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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way Dec 31. 2019

2019년 연말결산

아마 나는 올해를 못 잊겠지



이건 확실한 예감인데요,

나는 2019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첫 퇴사,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로 살아봤습니다. 내게 달린 타이틀을 떼면 뭔가 큰일이 벌어질 줄 알았는데 싱거울 정도로 아무 일도 안 일어나더라고요. 알람설정을 하지 않고 해가 중천일 때 일어나서 새벽무렵 잠들었던 지난 몇 개월은- 다시 생각해도 현대인에겐 쉽지 않을 기적처럼 느껴집니다. 많은 책을 읽었고, 손수 커피를 자주 내려 마셨고, 많지도 않은 집안일을 즐거이 했죠. 메이크업을 한 달에 겨우 두세번 할까 말까, 민낯으로 다니는 게 익숙해졌는데 이상하게도 만나는 사람들은 내 얼굴에 빛이 난다고 말하더라고요. 완벽한 정신적 디톡스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웃음 많고 재미있고 장난 치는거 좋아하는 '본연의 나'로 돌아간 시간. 를 재우고 먹이며, 싫은 것들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데 힘썼던 시간.


앞으로 뭘 하며 살고 싶은지 여러 갈래로 고민도 해 보고, 고민의 결과로 끼적끼적 여러가지를 시도해 보았죠. 어떤 것은 다소간 성공하는가 하면 어떤 것은 비실비실 중지되었습니다(소설과 시나리오  쓰기, 유튜브, 독립출판, 작사- 참 많기도 하다^^).





무엇보다 남편과 참으로 많은 것들을 함께한 1년이었어요. 여름캠핑의 풀벌레 소리와 가을캠핑의 모닥불 온기가 없었다면 우리의 계절은 조금 덜 아름다웠겠지요. 등산을 극혐하던 내가 남편이 만든 김밥에 꾀여 가을 산을 오르고, (짧게나마) 스쿼시를 배웠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군요. 우리 함께 떠난 캐나다의 가을, 눈이 시린 호수의 푸르름과 오로라의 경외로움에 대해서는 더 길게 말하지 않을래요. 남편의 관대함과 자상함, 나의 평온함과 잉여 에너지(ㅋㅋㅋ)가 만들어낸-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요.





꼬깃꼬깃, 과거에 숨겨둔 타임캡슐을 꺼내는 심정으로 1년 전 글을 읽어봅니다.


그보다 진심으로 간절한 나의 새해 소원은, '더이상 소원을 빌지 않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2019년은 내 삶에서 결핍을 찾아내고 그것을 메우는 데 할애하는 해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삶을 이미 채우고 있는 것들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어루만지며 만끽하는 2019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머릿속으로 목표를 세울 시간에 옳다고 생각하는 삶 쪽으로 1mm라도 몸을 옮기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완벽한 여행 계획도 떠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아는 삶이 되었으면. 삶이라는 여행을 더 직관적으로, 용감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바랍니다.



음, 그래도 이정도면 얼추 비슷하게 산 것 같은데요.

그거면 됐죠.





몇시간 후, 올해의 마지막 저녁식사는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집 근처 프랑스 식당에서 할 예정이에요. 작년 12월 31일에도 들렀던 곳인데요. 밥벌이의 고통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그 테이블에서, 오늘은 내년에 대한 기대와 희망에 대해 말할 겁니다. 1년 후 오늘은 또 어떤 마음으로 스푼을 들고 있을지 벌써 궁금해지는군요.


삶은 어찌 흘러갈지 도대체 알 수가 없고, 해가 바뀌면 새로운 과제 혹은 어려움이 예고되어 있지만, 나는, 우리는 잘 할 거에요. 결국 어찌어찌 잘 살고 있듯이.


아마도 평생 잊을수 없을 2019년을,

여기 미련없이 떠내보냅니다.

안녕. 정말 고마웠어.



- 2019. 12. 31. 4:15PM



올해 가장 행복했던 시간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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