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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정 Oct 20. 2023

[시즌1] ep 4. 10% 수익 100% 보장

2023. 2. 13. 

오랜만에 단골 카페에 가려다 갑자기 휴무일이 헷갈려 네이버 검색을 했다. 방문자 리뷰를 보다가 다른 곳에서는 라떼가 4,500원은 당연히 넘는데 여기는 3,800원밖에 안하는 데다 너무 맛있고 어쩌구.. 하는 리뷰가 달려 있었다. 그래봐야 몇 백원 차이라며, 단 한 번도 카페에서 커피의 가격을 생각하거나 이 카페와 저 카페의 가격을 비교하며 주문해본 적이 없었던 내게는 신선한 리뷰였다. 매일 거르지 않고 커피를 사먹었다면 나도 그걸 신경썼을지 모른다. 그렇지. 생각해보니 스타벅스 아메리카노가 4,100원에서 4,500원으로 오른지가 몇 달인데, 여긴 라떼가 아직도 3,800원이면 정말 싸긴 하지!


다행히 카페는 오늘 휴무가 아니었다. 시럽 없는 커피를 좋아해 평소에는 드립 아니면 아메리카노, 플랫화이트를 주문하곤 했지만 이번에는 방문자 리뷰에 있던 카라멜라떼를 시켜보기로 했다. 한 모금 마시자 피로가 날아갈 만큼 맛있었다. 카라멜라떼는 5,000원이었지만 지역화폐카드로 긁었으니 실은 4,500원인 셈이다. 이렇게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서 500원이나 할인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기분이 좋았다.


요즘 난 지역화폐가 주는 소소한 절약의 즐거움에 빠져 지역화폐 예찬론자가 됐다. 어느정도 정착기를 지났다고 보지만 그래도 아직 아는 사람만 알고 관심 없는 사람은 여전히 관심 없는 게 지역화폐다. 돈을 쓰는 데에 한두가지를 더 생각해야 한다는 걸 피곤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아서다. 지류상품권을 구입하거나 앱에서 충전하는 절차가 필요하고, 사용이 가능한 곳인지도 체크해야 한다. 나에겐 별거 아닌 일이지만, 엄마만 해도 이런 것들이 다 귀찮았는지 몇 번 쓰다 다시 신용카드로 돌아가곤 했다. 


보통 지역화폐는 5% 정도의 할인율을 보이지만, 추석이나 설에는 한도를 정해놓고 10% 할인 판매를 한다. 개인별 한도도 있지만 판매 한도도 있어서 다 소진되면 할인이 끝나고 기존의 5% 할인으로 돌아가는 식이다. 우리 시는 상품권 구매 시에 할인을 해줬지만, 지역에 따라 할인이 아닌 추가 적립(5만원 구매시 5만 5천원 적립)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 근 3년에 걸친 긴 코로나19 기간 동안 사회적으로 가장 뜨거웠던 화두를 꼽자면 아마 ‘경기침체’일 것이고, 지방에선 ‘골목경제 활성화’였을 거다. 그래서 팬데믹 상황이 지속되는 동안 정부는 지자체가 특정 시즌에 한정하지 않고 상시 할인 유지할 수 있도록 예산을 풀어 할인액을 보조해주곤 했다.


지역화폐가 얼마나 유용한지 알게 된 것은 그때부터다. 5%는 구미가 당기지 않았지만 10%는 얘기가 달랐다. 지역화폐의 구매 한도가 한 달에 50만원이니, 최대 한도로 쓴다면 5만원을 할인 받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물론 월급을 받아 카드값을 내고 나서도 수중에 현금이 50만원씩 남는 달은 거의 없었기에 한도를 다 소진할 수 있는 달은 드물었지만.., 그래도 필요할 때마다 그때그때 앱에서 상품권을 충전하고 식당, 카페, 주유소, 미용실, 서점, 약국 할것없이 요긴하게 썼다. 


하루는 친구와 동네 카페를 갔는데 친구가 체크카드로 결제하는 걸 보고는, 자리에 앉자마자 농협 앱에 들어가 지역화폐 카드를 신청해주면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기도 했다(친구는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다). 나는 현금이 없어 부득불 신용카드를 써야 한다면 모를까, 현금이 있는데 왜 지역화폐를 안 쓰냐는 타박으로 시작해 지역화폐가 얼마나 좋은지를 구구절절 설명하기 시작했다.


