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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way Jan 23. 2018

저기, 애는 제가 알아서 낳을게요


결혼을 했으니 당연히, 그리고 조만간 아이를 낳으리라 여기는 무신경함과 폭력성에 대하여.


그러니까 이건, 내 마음속에서 조그맣게 싹트고 있는 빡침에 대한 이야기다.





"저기.. 혹시 임신했어요?"

"예?? 아닌데 왜요?"

"아니 그냥, 혹시나 해서."

신혼여행에서 돌아온지 며칠 되지 않은 어느날, 누군가에게 이 말을 듣고 거의 '눈앞이 깜깜해질 만큼' 놀랐던 기분을 기억한다.



 후 가장 어색하고 이상했던 점 중 하나는, 결혼식을 기점으로 사람들이 나를 한 순간에 '임신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대한다는 것이었다. 미혼일 땐 '아이를 가진다'는 상황 자체를 상상도 못 하던 존재였던 나는, 혼인신고서에 도장이 마르지도 않은 순간부터 세상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그리고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나의 임신가능성 대해 입에 올리는 것을 놀란 눈으로 바라봐야 했다. 그건 진중한 태도로 "자녀 계획은 어떻게 돼요?"라고 묻거나 공적인 이유로 가족정보를 묻는 것과는 결이 다른 것이었다. 조심스럽든 장난스럽든 "혹시 임신~?" 류의 운을 떼는 존재들과, "애는 빨리 낳아야 좋아" 같은 청한 적 없는 충고들 사이에서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때론, 당연히, 불편하거나 불쾌하기도 했다.




나는, 부모가 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조건이나 대가 없이 작고 무력한 존재를 하나의 세상-사람-으로 키워내는 과정은, 과연 경이로운 과정이리라 확신한다. 그 과정에서 내가 느낄 새로운 수만가지의 감정과 배움들을, 부모가 되었을 때 나는 겸허하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나는 그 아이에게 최선을 다할 것이며, 이미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주변의 수많은 부모들을 진정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게 꼭 내게 '당연하거나' '조만간이어야'하는 것은 아니다. 당분간 아이 계획이 없다고 하자 사무실의 모두가 들을 정도로 "그러면 되나! 국가에 충성해야지!" 하던 목소리가 한동안 머릿속을 맴돈 적 있다. 임신과 출산의 모든 과정을 감내해야 할 주체인 '나', 나라는 사람의 계획, 꿈, 감정은 일말도 고려하지 않은  폭력적인 목소리라니(세금 잘 내고 범법행위 안 하면 되지 내 자궁으로 국가에 충성이라니요?).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오랜만에 마주친 직원이, 마치 "밥은 먹었어요?" 하고 인사하는 듯한 어조로  "애는 빨리 낳아야 좋아" 하던 목소리를 기억한다. 나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코멘트 아니라, 본인의 생각 혹은 선택이 옳았음을 한번 더 소리내어 말하고 싶었을 뿐인, 그래서 듣는이가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은 조언.  몇 개월 후를 가정하며 "그때쯤엔 배가 불러 있을수도 있겠네~?" 하던 능글맞은 목소리를 기억한다. 본인의 즐거움을 위해 마음대로 내 삶의 바로 다음 궤적을 예언하는 그 무이라니.


그리고 방금, "자기 혹시 좋은 소식 있어~?!" 하길래 "아니요? 왜요?" 반문했더니 오히려 약간 당황하며 "그냥, 있을때가 됐는데" 하는 다른 팀 직원까지. 으악!!  



글쓴이의 마음을 이제는 아주 조금 알 것 같아여..ㅎ...



물론 시대가 바있고 그것이 실례임을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서인지, 내가 아직 신혼 초반이라 그런지, 그런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아직은 '감당하기 힘들만큼' 지는 않다(간이 지나면 얼마나 더 심해질지 걱정되긴 하다). 당사자들은 좋은 의도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른채, 딱히 할말이 없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던진 말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쓴웃음으로 화답하거나 가볍게 눈을 흘기며 농담으로 넘기곤 한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말들이, 명치 쪽에 턱 막혀서 내려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들은 그런 말들이 정말로 '친교적'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내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게다가 그렇게 '아이는 결혼 후 당연히 조만간 생기는 것'이라 말하는 태도가, 주변에 존재할 난임부부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1도 안하는 걸까. 왜 여자는, 결혼한 여자는 '당연히 곧 아이를 낳을 존재'로 짐작되는가(결혼한 남자의 경우도 비슷할지 모른다).  


그러다보니, "살아보니 인생에는 정답이 없으니까 그냥 하고싶은 대로 하고 살아"라 (어쩌면 당연한 말을) 툭 던지고 지나가는 지인차라리 고마워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아이는 빨리 낳아서 빨리 키워야 좋다'는 말, 참 많이도 들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한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조금 더 젊고 에너지가 있을 때 아이와 충실히 시간을 보내고, 나중에 본인의 삶을 영위하라는 말이겠지. 일리있는 삶의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게 그렇게 매력적인 명제는 아니다. 나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유예하고 싶지 않으니까. 이른바 '인생선배'들의 충고만 믿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모가 되었다가, 이 아이가 다 크기만 바라면서 내 인생 가장 젊은 시간들을 보내고 싶 않. 예상보다 일찍 축복이 찾아온다면 기꺼이 그 존재를 환영하겠지만 일단 '계획'의 측면에서, 또 내 마음이 그렇다는 얘기다.


인생에서 정답을 굳이 찾는다면,  '내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것 아닐까.

연애든, 독립이든, 결혼이든, 출산이든.





앞으로도 내 인생에 툭툭 튀어나올 목소리들("혹시 임신~?")에게 미리 답변을 한다면.


"저는 아이를 낳기 위해 결혼한 것이 아니랍니다. 때가 되면(=나와 내 배우자가 준비가 되었을 때) 설레는 마음으로 한 아이의 엄마가 될 준비를 하겠지만,  한동안은 새로 시작한 나의 삶을 온전히 즐기기에도 바쁠 것 같아요. 제 아이에 대한 얘기는 제가 진짜 아이 엄마가 되었을때나 해 주시고, 지금은 안부인사를 하고 싶으시거들랑 '신혼 재밌냐' 정도로만 부탁드릴게요."


임신 얘기, 본인이 꺼내기 전엔 먼저 묻지 맙시다. 최근에 본 영화나 관심가는 뉴스나 하다못해 날씨 얘기라도 좋으니, 타인의 삶에 참견하지 않으면서 다양한 소재로 안부인사를 던질 수 있는 상상력을 우리모두 기릅시다. 제발.




D+90, 2018. 1. 18. 12:34PM




그리고 이 글을 마무리하는 오늘의 퇴근길(이마짚). 생각없는  사람 맘대로 임산부 만들 시간에, 지금 곁에 있을 임산부 분들에게 잘해주시기 바랍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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