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지

작은 말이 큰 힘이 될 수도 있잖아요.

by 은쓰다
오늘의 사연입니다.


동네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카페 사장입니다. 지난주 초임 팀장이 된 분의 사연을 듣고 남일 같지 않아 마음이 쓰였습니다. 커피를 달고 산다 했는데, 한 잔 내려주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저도 직장 생활을 20년 넘게 하다가 지난주의 사연자님처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것이 힘들어 회사에서 희망퇴직을 받을 때 가슴속에 매 년 한 장씩 묻어두던 20장짜리 사직서를 내어버리고 과감히 회사를 나왔습니다.

그래도 20년간 한 직장에 다니면서 쌓인 퇴직금과 희망 퇴직자에게 주는 위로금(?)이 있으니 재취업 전까지는 버틸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다 동네에 작은 커피숍을 하나 차렸습니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들이 모여있는 생활권 동네라서 대박까지는 아니어도 입소문이 난다면 적당히 벌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선택했어요. 회사를 다니면서 직장인 환급반으로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한 적이 있었는데 배울 때 한창 재미를 느껴봤던 터라 나중에 회사에서 정년퇴직하면 실버취업으로 커피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봐야겠다고 생각도 했었구요.

사실 회사를 관둘 당시에는 꼭 무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고, 무슨 용기인지 덜컥하고 희망퇴직 포스터를 보고 일주일쯤 고민한 후에 동료들에게 말도 없이 신청을 해버렸습니다.

물론 남편과는 상의를 했었구요. 저는 흔히 말하는 딩크족입니다. 초등학교 동창생인 남편을 만나 친구처럼 연인처럼 지내다가 조금 늦게 결혼을 했어요.

일부러 아이를 안 갖잔 건 아니었는데 그냥 30대 후반에 서로 회사생활에 제일 바쁜 때쯤에 결혼해서 각자의 커리어를 위해 열심히 보내다 세월이 갔고, 그러다 이제는 40대 후반으로 꺾이는 나이가 되다 보니 이렇게 되었네요.


포스터를 보고 와서 남편에게

"우리 회사 이번에 희망 퇴직자 신청받더라. 지금 신청하면 조건이..."

라고 저녁 식사를 하면서 사실을 얘기했을 뿐인데, 평소에도 크게 말이 많지 않은 내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얘길 듣더군요. 그렇게 얘기는 끝이 났었어요.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출근 엘리베이터에서 남편이

"하고 싶으면 해."

라고 하더군요.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뭘 해?"

"희망퇴직. 20년간 정말 열심히 했잖아. 잠시 쉬어가도 돼."

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울컥했습니다. 내가 희망퇴직을 하고 싶다고 말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옆에서 오랜 시간 지켜보던 남편이 가슴속 깊이 있던 제 마음을 알아준 것 같아서 울컥 눈물이 났어요.

남편은 울먹이는 저를 보고는

"나는 그동안 점프 업한다고 이직이라도 해서 업무상 부담도 있었지만 리프레시라도 됐는데, 자기는 한 회사만 다녀서 길게 쉴 시간도 없었잖아. 잠시 호흡 가다듬고 다시 시작해도 충분한 나이야. 우리... 그리고 내가 너 하나 못 먹여 살리겠냐?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난 뭐든지 찬성!!"

이라고 말을 했어요.

그 말에 저도 모르게 울컥함을 넘어 왈칵하고 눈물이 터져버렸습니다. 남편은 제 가방을 뒤져 손수건을 꺼내주며 달래주었고, 지하 주차장에서 문이 열리자 어머니뻘 되는 아주머니께서 우리를 보시고는

"으이구~ 신랑. 왜 아침부터 색시를 울리고 그래?" 라고 하셔서 저희는 꾸벅 인사를 하고 머쓱하게 내려와 각자 회사로 출근을 했습니다.


