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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튼바이시리우스 Jul 08. 2020

지식이 삶의 낭만을 묵살하지 않기를

지식보다 존중받을 삶


출처 : Pixabay


나의 허황된 지적 열망이 때로는 욕망과 시기로 변한 모습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지식이라는 녀석이   베어 물고 남아있는  삶이, 누군가의 낭만을 지워버리지는 않았을지 두렵기도 하다.




사람을 위하는 일을 하기에 세상을 이해하고 사람을 헤아리는 지식이 필요하다 여겼다. 하지만 지식이 많다고 하여 그와 같은 결과를 가질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많은 지식을 품는다고 하여 삶의 효율이 완성되는 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별한 사람에게 아픔은 3개월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심리학을 전할 필요는 없다. 이별한 마음은 아스피린을 먹으면 나아진다는 이야기를 전할 마음도 없다. 아픔이 원하는 것은 효율이 아니고 아픔은 눈물을 멈추게 하면 된다는 결론을 따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각자의 아픔과 눈물은 나름의 존재로 받아들여져야  순간이 있다.

알아낸 것들을   있을 만큼만 설명하는 지식이, 삶의 보편 값만 기억하는 지식이, 때로는 각자의 삶과  속의 낭만을 묵살하지는 않을지, 보편적인 것들이 가지는 함정이 오히려 나의 시선을 가둬두지는 않을지, 그렇게 지식이 삶의 낭만을 묵살하지 않기를 경계한다.

 사람을 이해하기보다  줄의 텍스트를 이해하는 일이 더욱 존경받지 않기를 바란다. 지식은 저마다의 삶에서 보인 결과들을 하나로 묶은 책일 뿐이며, 각자의 삶은 여전히 책에 담지 못할 저마다의 낭만을 품고 있다.

누군가의 삶과 감정은 지식이나 원리로 설명할  없는 고유함이자 낭만으로 기꺼이 존재하기를 바란다. 안다는 것의 욕망과 한계에 갇혀 누군가의 삶을 재단하려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스스로에게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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