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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way Jun 25. 2017

날을 잡았습니다

에필로그 없는 프롤로그



"날 잡았니?"



언젠가부터 종종 안부인사 대신 저 질문을 듣곤 했어요. 그건 아마도 제가 남들 눈에 결혼해도 될 만큼 나이를 먹었고, 결혼을 생각하기 충분한 시간동안 결혼 상대자로 썩 어울리는 사람과 연애를 해왔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나 그들 역시도 크게 기대하고 한 질문은 아니었을 거에요. 왜냐하면 저는 요즘 흔히 말하는 결혼적령기(라는 것이 무슨 의미겠냐만)보다 아주 살짝 어리고, 언제나 입버릇처럼 '내 인생의 결혼은 아주 늦게'라고 말해왔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을 잡았어요. 이 말을 할수 있기까지 얼마나 수많은 고민과 망설임과 조율의 시간들이 있었는지, 또 이 순간 얼마나 많은 변화와 숙제를 온몸으로 겪고 있는지 담기에는, '날을 잡았다'는 말은 야속할 만큼 간단하네요.


이 모든 마음을 다 표현할 길 없는 저는, 그저 수줍게 웃으며 말할 수밖에 없군요.


네, 날을 잡았답니다.

올 가을에 결혼하게 되었어요.





회사에는 아직 말하지 않았어요. 지인들의 "혹시..?" 하는 표정 앞에 씨익 웃기만 한 적도 종종 있었답니다. 숨길 일도 아니지만 딱히 일찌감치 소문낼 일도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내게 소중한, 축하받고 싶은, 혹은 비밀 아닌 비밀(?)을 지켜 줄 것 같은 사람들 위주로 야금야금 속닥이듯, 되도록 눈을 보고 알려주고 있어요. 그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는데, 웃는듯 우는듯, 감격과 아쉬움을 동시에 담은 표정으로 "야 축하해...!" 혹은 "축하해요...!" 라고 말해주었어요. 그 반응들이 하나같이 너무나 생생해서, '너는 소중한 사람이고 그런 너에게 생긴 변화는 나에게도 큰 일이야'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소식을 전하다가 되레 울어버릴 뻔한 적이 많았어요.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이제 막 알게되었군요. 히힛.





"날 잡았니?"가 안부 인사라면, 저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처음 들었을 땐 온몸이 오그라들다 못해 지구 바깥으로 튕겨나가는 것 같았던 '신부님' 이라는 호칭에 점차 담담해지는 날들. 하지만 아직도 '결혼'이나 '부부' 혹은 '남편' 같은 단어들은 나의 것이 아닌 것만 같아서, 실수로라도 입밖에 냈다간 한동안 옆구리를 긁적이게 되는 쑥쓰러운 기분들. 산적한 선택지 앞에(결혼준비는 선택노동이라고 누가 그랬나요..) 관자놀이를 꾹 누르다가도, 디데이에는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악을 틀지 설레는 맘으로 상상하는 시간들. 새 식구를 맞이하는 기쁘고도 어색한 기류들. 곱게 키운 딸(손주 언니 혹은 누나)을 보내야 하는 서글픔들.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두렵고 걱정되어 별안간 심장이 쿵 내려앉다가도, 어쩔 수 없이 결혼 후의 삶이 기대되어 혼자 빙긋 웃음짓는 날들.



그런 나날들을 겪고 있어요.

제 인생에 다시 오지 못할 순간들이자,

겪지 못할 감정들이죠.




훗날 이것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순간순간 알수없이 울렁이거나 울컥이는 내 안의 감정들을 다독이기 위해서, 이곳에 글을 쓸 거에요.


바쁜 와중이기에 자주 쓸 순 없을 것 같아요.

다만 진심으로 쓰는 글들이 되겠지요.




D-119, 2017. 6. 25.




'날이 잡히자마자' 소중한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달려가던 길, 시외버스 안에서 본 빛과 하늘. 이 모든게 터널을 통과하듯 정신없고, 미지수이면서, 눈부신 순간들이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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