 글이 더 좋은데.
마음보다는 눈길을 먼저 사로잡아야 하는 새로운 소셜미디어에 올린 나의 첫 포스팅들은 형편없었다. 사진들은 심심했고, 글은 길어지기 일쑤였다. 도무지 인스타그램이라는 녀석과 친해질 것 같지 않았다. 이 낯선 소셜 미디어와의 달갑잖은 첫 만남이 지금도 생생한데 이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앱을 켜고 무심하게 피드를 내리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2022년 지금의 나는 복수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가지고 있다. 비즈니스 계정에는 누구나 보아도 괜찮을,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이야기들과 예쁜 체코의 사진들을 올린다. 우리 회사의 결 그리고 시선이 잘 드러나는 글과 사진들이 주를 이룬다. 여행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체코의 이야기들을 가이드로서 풀어내는 곳이다.
공개 계정에는 회사가 아닌 나의 일상을 나눈다. 가이드로서의 나, 체코에 사는 이방인인 나, 요리를 좋아하는 나, 여행자로서의 나 등등 여러 모습의 내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온라인 일기장이 되어버린 나의 비공개 계정. 꼭 글이 함께여야 할 것 같은 블로그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빠른 기록을 남길 수 있어 하나 둘 올렸던 사진들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새 하이라이트만 모아둔 일기장이 돼있었다. 수년 전 기록들도 사진이 함께 있으니 마치 어제의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어, 현실에서 무기력함이 찾아올 때면 나는 포근한 이불 속에 들어가 내 삶의 하이라이트를 되새기며 기운을 얻곤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비즈니스를 위해 시작한 이 소셜미디어는 나의 가장 개인적인 공간이 되었다.
누구나 보아도 괜찮을,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이야기들과 예쁜 체코의 사진들은 회사 계정을 위한 것들이다.
나의 인스타그램 사용법
브런치와 블로그, 스케줄러와 일기장 등 여러 가지의 기록 수단을 동시에 사용하지만 그중에서도 인스타그램은 잊고 싶지 않은 일상의 하이라이트를 기록하는 데 사용한다. 어쩌면 조금은 하찮을 수도 있는 순간들, 글이 아닌 사진과 영상이어야만 기록이 가능한 순간들을 담아둔다.
하루를 즐겁게 만들어주었던 친구들과의 만남을 기록하고, 지금 기록해두지 않으면 아마도 찍은 이유마저 잊을 법한, 작지만 소중한 순간들을 남겨둔다. 유난히 맛있었던 음료 한 잔과, 함께했던 재치 있는 농담과 한참 동안 우리를 폭소하게 했던 주제 같은 것들. 오랜만에 떠난 휴가 중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고, 너무나 사소하지만 마음을 움직이기엔 충분히 따뜻했던 일상 속 예쁜 장면들을 기록한다.
여행처럼 커다랗고 근사한 하이라이트도 좋지만, 나는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한 아름다운 순간들을 정말 좋아한다. 여행이 근사한 보석이라면 이건 마치 보석 모양 사탕 반지 같은 존재랄까. 비록 그 대상은 사소할지라도 그것이 주는 감동과 행복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작지만 아름답고, 달콤하다. 길 위에서 그런 행복 사탕을 발견하는 날이면 나는 잽싸게 사진으로 그 사탕을 주워 담는다. 그렇게 붙잡아둔 순간을 나의 시선이라는 포장지로 소중히 감싸서 기록해둔다. 힘든 날은 또 오기 마련일 테니 그날의 내가 이 기억 한 조각을 꺼내 먹고 힘을 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출근길, 이토록 사랑스러운 보석 사탕이 곱하기 5! 그야말로 운수 좋은 날이다!
누군가의 하이라이트를 대하는 법
그러니 적어도 내게 인스타그램은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만 잘 정리해서 모아둔 하이라이트 같은 거다. 내 삶의 희극과 비극이란 양면 중에 주로 희극만 모아둔 하이라이트. 그리고 내가 보는 타인의 기록은 그들의 하이라이트다. 내게는 슬펐던 하루가 누군가에겐 기쁨으로 벅차오르는 날일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다. 그건 아주 당연한 일이고 그래야만 한다. 삶의 출발선이 다르듯 하이라이트가 비치는 삶의 순간이 제각각 다를 뿐이니까. '너라도 행복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리고 가끔은 누군가의 하이라이트를 엿보다가 덩달아 작은 행복 한 조각을 나눠 받는 행운도 있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나를 위해 내가 선택한 내 삶 속 하이라이트를 꼬박꼬박 기록하는데 인스타그램을 사용할 예정이다. 어떤 것들을 주워 담을지 선택하는 것도, 그 기억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그것을 꺼내 먹을 사람도 나다. 누구 말고, 나를 위해서 담고 기록하면 된다. 그리고 누군가의 하이라이트에 함께 마음껏 기뻐해 주고 싶다. 우리 모두의 인생은 멀리서 보았을 때 희극이니까. 그리고 희극의 주인공은 행복해야 마땅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