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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튼바이시리우스 Jul 14. 2020

씨줄과 날줄의 삶

옷의 모든 부분이 기억되기를

출처 : Pixabay



오래전 명동성당이었다. 추기경님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며 말씀하셨다.

“씨줄과 날줄처럼 하루하루의 인생이 만들어집니다.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며 아름다운 줄을 엮을 수도 있고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 주어 더러워진 줄을 엮을 수도 있습니다. 한 번 만들어진 줄은 다시 만들 수도, 고칠 수도 없이 내가 입은 옷감이 되어버립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만들어진 그 옷을 입고 우리는 죽어서 하느님 앞에 서게 됩니다. 내가 입은 옷이 아름다운 옷이 되도록 살아갑시다.”




며칠간 나는 그 날의 말씀이 떠오른다.

사람은 그가 걸치고 살아온 옷으로 헤아려진다. 보이지 않는 아래쪽 어디에서, 때로는 덧대 기워 입은 흔적들에서 오히려 그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게는 누군가를 ‘존경한다’는 말이 무겁다. 기워 입은 흔적까지, 그의 씨줄과 날줄이 가진 사연과 감촉까지 모두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생과, 생이 담은 진심과, 가려진 잘못까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는 삶의 몇 가지 행위만으로, 몇 가지 언행만으로도 옷 전체를 평가받는다. 각자의 기준과 취향과 기억에 담아놓은 부분만으로 타인의 옷을 평가한다. 그러하기에 생이 끝나는 날까지 늘 나다운 모습으로, 한결같은 방향으로 씨줄과 날줄을 엮어야겠다고 깨닫는다. 그제야 비로소 사람들에게 같은 옷을 걸친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을 테니.

그가 어떤 희생이나 열정으로 세상에 기여했거나, 어느 이들을 위로했거나 또는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책임졌다면 우리는 그것을 업적이나 희생으로 부른다. 그리고 더럽고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그 또한 얼마나 정성스러운 바느질로 기워왔는지도 함께 기억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누더기 진 옷에 부끄러움을 가진 사람들을 기꺼이 용서하고 껴안기도 한다.

나는 얼마나 가지런한 바느질을 보이며 살았을까나. 나는 어떠한 고뇌와 반성과 성장을 기워가며 살았으려나. 생이 끝날 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깨끗한 옷을 입었기보다 누구에게나 한결같은 옷을 걸치고 살았던 사람으로 비치길 바란다. 부족하고 더러운 부분을 고치느라 누더기 진 옷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본다.

누군가의 옷이 얼마나 깨끗하고 아름다운지, 어느 단쯤에는 얼마나 지독한 때가 묻어있는지를 하나로 셈할 수는 없다. 그리하여 옷에 하나의 등급을 붙이거나 하나의 점수를 매길 수는 없다. 어쩌면 그것이야 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리라.

누군가의 옷이 제대로 기억되길 바란다. 그의 옷이 가진 깨끗한 부분이 기억되길 바란다. 하지만 기우지 못한 더러운 씨줄과 날줄이 남아있다면 그 또한 마땅히, 옷의 부분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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