이렇게 특별히 제2의 인생을 계획한 채 퇴직을 한건 아니었고, 기왕 하게 된 퇴직이니 잠시 쉬어갈 겸 제 인생의 넥스트스텝을 고민할 겸 3주 정도 여행을 다녀왔었습니다. 대학 때도 못 해본 유럽 배낭여행을 다 늙어서 하려니 쉽지 않았지만 배낭여행의 낭만을 느껴보겠다면서 일부러 중간중간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냈어요.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자연스레 한국 학생들을 만나게 되더군요. 반가운 마음에 햄버거만 먹고 지낸다는 학생에게 스테이크도 사주고, 게스트 하우스 주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러 젊은 친구들과 대화도 했습니다. 마침 제가 커피를 좋아해서 원두와 휴대용 그라인더를 가져갔던 터라 커피도 한 잔씩 내려주며 꼰대력을 조금 섞어 인생상담도 해주곤 했어요. 회사에서는 어린 사원들에게는 불편할까 봐 말도 걸기 어려웠는데 바깥세상에서는 생각보다 어린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쉽더라고요. 사실 그때는 그냥 재미있고 좋은 마음에서 한 행동이었는데 한국에 와서 생각해 보니 괜한 오지랖이었나 싶었는데, 지금까지도 가끔 카페에 일부러 와 주는 친구도 있고, 그때 제가 해준 말 때문에 진로를 선택했다는 얘기까지 하면서 신입사원이 겪는 어려움도 토로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조금 과장하면 첫사랑에 실패만 안 했어도 아들, 딸 뻘쯤 되는 친구들을 보면서 저도 요즘 친구들의 거침없는 용기에 힘을 얻고 온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서 고민 끝에 카페를 차린 건데요. 작아도 내 사업이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시간도 여유롭게 부리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웬걸요. 직장인에게는 국가에서 정해준 휴가도 있고, 회사에서 꼬박꼬박 챙겨주는 복지들이 있었는데 그런 것 하나 없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제가 결정하고 운영해야 하다 보니 쉽지가 않네요. 모든 일이 시간이 가면 익숙해진다는데 어쩌면 이렇게 매일이 새로운지 아주 신생아가 된 기분입니다.

아무래도 접객이 필요한 일이다 보니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생겨요. 자영업자들이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 이름이 「아프니까 사장이다.」라는 것이 있던데, 이 말이 딱 맞아요.


한 달 전쯤의 일입니다. 거의 매일 오는 여성 고객이 평소처럼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앉아서 노트북을 하고 있었습니다. 거의 매일 와도 구석 자리에 조용히 앉아서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하며 한 두어 시간쯤 시간을 보내다 가는 친구라서 서비스로 쿠키를 몇 번 내어준 적 있었어요.

고맙다고 꾸벅 인사는 하지만 아무 말도 없는 친구라 저도 불편할까 싶어 조용히 쿠키를 탁자에 두고 제 자리로 오곤 했요. 쿠키를 건네면서 슬쩍 보인 화면들을 보면 취준생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날은 구석 자리에서 "어..어...어! 와~" 하는 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랐어요.

역시 아지트처럼 자주 수다를 떨러 오시는 50대 여사님들 세 분이 계셨는데 모두 놀라 그 친구를 바라봤죠. 여사님들 중 한 분이

"아이고 깜짝이야. 다운아, 뭐야? 무슨 일 있어?"

라고 묻자 그녀는 동그란 얼굴을 발그레 붉히며 떨리는 목소리로

"저... 입사 지원한 곳 합격 됐어요."

라고 대답을 했고, 거기 있던 모두가 박수를 쳤어요. 여사님 중 한 분은 잘 아는 사이이신지

"아이고, 잘 됐다. 잘 됐어. 이제야 엄마가 한시름 놓겠네. 힘들게 교대 나와놓고 일 안 한다고 그렇게 걱정하더니..."

