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다니고 있습니다

번갯불에 콩 볶듯 해버린 퇴사와 이직

by Claire

퇴사를 했다. 그리고 이직을 했다. 집 앞 20분 거리의 회사에서 나와 1시간 거리의 서울의 회사로 들어갔다. 이전 브런치에도 썼던 서울 통근 로망이 실현되었다.


예전 그 자리에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아 이직을 결심했다. 그냥 그렇게 사는 것에서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서울과 지방, 심지어 언니가 있는 해외를 가리지 않고 몇 군데의 회사에 서류를 넣었지만 나같은 사람이 너무도 많았다. 그러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언니가 다니는 회사의 인턴 자리가 비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막연하게 생각하고만 있던 업계였다. 일주일 동안 고민하다가 반나절만에 서류를 작성해 보냈다. 이틀 뒤 면접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고, 면접을 보고 오는 버스 안에서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월요일에 출근해 퇴사 의사를 밝혔고 그날 저녁 회식을 하고는 퇴사했다.


거의 당일 퇴사나 다름없었던 퇴사에 다들 잘 가는거 맞지? 라고 물었다. 잘 간다고 대답은 했지만 사실 나도 내 미래를 잘 모르는 상태였다. 이전 회사의 위상은 업계 최고였고 다들 회사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왕복 40분의 통근거리와 고정된 업무가 주여서 1년은 편하게 다녔다. 업무를 다 하고 나서 자기 시간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2년 차에 접어들고 나니 이렇게 살아도 되는건가 하는 위기감이 들었다. 편하게 다니긴 하지만 내가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엄마한테 얘기했더니 다들 그렇게 산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 살기 싫었다. 그래서 퇴사했다.


새로운 곳은 정말 빠르게 돌아가는 회사다. 하루에도 몇 번씩 클라이언트와 접촉해 요구를 들어줘야 하고, 몇 번씩 새로운 일이 들이닥치고, 밖을 돌아다니며 확인 작업을 몇 번씩 해야 한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편하게 회사를 다녔는지 절감하는 중이다. 지난번 회사 1년 7개월 다닌 동안 배운 것보다 이 회사 한 달 다니면서 배운게 더 많다. '우리 회사만큼 조용한 회사도 없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내 기준에선 무척 시끄럽고 바쁜 회사다. 바쁜 만큼 경험할 수 있는 것도 많고 성취감도 엄청나다. 피곤하긴 하지만 그래도 커리어에는 분명 도움이 되는 듯하다. 시간이 난 김에 경력기술서 업데이트를 했는데 한 달 만에 적을 것들이 줄줄이 늘어났다. 경력이 있어도 적을 것이 없어서 고민하던 때가 떠올랐다.


바쁜 만큼 몸도 축나서 집에 오면 씻고 눕기 바빴다. 학교 다닐 때도 간신히 일어나서 수업 가던 애가 새벽 여섯시 알람에 벌떡벌떡 일어나서 가는 것을 보고 엄마가 그냥 그 회사에서 버티지 그랬니, 하는 말씀도 하셨다. 전 회사 팀차장님들이 정말로 잘 가는 것 맞냐고, 축하해줘야 하는거 맞냐고 묻던 목소리들이 겹쳐 들렸다. 엄마한테 그래도 이번만큼은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지금 나는 피곤하고 바빠도 매일매일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있으며, 내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적을 것을 만드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고 말했다. 학교 다닐 때부터 항상 꿈꾸던 서울 통근을 하면서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남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면서 나도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적어도 예전 그 자리에 앉았을 때 느꼈던 위기감은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이 말을 하면서 나도 조금은 자기 합리화를 했다.


실제로도 예전보다 조금 더 유동적인 삶을 살고 있다. 무작정 광화문까지 걸어도 가고, 친구들도 퇴근 후에 만날 수 있었고, 예전부터 너무너무 하고 싶었던 퇴근 후 야구 관람도 몇 번 실행했다. 그리고 이번 달부터는 학원에 등록했다. 한 달 전에는 갈 곳이 없어서 헤매다가 결국 카페로 들어가 버리곤 했었는데, 이제는 새롭게 갈 수 있는 곳들이 많이 생겼고 마음에 드는 곳에 들어가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다.


그래도 지금 잘 살고 있는지를 가끔 돌아보게 된다. 이 업계에 정말 잘 들어선 것인지, 계속 이러고 살아도 되는 것인지, 내 미래는 어떻게 될지를 생각한다. 이 자리에서 버텨야 하는 것인지, 다시 나와야 하는 것인지를 끊임없이 되묻게 된다. 아마 회사원으로 평생을 산다면 이 고민을 평생 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어떤 답을 골라야 할까. 또다시 잠 못 이루는 새벽을 맞이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