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이닝과 역전 홈런을 향한 기다림
대통령님은 '야구 우승은 삶과 무관'하다며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프로야구에서 우승한다고 해서 기분은 좋을지 몰라도 자기의 삶과는 별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 말은 틀렸다. 야구는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당장 일요일 경기에서 이기면 화요일 퇴근 전까지 웃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나도 작년까지는 야구는 나의 인생과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야구는 인생과 같아'라고 말씀하셨을 때도 야구는 인생이 될 수 없다고 대답했다. 매번 지기만 하는 야구가 인생과 같다면 인생이 슬프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어쩌다 직관에 가는 날에도 오늘은 이기겠지 했지만 지는 날이 더 많았다. 덕분에 내 직관 승률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몇 년 간은 야구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 팀이 암흑기를 지나는 동안 내 인생도 암흑기였고 야구에서 위로를 받을 수 없었다. 야구에 괴로워하는 나를 보며 언니는 '팀을 바꿔'라며 잘나가는 팀으로의 팀 세탁을 권유했지만 그게 가능하면 벌써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아빠의 내리사랑을 어떻게 깬단 말인가.
그렇게 팀 세탁을 하지 않고 버틴 덕분에 이번 해에는 삶의 즐거움을 매우 크게 느끼고 있다. 매년 이렇게 삶의 기쁨을 주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내년을 기약하지 않은게 어딘가 싶다. 그리고 이렇게 팀이 잘 나가는 덕분에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말들도 많이 듣는다. 또 개인적으로 올해 전반기 때 힘든 일이 많았었는데 우리 팀 경기로 얻은 파이팅으로 버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 올해는 야구 덕분에 살 수 있었다.
덕분에 10년 동안 야구에 쓰지 않았던 돈을 올해 일시불로 결제하고 있지만 내년에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지금 달리는 기분도 나쁘지 않다. 후반기 들어서면서 전반기의 승수를 까먹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가을야구는 갈 수 있을 것 같다. 선수들도 팬들도 10년 만의 가을잔치에 기분이 들떠 다들 팀의 가을야구 스케줄에 인생을 맞추고 있다. 물론 나도 가을야구 스케줄에 맞춰 이번 년도 후반기 인생 스케줄을 짜는 중이다. 나의 인생도 중요하긴 하지만 언제 다시 내 인생에 이런 빅 이벤트가 올지 모르는 것 아니겠나.
그러니 대통령님의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프로야구에서 우승한다고 해서 기분은 좋을지 몰라도 자기의 삶과는 별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말씀은 틀렸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암흑기의 터널을 빠져 나오는 팀을 보고 파이팅을 얻어 전환점을 만들었던 내가 그 증거가 될 수도 있겠다. 오히려 우리 아빠의 '야구는 인생과 같다'는 말씀이 요즘엔 더 와닿는다. 인생도 야구처럼 버티고 버티다 보면 빅이닝을 만들 수도 있고, 패색이 짙어 보이는 경기의 9회 말에 역전 쓰리런을 치고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러니 야구를 끊기는 글렀다.
돌아오는 주에는 다시 리그가 재개된다. 유례없이 뜨거웠던 여름을 지나오느라 수고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페넌트레이스 끝까지 다시 힘을 내서 달려줬으면 좋겠다. 이번 해 독수리 한마당에서 이번 시즌을 돌이켜보며 모두가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 끝까지 응원할 것이다. 창화신의 말처럼 '이글스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그 날까지' 팀 세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