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겨울을 앞둔 늦가을, 첫 러닝을 시작한 날이 떠오른다. 1킬로를 겨우 뛰었던 첫날. 서늘한 바람을 가르며 집 앞에 멈춰 숨을 고를 때, 그 짧은 운동이 안겨준 묘한 쾌감이 있었더랬다.
그해 여름 나는 한국으로 휴가를 갔다가 코로나로 인해 발이 묶이게 되어 계획에도 없던 6개월의 한국 생활을 하게 되었었는데, 갑자기 생긴 시간을 어떻게 써볼까 하다가 동생을 꼬드겨 함께 2대 1 PT를 등록했다.
정말 좋은 선생님을 만난 덕에 나는 난생처음 제대로 된 '운동법'을 배웠고, 난생처음 내 몸상태를 파악하게 되었으며, 난생처음 운동이란 녀석을 좋아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내 인생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체코는 락다운으로 필수 상점을 제외한 실내 공공장소는 잠정적으로 영업이 중지된 상황이었다. 거기에 통금 시간까지 더해져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몸이 근질거리던 내가 문득 떠올린 게 러닝이었다. 당시 주변에 꾸준히 러닝을 하던 지인들이 몇 있었고, 그들이 소셜 미디어 피드에 러닝 기록을 공유하는 걸 보며 내심 호기심이 생기던 참이었다. 그렇게 프라하의 야경과 함께 하는 나의 첫 러닝이 시작되었다.
햇수로는 2년 차, 드디어 오늘 저녁 백 번째 러닝을 마쳤다. 좋아하거나 하지 않거나, 잘하거나 못하거나, 가운데라곤 없는 성격 탓에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금방 놓아버리는 내가 어린 시절 가장 싫어하던 달리기를 순전히 내 의지로 100번이나 뛸 줄이야. 언빌리버블이다. 100번의 러닝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되짚어보니 아주 많은 긍정적 성취가 있었음을 새삼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지긋지긋한 2년간의 코로나 암흑기를 견디게 해 준 명실상부한 일등공신 중 하나다. 그야말로 바닥에 침잠한 듯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믿는 일을 포기하지 않게 해 준 존재였다. 일 킬로에서 시작해 횟수를 거듭할수록 나는 자연스레 늘어나는 거리를 보며 큰 성취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성취감은 말 그대로 실업 상태였던 판데믹 기간에 나의 자존감과 자기 효능감을 지키는데 큰 힘이 되어주었다. 여전히 나는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란 사실을 매일매일 깨닫게 해 주었던, 작지만 큰 성취랄까.
둘째. 스트레스 해소와 생각 정리에 최고다! 사실 이 점은 러닝을 하면서 얻은 의외의 수확이었다. 러닝이 습관이 되었을 무렵 밤낮없이 나를 괴롭히던, 마음을 아프거나 무겁거나 슬프게 하던 여러 형태의 상념들은 심장이 바삐 온몸에 산소를 실어 나르기 시작하면 어느새 머릿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는 걸 깨달았다. 한낱 인간의 몸뚱이엔 그 어떤 고민이나 정신적 괴로움도 숨 쉬는 행위보다 중요하지는 않은 듯했다. 가슴 속 깊이 콕 박혀 도무지 떠날 기미가 없던 걱정들도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이 날숨과 함께 몸 밖으로 튕겨져 나가곤 했다. 이토록 긍정적이고 건강한 방식의 스트레스 해소라니! 불필요한 감정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방법을 하나 더 터득하고 나니 제법 단단한 어른이 된 기분까지 들었다. 이제 나는 머리와 마음을 비우고 싶을 때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달리러 간다.
셋째. 느리지만 확실한 다이어트 수단이다. 100번의 러닝을 마친 후 PT 시작 당시의 기록부터 지금까지를 살펴보니 약 7kg이 줄었다. PT 당시 선생님의 열정적인 지도에도 불구하고 별다방의 녹차 프라푸치노와 단골 빵집의 크루아상을 참지 못해 체중 조절에는 처절하게 실패하고 말았는데 어쨌든 햇수로 2년이 지난 지금, 당시 목표하던 40kg 대 몸무게에 진입을 했다.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한 변화다. 너무 예뻐서 샀지만 묘하게 어울리지 않거나 불편해서 입지 못했던 옷들을 입을 수 있게 되었고, 그 변화가 일상을 즐겁게 했다. 게다가 몸이 가벼워지면서 활동성도 훨씬 좋아져, 일이나 기타 일상에서도 이전보다 좋은 성과를 내게 되었다. 이래서 옛말에 체력이 국력이라고 했나보다.
언제나 모든 일이 일어나는 덴 이유가 있다는 말을 믿으며 살아왔지만 고백하건데 지난 이 년은 오랫동안 품어온 좌우명조차도 큰 힘을 내지 못하던 시기였다. 왜 나의 삼십대의 시작이 이따위인지, 도무지 현재를 사랑하기가 어려웠다.
이 글을 쓰며 새삼스레 생각한다. 결국엔 돌아보니 그 또한 다신 없을 좋은 시간이었노라고. 그 덕에 한국에서 수개월을 머무르며 가족의 품을 즐겼고, 피티를 시작하고, 또 나를 러닝의 세계로 인도한 가장 큰 계기였으니 말이다. 언제나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프라하가 아닌 텅 빈 거리들, 그때만큼은 오롯이 나만의 프라하가 되어주었던 수많은 밤들을 달리던 순간들은 분명 앞으로 다시 없을 특별한 경험이었다.
짧지 않은 기간이자 내 인생 최대 고비 중 하나였지만 살면서 꼭 필요한 '운동'이란 습관을 얻은 시간이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싶다. 본격적으로 삼십대를 살아내기 전 꼭 필요한 준비 운동 같은 시간이었다고 믿고 있다.
이 긴 글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당신은 이미 러닝에 반쯤 혹했다. 그랬으면 좋겠다. 물건을 파는 마케터의 마음으로 당신을 현혹시키려고 이 글을 썼으니까. 그러니 20년 가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도 이번 주말 부담 없이 한 번 달려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