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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way Jan 10. 2017

서로의 빛이 된다는 것

너의 이름은.(2016,일본)

*영화의 많은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스포일러는 딱히 없습니다.



몇년 전(아 벌써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흘렀네요), 취준생 시절 독서실 총무로 몇 달 일한 적이 있습니다. 독서실 데스크에 앉아 종일 공부를 하거나 손님을 받기만 한 건 아니라서, 그 시절 인생 통틀어 적지 않은 영화를 봤었습니다. 인강용 고사양 모니터와 헤드셋으로 말이죠.


그때 본 영화 중 하나가 <언어의 정원>이었습니다. 장마철의 초록빛이 넘실대는 이 45분짜리 중편 애니메이션에 저는 완전히 반해 버렸었죠.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그림체, 직장인 누나와 남자 고등학생의 사랑이라는 다소 아청아청한 줄거리를 미묘한 감정선을 타고 섬세하게 매만지는 솜씨, 지극히 문과적 감수성의 제목과 대사까지 뭐 하나 좋지 않은 것이 없었어요.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독서실, 평화와 불안이 공존하던 그 공간에서 <언어의 정원>은 어느 취준생의 메마른 가슴에 촉촉히 뿌려진 단비 같았고, '신카이 마코토'라는 이름을 그때 처음 소중히 간직해 두었었습니다.


<언어의 정원>은 장마철에 보세요. 두 번 보세요.



그리고 오늘, <너의 이름은.>을 보았습니다. 이번엔 인강용 모니터가 아닌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였죠.

생각해보니 디즈니로 대표되는 웨스턴 애니메이션은 극장에서 몇 번 봤지만, 재팬 애니메이션을 극장에서 본 건 처음이더군요.


결론적으로, , 좋았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긴 했습니다. 에너제틱한 노래와 함께 시작되는 지극히 일본틱한 오프닝, 특유의 애교 섞인 대사들, 여자캐릭터에 대한 은근히 관음적인 시선 같은 것들은 제겐 낯설거나 다소 불편한 것들이라서, 적응하기까지 러닝타임의 초반부를 할애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자 순수한 기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골 소녀와 도시 소년의 영혼이 뒤바뀐다는 어찌보면 지극히 익숙한 설정(길라임 보고있나?)에서  출발한 이 영화가 이토록 강렬하게 느껴지는 건, 역시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영상적 성취 때문이겠지요. <언어의 정원>이 전면으로 내세우는 이미지가 '푸른 녹음'과 '물'이었다면 <너의 이름은.>에서는 '빛'이군요. 시골의 별빛과 도시의 불빛, 그리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혜성의 타오르는 곡선.





<너의 이름은.>이 그리는 풍경들은 대체로 퍽 세밀하고 현실적입니다. 실제 장소를 사진으로 찍어 그대로 작화한다는 감독의 작업방식이 그대로 느껴지죠. 인터넷에서는 <너의 이름은.>의 배경이 된 도쿄의 장소들을 따라 여행하는 코스가 유행이더군요.



하지만 어느 순간, 영화는 현실을 초월한 차원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데, 저는 이것이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가 판타지적인 내용을 담는데 적격인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사로 찍힌 극영화가 비현실적인 내용을 담을 때, 잘 집중하다가도 어느 순간 현실로 소환되는 순간들이 있죠- "오, 특수분장 잘 됐네?" "오 세트 짓느라 힘들었겠구만"-. 처음부터 끝까지 가상의 세계로 축조된 애니메이션은, 그래서 환상의 세계를 장애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가 실사로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상상해 보다가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그만뒀습니다.






조금 우스운 고백이지만 저는 운명론적 사랑관을 믿(고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끊을 수 없는 인연으로 이어진 사람이 존재하며, 우주를 유영하던 두 사람은 언젠가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리라는 믿음. 누구나 섬인 이 파편화된 세상에서, 인생을 통틀어 거부할 수 없는 운명적 상대가 있다는 믿음은- 허황되기는 해도 꽤나 매력적이지 않나요.


<너의 이름은.>이 기반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거부할 수 없는 인연에 대한 믿음입니다. <너의 이름은.>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붉은 실은 '운명인 남녀는 붉은 실로 이어져 있다'는 중국 설화를 떠올리게 하지요. 교차되는 영혼 사이로 마주친 적 없던 두사람이 서로를 찾아헤매는 과정은 때로 유치하고, 때로 대책없이 천진난만하다가, 결국은 가슴이 벅차오르게 합니다.



어째서 서로의 영혼이 바뀌게 되었는지, 왜 하필 서로인지, 단지 시골소녀 미츠하가 "다음 생엔 도시의 꽃미남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라고 외친 탓인지, 영화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습니다.


'운명'이란, 어쩌면 '설명할 수 없음'의 동음이의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연말 마음을 뺏긴 <라라랜드>의 여운이 채 끝나기도 전에 <너의 이름은.>의 감동에 빠져 새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박스오피스를 보면 저같은 분들이 꽤 많은 모양이에요. 혼탁하고 예측가능한 일상을 견디고 있는 우리는, 이렇듯 맑고 비현실적인 세계들에 끌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상상해 보건대, 누군가 영화관에서 관객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면-

아마도 다들 혜성을 처음 보는 어린아이처럼 넋을 놓은 표정이지 않았을까요.




운명, 이라는 단어를 눈부신 청춘 판타지로, 2시간의 유려한 애니메이션으로 길게 늘여놓은 이 영화. 그 천진난만하게 반짝이는 여운을, 운석을 줍듯 간직할 수 있어 기쁜 1월입니다.





- 2017. 1. 4. 8:10PM CGV김해 5관




+) 그래도 전 <언어의 정원>이 좀더 좋습니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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