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나의 소중했던 그 아이에게...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류시화 시인의 시구에 치기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아리다.
여고 동창생으로 만나 사회 초년생이 될 때 까지도 우리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늘 함께였다.
보통의 그룹에서 그러하듯이 캐릭터가 비슷하면서도 다 달랐던 우리는 여섯 명이 함께였고, 집단 속에서도 또 제각각의 친밀도가 달랐다.
나는 그중에 A라는 친구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지냈다. 가슴 아프게도 대학시절 그 친구의 어머니께서 암투병을 하시다 돌아가시면서 자연스레 그 친구를 위로한다는 의미로 그 친구 집에 가서 함께 수다로 밤을 새운 날들이 많았고, 그 친구 또한 우리 집에 놀러 와 우리 어머니에게 친딸인 나보다도 더 살갑게 굴며 내가 없어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로 잘 지냈다. 정말 친자매라 할 만큼 가까이 붙어 지냈다.
그렇게 함께이던 우리는 20대 중반을 막 넘어서며 각자 새로운 삶의 진출로 바빠지다 보니 이전보다는 함께 할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그렇대도 늘 우리라는 이름 속에서 서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서로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되는 존재인건 여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렵사리 누군가의 생일에 맞춰 다 같이 볼 약속을 잡았다. 몇 차례 약속일을 바꿔가며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약속일에 그 친구가 ‘회사에 일이 생겼다.’ 며 약속에 나오질 못 했다. 다 비슷한 처지의 신입사원들이었던 터라 이해 못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우린 알고 있었다. 우리 안에서 그녀는 항상 우리보다는 남자친구와의 약속이 중요했고, 그를 위해 소소한 핑곗거리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당연히 저 날의 파투 난 약속도 회사일 때문이 아니란 사실도...
결국 우리는 “그동안 네가 한 거짓말들을 다 알고 있으니 솔직하게 대화를 하자. 계속 이렇게 모른 체할 순 없잖느냐?” 고 제안했으나 그녀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우리라는 이름을 버렸다.
상황을 아시던 나의 어머니는 “지나고 보면 친구 간에 별 일도 아닌 것을 그냥 이해하고 넘기지. 뭐 하러 굳이 따져? 친구끼리... 조금 봐주지.” 라며 안타까움에 조언을 하셨더랬다. 거기에 나는 “나도 엄마처럼 50대가 넘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어도 20대인 우리에겐 중요한 문제야.”라며 옹졸한 응수를 했다.
그런데 알겠다.
50대가 아직 되지도 않았지만 사유야 어찌 되었든 그녀는 혼자였고, 우리는 다수였다는 사실부터 상처의 크기는 그녀가 더 클 거라는 것을...
어쩌면, 그때도 알았는지 모르겠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친구라는 이름으로 쨍하게 빛났고, 그 핑계가 우리라는 잣대를 높였고, 파랗게 날 선 자존심으로 굽히지 않았던 그때의 나에게, 그리고 또 너에게 말해 주고 싶다.
그때의 ‘우리’라는 관계 정의를 위해 입장 정리를 하고 싶던 내 마음은 결국 정리되지 못한 채 17년 동안 마
음 깊은 곳에 성근 감정의 먼지로 남아있다고...
하지만 조금 더 세월이 흘러 켜켜이 쌓인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면 결국 가장 빛나고 예뻤던 너와의 고운 시절만 남아 있단 걸 안다고...
그러니 감히 바라건대 네 마음속에도 빛바랬지만 온기와 정은 남아있는 따뜻한 우리로 회상되기를 바란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