괜히 남일인데 저랑 여사님들이 더 호들갑을 떨며 축하를 해주자 그 여자분은 자리에서 일어나 노트북을 주섬주섬 챙겨 에코백에 넣더니 여사님들 자리에서 한 번 인사를 하고, 제 자리로 오더군요.

그러더니 아직 발그레 상기된 얼굴로 에코백을 가슴에 꼭 끌어안은 채 말을 하더군요.

"사장님, 고맙습니다. 저 여기서 아랍어 공부해서 모로코에 있는 회사 취업했어요."

"네? 고맙긴요. 제가 뭘 했다고요. 본인이 노력했으니깐 좋은 결과가 있는 거지. 다시 한번 정말 정말 축하해요."

"아니에요. 정말 사장님께 감사해요. 저 사실은 사장님 응원 덕분에 용기를 낼 수가 있었어요."

"아... 그래요? 그렇게 말해주니까 고맙네요. 그럴 줄 알았으면 쿠키 좀 더 줄걸..."

이라고 웃으며 대답하자 그 친구가

"아... 아니에요. 이거요."

라면서 에코백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어 내밀더군요. 손에 들린 걸 보니 코스터용 종이였습니다.

그제서야 저도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더군요.


사실은 제가 이 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어주면서 코스터에 메모를 써서 준 적이 있었습니다. 커피숍을 운영하면서 무언가 제 나름대로 특색을 내어보고 싶어서 인테리어 소품이며 커피잔 등을 신경 쓰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커피숍에서 시간이 많다 보니 책을 많이 읽게 되고 읽다가 좋은 글귀가 있을 때 '이런 좋은 말들을 같이 나누고 싶다.' 는 생각이 들어서 실리콘재질로 투명하게 코스터를 만들고 그 안에 메모지를 넣을 수 있게 제작을 해서 좋은 글귀들을 프린트해서 넣어서 손님들에게 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속에 슬쩍 제가 쓴 글도 끼어서 내보내기도 하고요. 제 나름대로 그 손님에게 어울릴 것 같은 글을 넣어서 줘요. 마음에 들면 가져가셔도 된다고 안내해둬서 가끔 기념품처럼 코스터안의 글귀적힌 종이를 가져가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실은 지금 말한 이 손님은 사실 동네 여사님들 덕에 대충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었어요. 30대 초반의 취준생이고, 교원 자격증까지 있어서 교생실습까지 한 후에 교사를 택하지 않고 다른 일을 준비 중인 상황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커피숍에 와서 취업 준비를 하는 듯 보였는데, 뭔가 알아듣지 못할 언어를 공부하는 듯 보이더라구요. 궁금은 했는데 묻지는 않았죠. 그런데 역시 어느 날엔가 어떤 여사님이 자식 생각하는 마음에서인지 그녀를 보고는

"다운아, 너 또 여기 있어? 늬 엄마가 너 때문에 이 커피숍에를 못 온다더라. 아니, 그 좋은 선생 놔두고 뭔 이상한 공부 한다며?"

라고 하자 그녀가 아무 말 없이 노트북을 챙겨 그분께 목례를 하고는 황급히 나가더군요.

일 이후, 며칠 후 다시 온 그녀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어주며 코스터에 손으로 쓴 메모를 넣어 주었습니다.

슬쩍 보니 한참을 그 코스터를 바라보다가 다시 노트북에 열중하는 그녀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어요.

그때 건넨 그 메모였습니다.


그 메모를 건네며 활짝 웃는 그녀의 환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지더군요.

사실 제가 오지라퍼여서 여행지에서 만난 어린 친구들도 못 지나치고, 가게에 오는 단골손님에게도 남일 같지 않아 한 작은 행동들을 진심으로 받아들여줘서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얼마 전에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어보려고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흔히 말하는 억지 손님을 만나서 고생을 하고 현타가 와서 과거로 돌아가 희망에 부풀어 희망퇴직서의 제출 버튼을 클릭하던 제 손을 잡아버리고 싶은 심정이 들었었지만, 이런 순간에는 또 클릭한 제 손가락이 감사하기도 하네요.

