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장의 밤, 구름 사이로 보름달이 얼굴을 드러내자 이웃 텐트의 꼬마들이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그 간절한 자세가 귀여워서한참웃으며쳐다보다가, 문득 내 모습과는 뭐가 그리 다를까 싶어웃음을 거뒀다. 아주 어릴 때부터내게도 계절마다나이마다의 소원이 있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간절했을 것이다. 내용은 다 기억나지 않지만.
유독 '소원'에 대해 자주 생각한 연휴였다. 기도할 기회가 생기면 어디에서든 공손히 두 손을 모았다. 우연히 들린 절에서, 용왕님이 계신다는 부산 북쪽의 어느 바다에서, 보름달이 감질나게 얼굴을 비추던 흐린 밤하늘 아래서. 누군가 그런 나를 본다면 캠핑장의 꼬마들 보듯 웃지 않았을까. 확실히 지금의 나는, 바라는 게 참으로 많은 사람.
놀랍게도 멀지 않은 과거에 소원이랄 게 딱히 없던 적도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모든 것이 이대로 영원하길' 바랐었다. 그것이야말로가장 이뤄지기 어려운 기도였다는 걸 지금은 안다. 달이 차고 기울듯 끊임없이 바뀌는 세상에서나 홀로 동그란 원 모양으로 멈춰있기란 불가능한 일이니까. 시간은 흐르고, 누구나 나이를 먹고,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늙고 아프게 하니까. 전략과 목표와 이해가 혈관처럼 얽혀있는 회사는진화하는 생물마냥 모습을 바꾸고,어느새 '우리가 처음 어떻게 만났더라? 우리가 왜 함께하기로 했더라?' 가물가물해지는 순간이 오니까. 우연과운명과 일말의 모험심이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해 주었지만, 그건 정말이지 '이룬' 것이 아니라 '이제 겨우 시작인' 것이었으니까(네, 출간 얘기입니다. 멋모르던 시절의 저는 출간을 '대단원의 막' 비슷한 것으로 생각했을 때가 있었지요. 실은 '새로운 국면'에 가까운 것이었는데 말이에요.)
어쩌겠나. 나도 그에 맞춰 함께 일렁이고 흔들리는 수밖에. 반달도 됐다가 그믐달도 됐다가, 하는 수밖에.
그래서 예전이 그립냐고 묻는다면,그렇지 않다. 그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소원의 습성은 빌기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것.말하자면 소원이란 더 나은 미래를 바라는 마음일 텐데, 그 마음 덕분에 뒤돌아 보는 대신 앞으로 주춤추춤 엉겹결에라도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살아있는 한 그렇게 고여있지 않는 마음으로 살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느냐고, 어쩌면 소원하는 것은 살아있는 자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고, 스스로를 도닥이는 것. 그것이 이번 연휴 내내 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