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튼바이시리우스 Jul 30. 2018

미니멀 라이프가 알려준 것

당신은 무엇을 정리해야 하는가?




우리가 만났던 모든 인연이 평생의 동행을 약속하진 않는다. 스스로의 선택이었든 운명이었든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또 새로운 만남을 가진다. 직장이나 사회생활을 비롯하여 때론 연인관계에서도 그러하다.


누구나 소원해진 사람들에 관한 기억이 있다. 다시금 연락이 닫거나 풍문을 듣거나 혹은 우연스럽게 마주치는 것이 아니라면 그들은 멈춰진 시간의 기억만으로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행여 지난 시절의 누군가를 만난다면, 내 삶은 얼마나 뚜렷한 색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적어도 사소한 취향이나 생각의 변화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예전보다 커피를 좋아한다. 성당에 더 열심히 다녔고 빔프로젝트를 마련하여 영화 보기를 즐겼다. 많은 시간을 독서에 몰입하게 되었고 여유가 있을 땐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업무에 있어 고집도 줄였고 때론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쓰기도 한다. 또 지난날보다 살은 쪘고 말수는 줄었으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줄었다. 그렇게 4~5년의 시간 동안 취향이 달라졌고 생각의 나침반 또한 조금은 방향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중 가장 크게 보일 만한 변화가 있다면 미니멀한 생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미니멀 라이프는 동일본 지진(2011) 이후 일본에서 만들어진 삶의 방식 중 하나다. 죽음 앞에서 생겨난 무소유의 의미, 최소한의 것들만 가진 삶의 의미가 트렌드가 된 것이다. 우리 부부는 결혼 직후 인테리어에 관심을 갖다가 미니멀 라이프를 접하게 되었다. 미니멀 라이프의 의미와 방식에 끌려 순식간에 미니멀리즘에 빠지게 되었지만 조금 더 일찍(결혼 전에) 알았더라면 더욱 방향이 분명하고 개성 있는 살림을 만들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2년의 미니멀 라이프를 통해 공간의 변화를 체감했다.

가장 기본적으로 청소가 쉬워진다. 청소가 수월하다는 것은 닦을 것이 없다는 의미지만 어디를 닦아야 할지 분명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쓸데없는 액세서리나 꾸밈이 사라지니 방 하나도 손쉽게 청소가 가능하다. 필요한 물건만 남아있기 때문에 손 닿기 어려운 곳들이 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빠짐없이 방을 닦는다. 크고 작은 액자 3개를 빼면 집 안에 특별한 인테리어 소품도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는 채워지는 만족보다 비움을 통한 여백의 미를 느낄 수 있다. 그것은 풍요의 만족이 아니라 여유의 만족이 생기는 것이다. '저곳을 어떻게 채울까?'가 아니라 '저곳을 어떻게 비울까?'란 고민이 든다. '어쩌면 더 여백을 만들까?'란 생각을 가지는 것이다. 비움의 매력은 마력에 가깝다. 작은 집이지만 비움을 통해 맥시멈의 빛과 공간을 확보하게 된다. 여백은 오히려 정서적 여유와 안정을 가져다준다. 


또한 1년 동안 쓰지 않은 물건은 과감히 처분한다. 나중에 쓸 일이 있을 것이란 생각은 당연히 불안과 욕심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쓴 적 없는 물건을 버렸다고, 후에 아쉬움을 느낀 적은 없다. 그렇게 불안과 욕심보다는 오히려 간소함이 가져다주는 만족이 더 크다.



미니멀 라이프는 공간적 변화를 넘어 의미의 또렷함을 선사해준다.

첫째는 물건 하나하나에 부여된 의미를 오롯이 느끼게 해준다. 물건들을 버리고 비우는 과정에는 여러 번의 질문이 뒤따른다.

“꼭 필요한 것일까?”
“왜 샀을까?”
“얼마나 쓰이고 있나?”
“다른 물건으로 그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을까?”

질문을 통해서 큰 의미가 없는 물건들은 과감히 버린다. 삶에 있어 이렇게 냉혈한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매정할 지경이다. 아내는 더더욱 냉정하고 과감하다.


분명한 쓰임에는 애착이 생긴다. 직장에서는 연필통을 없애고 6개의 펜만 서랍에 두었다. 네임펜, 볼펜, 연필, 형광펜 등 각각의 역할이 있고 그에 따른 의미가 있다. 그래서 물건 하나하나의 아주 분명한 역할과 애착이 생겨나게 된다. 하나가 없어지면 빈자리가 표가 나고 쓰임에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한다. 부족한 것보다 넉넉한 것이 좋으리라 생각하지만 하나가 충분히 제 몫을 할 수 있을 때 더욱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편협한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살림에 있어서도 의도치 않게 생겨나는 물건에 그리 달갑지 않은 입장이 되었다. 어디서 주어지는 경품, 선물 같은 것들이 불편하고 고민스러울 때가 많다. 이미 각각의 의미가 있는 물건들이 있는데 그 활용이 중복되거나 사치가 되는 물건들은 욕심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나 집에 넘쳐나기 쉬운 컵, 텀블러, 하다못해 볼펜과 수건까지도 내가 원하는 쓰임이 없는 것들은 불편함이 생긴다. 그나마 거절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곤 한다.