사장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직장생활 때 보다 더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해요. 특히나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내 잘못도 아닌데 잘못이 되고, 좋은 마음이 현타가 되어 돌아오고, 조금 낸 욕심이 뼈아픈 손해로 돌아오기도 해서 참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는 오지라퍼여서 지금처럼 사람들에게 받는 스트레스를 사람으로부터 치유받는 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주 사연에 제 직장 생활이 떠오르기도 하고, 요즘 제 생활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 사연을 쓰다 보니 길어졌네요.


DJ님, 사장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쉽지 않은 요즘...

그래도 또 파이팅 해가며 하루하루 지내고 있는 저와 모든 대한민국의 용기가 필요한 청춘들에게 파이팅 좀 불어넣어 주세요.




긴 사연 잘 들었습니다.

힘들다고는 하셨지만 오히려 삶을 충만히 채우며 열심히 살아가시는 것 같아 좋아 보여요.

용기를 불어넣어 달라고 하셨는데요.

글쎄요. 필요할까요?

이미 사연자님은, 그리고 남편분도, 또 사연자님을 통해 무언가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된 여러 청춘들이 저보다 훨씬 용감한 선택을 하며 인생을 살고 계시는 듯한데요. 뭐...


인생은 그런 것 같아요.

재능과 노력 사이에서 용기로 결정되는 거라고...

이 용기가 결국 '내일의 나'를 결정해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사연자님은 이미 충분히 '용기 있는 오늘의 나'로 살고 계신 것 같습니다.


커피숍을 하신다고 하셨고 특색 있는 카페를 만들려고 하는 듯 보여서 듣다가 생각난 아이디어인데요.

메뉴 중에 'coffee chat'을 넣어보면 어때요? 지금처럼 방황하는 청년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대화를 해 보는 거죠. 직장 생활을 20년 넘게 하셨으니 그 경험 자체가 청년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카페에서 시간이 좀 여유롭다고 하셨으니 심리에 관한 공부를 해서 조금 더 전문적 카운슬링을 해 보시면 어떨까요?

무엇보다 카운슬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들어주는 것부터라고 했는데 사연자님의 얘기를 들어보니 사연자님은 섬세하게 상대를 읽을 줄도 알고 적절한 피드백도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지 싶어서 아이디어 하나 던져 봅니다.

혹시 이걸로 매상 오르면 저도 커피랑 쿠키 꼭 보내주셔야 해요.


파이팅을 불어넣어 달라셨는데, 오늘은 제 답변이 필요 없겠어요.

사연자님의 삶이 이미 충분히 저와 청취자들에게 귀감이 되어 용기 뿜뿜 하게 만들어 주셨는걸요?!

사연자님이 고객분께 써준 글 보고 저도 오늘부터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돌이 구르긴 하나요? 곰도 아닌데...

하지만 곰도 재주를 부리는데 사람이 못 할 게 뭐 있겠어요?

그러니 우리 모두 뭐라도 파이팅 해봐요.

저도 오늘부터 열심히 굴러볼게요.


노래 들려드립니다.


[황규영의 '나는 문제없어']

https://music.youtube.com/watch?v=7N61DB-L3oY&si=URjKVB0JU5QgUx_l

** 출처 : 유튜브뮤직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 끊임없는 선택을 합니다.
매일을 똑같이 사는 건 정말 대단한 끈기입니다.
가끔은 포기가 더 큰 용기일 때도 있고,
어떨 때는 해보는 것 자체가 답인 경우도 있죠.
때로는 가만히 있는 것도 내일을 위한 호흡 고르기이기도 해요.

그래서 우리가 하는 그 모든 것들은 다 옳고,
당신이 보낸 어제와 오늘은 늘 소중한 거예요.
그러니까 내 쪼대로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뻔한 말도 가끔은 내 인생의 한 마디가 될 때가 있죠?
짧은 글로 힘이 되는 하루가 되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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