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PO 3차전 직관 후기.txt
1. 여섯시 반 시작인데 여섯시 반에 회사에서 나왔다. 고척에서 기다리고 있는 언니가 왜 안오냐고 전화 오고 난리나길래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퇴근했다. 지하철 타고 가는데 가는 도중에 2점을 내서 앞서나가고 있었다.
2. 신도림에서 인천행 열차 갈아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앞뒤옆 사람들이 다 한화팬이었다. 다들 유니폼 손에 들고 가을잠바 입고서는 폰으로 중계를 보고 있었다(물론 나도). 다들 발 동동이었다. 퇴근 시간이라 밀려밀려 열차를 탔다.
3. 구일역 전 정류장은 구로다. 신도림 만큼은 아니지만 사람이 많이 타는 곳 중 하나다. 인천행 열차를 탄게 너무 오랜만이라 어느 쪽으로 내리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내가 서있던 곳 반대편이 내리는 문이었다. 구로에서 탄 승객들이 입구를 막고 있자 발 동동하던 팬들이 “잠시만요 내릴게요!” 하고 외쳤다. 다들 마음이 급했다.
4. 그리고는 내리자마자 다들 승강장을 달려나갔다. 이기고 있는데 빨리 들어가야 한다는 마음에서였을까. 유니폼 쥐고 있거나 입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뛰었다. 우리 팀이 이기고 있는데 빨리 가야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다들 계단 뛰어오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고척돔까지 다들 종종걸음으로 갔다.
5. 역전과 동점을 거듭한 경기였다. 중요한 실책이 많이 나와 이기고 있으면서도 불안했다. 오늘만큼은 지고싶지 않았다. 너무 오랜만에 가을야구를 한 탓에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어버버하다가 떨어졌다는 그런 조롱은 듣고 싶지 않았다. 목 터져 나가도록 응원을 했다. 파도가 세 번이나 돌았다. 지고 싶지도 않았고 질 것 같지도 않았다.
6. 9회 초 호잉이 선두타를 치고 나갔지만 포스아웃 당하고 1루 주자 이성열만 남았다. 5번 타자 김태균. 가을 들어서 폼이 안좋았지만 제발 뭐라도 하나 했으면 했다. 들고 갔던 김태균 마킹 유니폼을 들고 기도했다. 제발 하나만 쳐달라고. 그리고 김태균의 우중간을 가르는 타구로 다시 역전했다. 이글스 레전드의 한 방이 오늘 경기를 이끌었다.
7. 9회 말 수호신이 다시 마운드에 올라왔다. 다들 끝내달라고 두 손을 모았다. 상대편 타자의 방망이가 헛도는 순간 다들 부둥켜 안았다. 오늘 하루 이 경기를 보려고 점심도 안먹고 다녔던 종종걸음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8. 집에 돌아와서 하이라이트를 다시 보는데 9회 초에 홈으로 들어온 주장님이 헉헉대면서 무릎을 꿇는 것을 보고 괜히 눈물이 찔끔 났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김태균이 우리가 이렇게 끝날 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얘기에 울컥했다. 다들 간절하고 아직 포기한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9. 오늘 경기로 우리는 ‘내일’을 얻었다. 내일이 안보였지만 오늘로 다시 내일이라는 기회가 생겼다. 우리의 가을이 이렇게 끝나지 않길 바란다. 다시 한 번 우리가 이렇게 끝날 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다시 대전으로 내려갈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