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난 양말

by 마리













구멍 난 사람으로 보일지 모른다는 공포감은 가끔 손녀를 찾아온다.

왜 바늘구멍만한 마음의 구멍을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타인에 비해 유독 부끄러움과 창피함, 수치스러움을 많이 느낀다고 스스로 생각해 왔다. 당연한 의견도, 문득 떠오르는 실없는 농담도 어쩐지 요즘 들어 손녀의 입 밖을 벗어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비난받는 것이 유난히 두려운 시기가 있는데, 요즘 손녀는 콩알만 한 비난도 유독 시리게 느껴진다.



마음에 구멍 하나 없이 말끔한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어떤 바퀴에 구멍이 났다면 바늘구멍만큼 작아도 치명적인데, 감정에는 크고 작은 구멍이 나더라도 사람들은 아무 일 없는 듯 살아가는 듯 보인다. 아니면 남들 모르게 꽁꽁 감추고 사는지도 모른다. 다들 보여주지 않으니까, 모두가 구멍 하나 없이 단정한 감정을 가진 것처럼 보이니까, 손녀는 마음의 구멍을 드러내는 일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믿어왔다. 그래서 그 구멍을 저 깊숙이 감추기로 했다.



그러다 더는 가릴 수도 숨길 수도 없을 만큼 마음이 무거워졌을 때, 손녀는 어쩔 수 없이 실눈을 뜨고 자신의 치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걱정했던 것만큼 흉하지도 않았다. 고개를 들고 둘러보니, 사람들은 그 정도쯤은 구멍이라 부르지도 않는 듯 태연했다. 이맘때 흔히들 마주하는 마음의 상태라며 웃어넘기는 얼굴들도 있었다. 손녀는 그제야 조금 멋쩍었다.



바늘귀만 한 구멍도 견디기 힘들어하던 이유를 더듬다 보니, 다부지게 꿰매진 나의 어릴 적 양말들이 생각났다.



할머니는 손녀에게 완벽한 사람이었고 무한한 사랑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의 삶은 늘 정갈했고, 주변의 모든 소중한 것들도 완벽하길 바랐다. 그 모든 소중함이 흠집 나지 않기를 바랐다. 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온전하고 부족함 없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만큼은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금방 깨질 것 같은 연약한 투명한 구슬을 다루듯 깨지지 않도록 온 정성을 다하는 할머니의 사랑을 손녀는 아낌없이 받았다.



할머니의 사랑은 언제나 정갈했다. 구멍이 날세라 미리 꿰매고, 흐트러질세라 다잡았다.

구멍 난 양말 대신 다부지게 꿰맨 자국이 남은 양말을 보며, 손녀는 마음을 다잡았다. 무언가 마음으로부터 새어나가지 않기를, 언제나 정갈한 마음을 지니기를, 혹여 새어나간 감정이 타인에게 불편이 되지 않기를. 그렇게 손녀는 절제하고, 인내하고, 잘 다듬어진 어른으로 자랐다.



스스로의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손녀는 이제야 알아가는 중이다. 어려운 감정은 관계에 구멍을 내기 전에 혼자 삼켜야 한다고 믿어왔다. 누군가에게 마을 얘기하는 건 손녀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마음의 구멍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 같기도 했고, 그 관계에 구멍을 내는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구멍 난 양말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것처럼.



마음은 원래 구멍도 나고 메워지기도 하고, 구멍 난 채로 괜찮기도 한 건데. 괜찮다는 말을 할머니는 한 번이라도 들어봤을까? “순례야, 마음이 좀 속상했지? 이해해. 괜찮아. 털어놓아도 괜찮아.”



이건 손녀가 수년간 수치심과 거절에 취약한 스스로를 이해해 가면서 할머니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될 때쯤 든 궁금증이다. 할머니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꼭 있었다면 좋았겠다. 그게 손녀가 되지 못했어서 미안할 뿐이다.



그래도 손녀는 스스로에게 “괜찮아.”라고 말하는 걸 배워가는 중이다.

빈틈없이 삶을 살아낸 할머니가 이제는 따뜻하고 편안한 곳에서, 조금은 헐렁하고 느릿하기도 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기를 손녀는 기도한다.



마음에 구멍 좀 나면 어때, 그대로 두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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