"너 주식해서 해봤지. 10프로 수익 낼 수 있냐. 안 되지. 5프로도 못 내잖아(내 얘기다). 다 손실이지. 근데 이건 가만히 있어도 그냥 10프로를 할인해준다니까. 100% 확률로 10% 수익을 버는 건데. 대체 왜 안 써? 돈이 그렇게 많냐, 아니잖아… 당장 카드 신청해. 앱으로 충전하면 진짜 편해."


물론 이런 간섭과 막말(?)을 늘어놓을 수 있을 만큼 절친한 사이였다.


한동안은 지역화폐가 단순히 ‘돈을 아껴주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14,000원짜리 밥을 먹었는데 사실 돈은 12,600원을 썼다는 뿌듯함, 그런 게 지역화폐의 맛이라고. 그런데 오늘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18,000원짜리 메뉴는 좀 부담스럽지만 16,000원까지는 괜찮을 것 같을 때, 떼놓고 보면 별 것도 아닌 2,000원의 심리적 장벽을 걷어내주는 게 지역화폐다. 18,000원 짜리 메뉴를 주문해도 실제 지출은 16,200원 정도라는 계산이 때려지면, 애초에 마음먹은 마지노선에 가까우니 흔쾌히 그 메뉴를 주문할 수 있게 되지 않나.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이건 무척이나 큰 차이다. 원래 쓰려던 돈보다 조금 덜 썼다는 것과, 확실한 할인율을 믿고 무언가를 좀 더 과감히 소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아주 다른 문제다. 


더 좋은 점은 지역화폐 구입이 꼭 그 지역민에게 한정되지는 않는다는 거다. 제로페이나 지역상품권chak 같은 앱을 깔면 정말 간편하게 다른 도시의 지역화폐를 구매할 수 있다. 그 지역 식당이나 카페 대부분을 10%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으니, 여행비 아끼는 데엔 이만한 게 없다. '꿀팁'을 주자면, 지역화폐는 다른 상품권들처럼 충전 후 일정 비율 이상 소진을 해야 환불받을 수 있는데, 만약 다 쓰지 못할 게 염려가 된다면 큰 단위(5만원)로 충전하지 않고 5천원, 1만원 단위로 여러 개를 충전(구입)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개별적인 상품권으로 인식되어 환불 받기도 좋다.


얼마 전에는 우리시 지역화폐 할인율이 10프로에서 5프로로 내렸다. 팬데믹은 막바지라지만 경기침체는 이제 시작인데! 미리 한도만큼 사두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그래도 다행인 건, 지역화폐만큼 사용처가 많지는 않지만 온누리상품권이 연중 10프로 할인율을 계속 유지한다는 소식(=공문)이었다.  


한 달에 5만원도 안 되는 금액. 더 쓰나 덜 쓰나 별로 티도 나지 않을 것 같은 돈이라고 해도, 써본 사람은 안다. 별 맛 없는 9천원 짜리 점심을 8,100원에 먹었을 때, 동네서점에서 6만원 어치 책을 사고도, 나는 여전히 인터넷 서점에서 산 것처럼 10%를 할인 받지만 서점에는 정가로 책값을 지불할 수 있을 때, 그게 얼마나 다행이고, 얼마나 기쁜지!


글을 쓰다 정신차리고 돌아 보니, 왠지 재테크 블로그에 ‘생활비 아끼는 꿀팁’ 같은 제목으로 올라가야 할 것 같은 '짠테크' 글을 쓰고 있다. 첫 주에 발행한 원고에 박람회 포스터를 넣었다가 회사 언니로부터 ‘참 공무원’이라고 모욕을 당했는데(우리 사이에서 이런 말은 통상 ‘욕’으로 본다).., 나는 자꾸만 왜 이런 글을 쓰고, 5만원에 마음을 쓰는 것일까?


아무래도.. 월급 때문일까?



권수정

순천시 주무관. 대학시절 5년을 포항에서 보내고 순천으로 돌아왔다. 지방에서 나고 자라고 공부하고 일하고 있는 만년 지방이. 여수 MBC 라디오에서 매주 한 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으며 <제주방랑> <권수정 산문집> 등 세 권의 독립출판물을 냈다. 때때로 상경한 친구들이 부럽지만 아무래도 지방이 몸에 맞다. 필진 중 유일한 미혼자로, 결혼할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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