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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Mar 07. 2023

아몬드 꽃 향기를 아시나요.

[기록을 기록하기] 2023년 2월 24일 밤의 기록.

아몬드 꽃 냄새 맡아보셨어요? 정말이지 꿀단지에 코를 박으면 날 것만 같은 황홀한 향이에요.


물 담배를 하러 가자는 급작스러운 제안에 우리는 함께 슬렁슬렁 걸어 집 근처 쉬샤 가게로 갔다. 도착한 가게는 지난 몇 달 사이 메뉴가 바뀐듯 했고, 더 이상 쉬샤는 안 판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과 함께 우리는 입장과 동시에 퇴짜를 맞았다.

발길을 돌리는데 가게 앞 페트르진 공원에 눈이 갔다. 함께 야경이나 볼까 싶어 공원 언덕을 올랐다.


"지금 여기 나무들이 다 아몬드랑 사과나무거든요. 봄이 되면 흐드러지게 꽃들이 피는데 모양이 딱 벚꽃 같아요."


그러고는 혹시 아몬드 꽃 향기를 아느냐고, 그 한마디를 덧붙이려다 말을 삼켰다. 어차피 내일 떠날 사람에게 괜히 아쉬움만 더하게 될 것 같아서였다. 아몬드꽃이 피려면, 그 꽃내음이 바람에 실려 오기에 2월 말은 아직 너무 이르니까.


우-러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난으로 매일 밤 열시 칼같이 조명이 사라지는 어두운 도시의 야경을 보다가 우리는 언덕의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런데 달빛 아래 희미하게 나무들 위로 희고 작은 무언가들이 빛나고 있었다. 아몬드 꽃이었다.

눈 앞에 보이는 그 풍경이 믿기지 않아 길을 내달려 가까이 가보니 정말 가지 끝마다 꽃봉오리들이 맺혀있었다. 그중엔 이미 꽃잎을 활짝 펼친 것들도 있었다.


코를 갖다 대니 그리웠던 그 꿀 냄새가 콧속을 간질였다. 새로운 계절, 새로운 생명의 냄새였다.

우리는 꿀벌들처럼 이나무 저 나무 가지마다 달린 아몬드 꽃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돌아다녔다. 행복하다고, 아주 행복하다고 자꾸만 말했다.


아몬드 꽃이 피면 떠오를 추억이 또 하나 생겼다. 아몬드 꽃의 냄새가 얼마나 근사한지 함께 떠들 수 있는 좋은 인연들이 생겼다.

선물 같은 날이다.


P.S.

파랑과 노랑 조명 옷을 입은 페트르진 타워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어느덧 1년이 되었음을 조용히 알리고 있었다. 시리아와 튀르키예의 지진, 우크란이나 전쟁. 아픈 일이 참 많은 겨울이었다. 부디, 그 땅에도 선물같은 봄과 평화가 찾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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