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를 지키는 것들에게 전하는 안부
살이 빠져서 그런지 조금만 앉아있어도 뼈가 아프다. 방석이 없이는 한 시간을 버티질 못하겠다. 골반뼈인지 꼬리뼈인지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지만 ‘엉덩뼈’쯤으로 부르면 (혼자나마) 만족스럽다. 살이 올랐을 때는 사방에서 밀어주던 볼륨 덕에 탱탱한 엉덩이였는데, 살이 빠지니 엉덩이도 볼품을 잃었다. 태초부터 한 몸이었을 텐데 엉덩이뼈가 드러나고서야 ‘달라진 건 없는지, 잘 지내고 있었는지’ 물어본다.
그렇게 때가 되면 자연스레 드러나는 것들이 있다.
이십 대의 명절 전야는 으레 친구들과 함께였다. 서울에서 내려오면 가방만 던져놓고 열 명 무리의 친구들부터 만나기 바빴다. 새벽녘까지 놀던 친구들이 결혼을 하면서 하나, 둘 나오지를 못하더니 이제는 많아야 셋만 나오는 모임이 되었다. 제법 애들을 키워놓고야 곧잘 얼굴을 맞대지만 그래도 모임에 나오지 않거나 일 년 내 단톡방에 안부 인사 한번 없는 녀석들이 있다.
“요즘 J는 연락되나? 가을 이후로 연락이 안 되네.”
“한번 보자고 연락은 왔었는데, 뭔 일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별 마음이 없던가.”
어쩌다 또 연락이 닿으면 별 일 없이 살고 있었다고 하니, 이 사태의 원인이 뭔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기척 없이 사는 녀석들도 ‘엉덩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리가 커도 정작 분위기를 주도하는 녀석들은 따로 있었다. 늘 탱탱한 텐션으로 도드라져있는 몇을 빼고는, 세월에 맞춰 분위기에 묻혀 뭉글뭉글 살아가는 보통의 남자들이었다. 자연스레 살이 찌고 빠지듯 별날 것 없이 저마다의 자리를 지키며 살고 있는데, 누군가의 안부에 의심과 편견을 늘어놓는 것도 괜한 억지였을 테다.
그 뼈는 그 자리였고 그 녀석도 그 자리에 있으니 괜한 걱정일랑은 들여놓아야겠다. 살이 빠질 만큼 빠지면 언젠가 ‘나 여기 있었소.’ 하고 뼈가 드러나는 것처럼, 문득 어떤 대화나 어느 술자리에서 녀석의 모습을 보여주는 날이 있을 테니. 살이 찌나 빠지나 엉덩뼈는 그 자리에서 무탈하기를 바랄 뿐이다.
“잘 살고 있어라, 나의 엉덩뼈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