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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way Oct 22. 2018

결혼한지 1년이 되었다

우리의 긴 여행, 그 초입길의 기록



1.

결혼을 한 지 1년이 되었다.

머리에 화관을 쓰고, 흰 드레스를 입고, 우리만을 위해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걸어나가, 사랑의 맹세를 나누고, 반지를 교환하고, 울고 웃고, 좋아하는 음악 사이에서 행진하던, 그 시간으로부터 정확히 1년이 지났다.

한때는 멀고 막막하며 대단한 어른들 업인  마냥 느껴졌던 결혼, 그리고 결혼생활이라는 것을 겪은지 1년이 되었다. 내가. 우리가.


세상에, 곱씹을수록 놀라운 일이다.



좋아하는 동생이 집들이날 찍어준 우리집 현관



2.

결혼식을 올린 후 한동안 주변 사람들로부터 얼굴이 좋아졌다, 예뻐졌다(?) 혹은 생기있어졌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친구들과 지인들은 물론이고 수십년간 나를 지켜봐온 원가족들도 그랬다. 처음에는 갓 결혼한 사람에게 으레 하는 덕담이겠거니 했고, 지나서는 '결혼식때보다 살이 쪄서 그런가' 하고 괜히 찔려했다가,

어느순간 음, 머쓱한 마음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어졌다. 말하지 않아도 숨길 수 없는 건 가난과 재채기만이 아닐지도 모르지! 하면서.



3.

항상 미래를 기대하는 인생을 살아온 내게, 당신과의 신혼생활은 처음으로 '지금 이대로 영원하길' 바라던 나날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큰 변화인지는 항상 더 나은 삶을 고민하며 살아온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어감조차 사랑스러운 신혼- 나는 따뜻한 물 같은 평화 위를 둥둥 떠다니며 당신과 함께 마음껏 웃고 쉬고 사랑을 주고받았다. 물론 결혼생활에는 달콤함만 있는 건 아니어서, 어디에 놀러가서 뭘 먹을지만 고민하면 되었던 미혼커플 시절에는 상상치 못한 낯선 문제들이 우리의 몫이 되곤 했다. 나는 당혹스러운 눈물을 많이, 여러번 흘렸으나, 잠결에 무심코 파고든 당신의 곁에서 모든 것을 치유하고 충전할 수 있었다.



우리 부부 첫 봄날, 집앞에서 꽃놀이



4.

결혼하기 전엔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내흔히들 하는 '결혼하면 안정감이 생긴다'는 말이 그랬다. 어차피 인생은 불안정한 것이고 결국은 독고다이일진대(ㅋ), 결혼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거나 대인갈등을 없애주거나 중장년 암발생 확률을 낮춰주지는 못하는데, 왜 사람들은 결혼하면 '안정된다'고 말하는 것일까.


지금은 그 말을 이렇게 이해한다.

세상은 여전히 흔들리고, 나는 예상치 못한 바람에 휘청대며 세상과 사람들은 종종 비정하거나 비열하다. 결혼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혼돈한 하루의 끝에 우리 둘만의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 그 공간에는 바깥의 바람과 우박과 지진과는 상관없이 평화롭고 따뜻한 시간이 흐른다. 그 속에, 나를 완전히 이해하진 못할지언정 완전히 사랑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위로, 격려, 인정, 등 쓰다듬기, 조언, 포옹, 따뜻한 눈으로 쳐다보기, 나를 괴롭히는 존재를 향한 욕설, 맛있는 밥 해주기, 공감, 눈물 닦아주기 등 다채로운 방법으로 나를 치유한다. 너 자신을 잃지 말라고 독려하고, 너 자체로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때로는 호기롭게 때로는 사려깊게 건네지는 말들에 나는 울다 웃는다. 그의 등에 기대어 나는 숨을 돌린다.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래, 당신이 있어서 나는 조금은 덜 겁내고 더 의연해질 수 있다.


결혼이, 당신과의 결혼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난로가 필요없는



5.

그런 생각을 한다. 지금 우리가 보내고 있는 이 시간들, 깊은밤 키득대며 야식을 만들어먹고 주말에는 마냥 누워 서로의 숨소리를 듣고 있는 시간들, 내가 좋아하는 영화와 당신이 좋아하는 예능을 한번씩 양보하며 사이좋게 보는 시간들, 설거지하는 상대방의 뒤에 매달려 있거나 출근준비하는 상대방의 등에 잠이 덜 깬 채로 기대어 있는 시간들, 당신이 선보인 요리에 난생처음 초콜릿을 먹은 아이처럼 감탄하는 시간들, 선선한 평일 저녁 함께 나눠마실 맥주를 사러 손을 잡고 집을 나서는 시간들, 어느 주말 오후의 긴 낮잠에서 깨어나 더듬더듬 서재에 있는 당신을 찾아 포옹하는 시간들, 나란히 소파에 앉아 수건을 접거나 마늘을 까는 시간들, 쇼핑몰 매대 할인코너를 뒤지며 서로의 잠옷을 골라주는 시간들, 사랑한다는 말 대신 가만히 서로의 머리를 쓰다듬는 시간들, 보고싶다는 말 대신 오늘은 언제 집에 오냐고 묻는 시간들이 모여-


우리가 떠나온 이 긴 여행의 연료가 되어주리라. 혹여나 현실의 팍팍함에 무던해지고 권태로워지며 심지어 서로를 미워하는 순간이 올지라도, 지난 1년의 기억들을 조금씩 아껴서 꺼내 먹으리라. 또다시 사랑할 기운을 차리리라.



6.

내 인생 가장 행복의 밀도가 높은 한 해를 만들어준
나의 짝에게 감사하며.

우리를 잘살게 한, 1년전 우리에게 쏟아졌던
그 모든 축하와 축복에 감사하며.


결혼 1주년 축하합니다 :)




D+367, 2018.10.22. 11:30PM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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