둘째는 소비의 절약이 발생한다. “이 물건이 정말 필요 있을까?” 버릴 때만이 아니라 물건을 사는 것도 따지는 것이 많다. 하나를 사도 좋은 물건을 사서 오래 쓰는 것이 미니멀 라이프에 어울리는 소비인 것 같다. 어떠한 물건이 사고 싶어서 망설여질 때가 있으면 “지금 집에 있는 B라는 물건으로 활용해도 충분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한다. 질문을 통해 신중하게 되고 물건을 사더라도 애초부터 그 물건의 역할과 활용의 범위를 명확하게 확정하게 된다. 


부부가 같이 쇼핑을 다니면서 유혹에 끌릴 때면 꼭 필요한 것인지 서로에게 질문을 해준다. 그리고 계산을 하기 전, 오늘은 충동구매가 없었나 확인하기도 한다. 그로 인해 소비라는 것은 자연적으로 신중해지고 뚜렷한 기준과 소신이 생긴다. (물론 두 사람이 물건을 보는 취향이 비슷하여 감사한 일이기도 하다.) 또한 물건이 소중하다 보니 당연스레 오래 쓰도록 신경 쓰게 된다.



마지막으로는 본질에 충실하게 된다. “이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라는 질문을 계속하다 보면 자연적으로 우리가 삶의 어떠한 본질을 찾는지로 귀결된다. 그리고 내가 무엇에 집착하는지 알아가게 된다.


나에게는 보물상자가 있었다. 어릴 적 그림일기부터 고등학생 때까지의 일기를 비롯해 구입했던 카세트테이프, 워크맨, 삐삐, 첫 핸드폰 등이 다 모여 있었다. 그렇게 추억을 좋아하고 버리는 것을 싫어했지만 미니멀 라이프를 접하면서 한 순간에 (일기장만 제외하고) 미련 없이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추억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가장 어려움을 느낀 것은 책이었다. 결혼 전 특별한 책장 두 개를 주문 제작했다. 300권 정도의 책을 올려두고 괜한 허세를 부렸지만, 미니멀 라이프 앞에서 책은 가장 큰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다. 몇 주간의 실랑이와 망설임 끝에 과연 저 책들이 다시 볼 책들인가 반문했다. 한 권 한 권 의미를 따져 골라내고 150권을 처분하니 책장 하나가 비워졌다. 그리고는 새 책을 사면 기존 책 중에 하나를 처분하기로 규칙을 정했다. 쇼핑 중독처럼, 욕심이 나는 책은 무조건 주문부터 했지만 이제는 한 권의 책을 살 때도 신중해진다. 또한 직장 근처에 도서관이 있어 보고 싶은 책은 빌려보는 습관을 키우고 있다.



미니멀 라이프라고 하는 것이 무작정 버리는 생활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원하고 좋아하며 무엇에 의미를 두는지 알아가는 삶이다. 미니멀 라이프를 통해 나를 더욱 이해하고 앞으로 우리가 어떤 본질을 추구할지 알아가는 의미를 가지기에, 부부의 삶은 늘 현실과 이상 사이를 자연스럽게 넘나들고 있다.


물리적인 환경을 뛰어넘어 내 삶의 의미와 태도에 있어서도 어떻게 심플하게, 어떻게 본질에 집중할지 고민한다. 그 과정에서 '감정의 미니멀리즘'에도 세심해지려 한다. 내 감정의 본질을 탐색하고 감정의 여백을 찾고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담백함을 찾고자 한다.


혹여나 사람들이 ‘미니멀 라이프는 깨끗한 수납, 깔끔한 인테리어’라는 부분만을 기억하지 않길 바란다. ‘내 물건들의 의미를 판단해보고, 필요한 만큼의 욕심으로 조금만 소유하는 것에 집중하는 삶, 외면의 욕망이 아닌 내면의 욕망에 귀 기울임으로써 본질에 충실한 삶’을 한 번쯤 시도해 보면 어떨까?


5년 뒤 나의 모습과 생각은 또 변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 그 시절의 모습도 나였고 지금의 모습도 나이며 미래 역시 나로 존재할 것이다. 시간의 개념을 떠나 중요한 것은 늘 변화를 갈망한다는 것이고,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향하는 방향을 더욱 분명하고 또렷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삶의 방향이 필요하다면, 그리고 중요하고 작은 변화들을 찾는다면 미니멀 라이프는 그 길의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당신은 무엇을 정리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어디를 향해 가고 싶은 것일까?

작은 비움들을 통해 그 답을 채워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