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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way Jan 08. 2018

당신의 숨이 깊어지는 소리

가족이라는 것, 가족이 된다는 것



오랜만에 맞는 불면의 밤입니다.


새벽 네시, 그리고 오늘은 월요일. 몇 시간 후 회사에서 엄청난 월요병에 몸부림칠 나 자신에게는 미안하지만 잠이 오지 않아서 별 수 없이 노트북을 켰어요. 뭐 대단한 근심이나 고민이 있어서는 아니고요, 그저 아까 낮에 무려 4시간 연속으로 낮잠을 자는 기염을 토했고(..) 저녁엔 당신이 내려준 더블샷 라떼가 맛있어서 두 잔을 들이켰으며(그러니까 마신 에스프레소 샷이 총 네 잔), 열두시가 넘어 당신이 만들어준 야식으로 파스타 한 그릇을 먹어치운지라 아직 배가 부를 따름입니다(쓰고 보니 잠이 오는 게 이상하겠요).



자정의 간단한 야식(..)



당신과 같은 집, 같은 방, 같은 침대를 쓴지 두 달 하고도 절반이 더 지났습니다. 한때는 불면증 때문에 고생했다던 당신은, 그랬던 과거가 상상되지 않을 만큼 스위치를 내리면 꺼지는 기계처럼(ㅎㅎ) 잘 자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건 당신이 '잘 먹거나' '잘 웃는' 것을 보는 것만큼 기쁜 일입니다.


몰랐을 사실을 하나 알려줄까요? 우리가 불을 끄고 나란히 누워 동시에 잠을 청할 때, 보통 당신이 나보다 간발의 차로 먼저 잠든다는 거에요. 어떻게 아느냐면, 나는 당신이 잠에 빠지는 순간의 숨소리를 알고 있거든요. 고요한 루의 맨 마지막 시간,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있자면, 당신이 잠드는 찰나 좀 더 깊고 커지는 숨소리의 변주를 들을 수 있습니다. 미묘하게 더 크게 몰아쉬는 듯한 그 첫 소리를 들으면, '아, 오빠가 잠이 들었구나.' 나는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끼며 스르르 당신을 따라 잠이 듭니다.


내가 아닌 다른 그 누구도 알지 못할, 우리가 연애만 했을 때는 나 역시도 알지 못했을, 당신의 아주아주 작은 부분들. 그런 것들이 모여 우리의 결혼생활을 만드는 것일지도, 그것이 우리를 연인보다 깊은 가족으로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나 역시도 당신 덕분에 알게 된 것들이 많은데, 예를 들면 내가 자면서 이불을 당겨 뺏는다던가, 몸을 당신 쪽으로 밀어서 당신으로 하여금 절벽에서 자는 듯한 아슬아슬함을 느끼게 한다던가 하는 것들이 있겠습니다. 그닥 낭만적이지 않고 대개 내가 미안한 것들이라 자세히는 쓰지 않았습니다 껄껄.)





사실 이번 주말은 내게 조금은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동생이 큰 수술을 했고, 입원한 그녀를 2박 3일간 옆에서 간호했기 때문이지요. 어딘가가 많이 아파서라기보다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오랜 준비 끝에 진행한 수술이었고, 다행히 수술 경과가 좋아 회복 속도도 빨랐지만, 역시나 큰 수술이다보니 동생은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말도 못하고 큰 눈에 눈물만 뚝뚝 흘리는 동생이 안쓰러워 나는 자주 눈물을 훔쳤습니다.


한없이 연약해져 내가 없으면 무엇도 할 수 없는 존재를 밤낮으로 돌보는 동안, (당연하게도) 일말의 짜증이나 억울함 없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물을 건네고 화장실로 부축하는 나 자신을 보며, 새삼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병실에서 나는 내 새로운 가족이 된 당신을 떠올렸습니다. 언젠가 지금보다 더 늙고 약한 존재가 되었을 때, 기꺼이 상대를 돌보거나 돌봄 받을 우리의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보호자'가 될 당신에게 큰 짐을 지우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더욱 건강에 신경을 써야겠다고 다짐했어요.





퇴원하던 날, 나를 데리러 와 준 당신은 초췌해진 나를 가엾어하며 패딩의 옷깃을 여며 주고 약국에서 비타민 드링크를 사 먹였습니다. 나는 당신이 모는 자동차, '엉뜨(열시트)'가 뜨끈하게 켜진 보조석에 누워 롱패딩에 거의 '포장'된 상태로 우리의 집까지 '운반'되었죠. 수십 시간동안 누군가를 케어하는 간병인 모드로 셋팅되어 있던 나는, 누군가의 케어를 받자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더어요. 오랜만에 돌아온 집에는 얼마전 받은 건강검진 결과지가 도착해 있었고요. 결과지에 적힌 자잘한 충고들을 나는 잘 지키기로 했습니다. 그건 당연히 당신과 오래, 건강히, 당신을 힘들게 하지 않으며 사이좋게 살기 위해서겠지요.



운반되는 중



그렇게 돌아온 우리 집에서 나는 당신과 따뜻한 밥상을 차려 먹고, 함께 티비를 보고, 낮잠을 자고, 서재에서 글 쓰는 당신 옆에서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내일은 월요일이니 일찍 자자'며 11시에 누웠다가, 잠이 안 온다며 침대 밖으로 슬금슬금 빠져나와, 당신이 뚝딱뚝딱 만들어준 파스타를 먹느라 새벽을 넘기고, 평소처럼 먼저 잠에 빠져드는 당신을 귀로 확인한 후, 평소와 달리 당신을 뒤쫓아 꿈나라로 가지 못한 나는 글을 씁니다. 많은 것을 생각했던 주말을 떠올리면서.



앞으로 셀 수 없이 많은 밤을, 나는 당신의 숨이 깊어지는 소리를  듣게 되겠지요. 그것이 영원에 가까울 만큼 오래도록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완성하고 나면 나는 다시 당신이 잠든 침대로 돌아가, 조심조심 이불을 덮고 당신 옆을 파고들겠죠. 그러나 바로 잠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배가 부르고 마음이 부른 밤이라서, 바로 잠들지 못해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D+80, 2018. 1. 8. 4:38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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