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에게 전하는 말
‘사회복지사는 전문가입니까?’
어느 복지관의 입사지원서에 제시된 문항이다.
신입 지원자들의 답변은 대략 이러했다.
“사회복지사는 전문가입니다...... 저는 아직 전문가라고 이야기하기엔 부족함이 있지만...... 전문가로서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그것은 본인이 배운 지식과 기술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는 불안감 때문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본인이 특정 분야에 아직 입문하지 못했음을 인식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정규 교육과정과 국가시험을 통해 1급 자격증을 가진 지원자가, 사회복지사는 전문가이지만 본인은 아직 전문가가 아니라고 답한다. 이는 같은 사회복지사라도 전문가가 있고 아직 전문가가 아닌 사회복지사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이란 것이 의미하는 유효기한은 언제인 것일까?
1900년대 초반, 사회복지사는 전문직으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것은 사회복지의 범위가 너무 넓고 사회복지사의 업무 역시 다양하여, 다른 역할과의 경계가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사회복지사에게 조직된 교육 훈련이 불가능했기에 전문성이 부여될 수 없었다. 이후 사회복지사는 전문직의 요건을 갖추고자 사회복지의 초점을 좁혀 이론과 교육훈련을 강화하고, 전문가협회와 윤리강령을 만드는 과정들을 거쳤다.
그렇게 100년이 지난 현재, 사회복지사는 전문직으로 이야기된다. 그리고 좀 더 전문가로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면 과연 전문가라는 것은 어떤 특성이 있는 것일까?
이론의 키워드만 표현하자면 '체계적 이론, 전문적 권위, 사회로부터의 권한과 특권, 자체의 윤리강령, 고유의 문화' 등이 거론되기도 한다. (자세한 내용 : 사회복지 전문직 속성, Greenwood, 1957)
다섯 가지 내용만을 비교해보면 사회복지사는 전문가로서의 지위를 가진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도 모든 사회복지사가 전문가인지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냉정하게, 각자는 스스로의 어떤 전문성에 자부심을 가질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결국 ‘사회복지사는 전문가입니까?’라는 질문이 좋은 물음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자격이 주어진 것과 전문성이 있는 것은 별개의 의미이다. 실상 전문가라고 하는 것은 초보와 숙련된 사람 간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날 수 있는 분야에서 발생한다. 자격을 가진 것과 고도의 능력을 가진 것은 다른 개념인 것이다. 자격이라 함은 일정한 신분이나 지위를 가질 조건이나 능력이다. 전문성은 특정 분야의 지식과 그에 부합하는 실천적 경험을 갖추었는지의 판단이다. 자격이 있기에 전문성이 있다고 규정하는 것은, 예정되지 않은 미래의 지식과 경험을 담보로 전문성이라는 타이틀을 대출받는 일일 뿐이다.
‘사회복지사는 전문가인가?’라는 질문은 운전면허증이 있으면 운전의 전문가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운전면허는 운전의 자격이지 운전 전문가로서의 인증이 아니듯, 사회복지사 자격증 역시 전문성을 인증하는 징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복지사 중에는 전문가의 사회복지사도 있고 전문성이 없는 사회복지사도 있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다. 하지만 입사 지원자들의 답변은 결코 그러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누군가의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공분의 소지를 만들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둘째는 전문가로서의 내재된 철학과 가치가 부족할 수 있다. 사회복지사 윤리강령의 시작은 이러하다. ‘사회복지사는 인본주의·평등주의 사상에 기초하여,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존중하고 천부의 자유권과 생존권의 보장 활동에 헌신한다. 특히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의 편에 서서 사회정의와 평등·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앞장선다.’
인본주의는 무엇인지, 평등은 무엇이며 존엄성이란 무엇인지, 더하여 사회정의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애석하게도 나 역시나 명쾌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혹은 내 관점에 따라 아집을 부려 언급할 수준도 되지 못한다. 그나마 구구절절 변명이 가능한 것은 인간의 존엄이나 사회정의를 깊이 있게 배운 적이 없다는 것이다. 교육과정에는 철학과 가치에 관한 몇 줄의 텍스트 뒤로 제도와 이론과 기술에 관한 학습만이 가득했던 것이다.
사회복지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접근을 우선시한다면, 대학의 교육과정은 구빈법 이후의 역사와 제도와 이론을 배우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란 무엇인지 이해하고, 인간의 존엄이란 무엇인지 고민하는 배움부터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이 전문가로서의 올바른 가치를 함양하고 클라이언트라는 한 개인에 머무는 치료적이고 사후적인 접근을 벗어나, 인간에 대한 본질적 관점과 사회에 대한 보편적 접근을 추구할 수 있는 시발점인 것이다. ‘인간의 존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왜 지켜져야 하는가.’라는 시험문제를 받아 드는 상상은 과도한 욕심인 것일까?
세 번째는 사회복지사로서의 전문분야가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앞서 전문가의 요건에 보면 사회로부터 일정한 권한과 특권(sanction of the community)을 인정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사회복지사의 권한과 특권이 명확하지 않다. 사회문제는 다양해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접근은 공공과 민간의 영역에서 세부적이면서도 중복적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복지사의 명찰을 달고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은 여전히 중복적이고도 광범위해졌다.
일반적으로 사회복지사는 스페셜리스트이기보다 제너럴리스트로서 활동하는 것이 다수였다. 사회복지 이론과 실천영역이 지닌 포괄성과 다양성을 모두 아우르는 전문가가 있을까? 사회복지의 영역은 확대되고 패러다임도 변화하는 현실에서 사회복지 내 특정 분야의 전문가일 수는 있어도 사회복지 전문가라는 것은 실상 수식어일 뿐이다. 이렇듯 일정한 권한과 특권을 가지기엔 세부 분야에 따른 전문가가 부족하고 그 전문성은 곧 정체성의 문제라는 본질적 문제와 맞닿아있다. 사회복지사는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어떠한 고유의 영역이 있는가? 그리고 한 명의 사회복지사로서 나는 어떤 정체성과 영역을 가지고 있는가?
정리하자면, 사회복지사는 전문직이긴 하나 전문가로서의 능력은 스스로가 찾고 걸어가야 할 길이다.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이상’을 위해서는 가치와 철학에 대한 접근을 바탕으로 정체성을 가지고, 특정 분야의 숙련된 지식과 경험을 가지도록 성장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전문가로 인정받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이를 위해 교육현장은 본질적 가치와 정체성의 깊이를 다지고, 실천 현장은 구체적 성장을 위한 투자와 뚝심을 보여주어야 한다.
신입 사회복지사들은 스스로 어떤 전문성을 가져야 하는지 많이 고민할 것이다. 그 길에는 자기성찰과 도전, 그리고 배움이 필수적이다. '나를 알아가는 것' 또한 큰 힘이 될 것이다. 내가 잘하는 것과 부족한 것을 성찰하고 노력하는 일이다. 그리고 도전을 통해 체험하는 것이고 끝없는 배움을 통해 성장하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당신의 직업은 전문직이며 당신은 미래의 전문가로서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신입의 특권이 무엇인가? 실수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다양한 경험과 실수를 통해 스스로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기에 그 시기를 조바심과 불안감으로 보내지 않길 바란다. 특권의 시간은 마냥 길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