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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way Dec 12. 2017

세상에, 내가 결혼을 하다니

결혼 45일차 신입 유부가 남편을 재워놓고



브런치에 마지막으로 쓴 글이 4개월 전인 8월 13일자에 멈춰 있더군요. 마음속에 기쁨이든 슬픔이든 꽉 찰 때마다 글을 써야 직성이 풀리던 내게, 이것은 이례적이고 조금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동안 마음속에는 쉴새없이 새로운 감정들이 피어오르고 꽉 차고 소멸되기를 반복했으나, 도저히 그것들을 활자로 풀어낼 물리적인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아깝게 기록되지 못하고 흩어져버린 감정들도 많답니다. 결혼 준비부터 결혼식, 신혼여행과 결혼생활을 시작한 지금 이 순간까지 마음속에서 오간 수많은 색채의 감정들을, 그 순간마다 기록했다면 얼마나 격정적이고 긴 글들이 나왔을까요(이제라도 천천히 복기해 보려고 합니다만).


아무튼, 뜨거운 여름을 한창 결혼 준비로 불태우던 나는, 두 번의 계절이 지난 지금 결혼 45일차 신입 유부(남들은 '새댁'이라 부르길 즐기더군요)가 되어,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가 생일날 선물해준 노트북으로 토독토독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비염이 심한 남편(이라 부르기엔 아직 낯간지럽지만 어쨌든)은 함께 저녁을 먹고는 일찌감치 잠들었고요. 항상 하루일과가 끝나면 서로가 기다리는 이불속으로 파고들어 함께 잠들기 바빴던지라, 조용한 거실에서 혼자 글을 쓰는 것은 역시나 꽤 이례적이고 이상한 기분이 드는 일입니다. 결혼생활로 꽉 차있었던 일상에 예상치 못한 공백이 생기자, 나는 비로소 우리의 결혼생활에 대해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물받고 첫 부팅, 나를 펑펑 울렸던 화면속 ‘수웨이 작가님’



"신혼은 어때"라고 묻는 친구에게 '남자친구랑 같이 자취를 하는데 그것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는 기분'이라고 답했습니다. 이제는 법적으로 나의 배우자이자 우리집 세대주로 변신한 남편은, 체감상으론 아직은 남친 겸 룸메이트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남자친구처럼 감정적 교류를 나누고, 룸메이트처럼 집안일을 나눠하는 사이. 아침이면 우당탕 "갔다올게!" 서로의 일터로 향하기에 바쁘고, 저녁이면 서로의 하루일과와 포옹을 교환하는 사이. '남편'이라는 어감이 주는, 진득하고도 중후하고도 동고동락과 회한이 동시에 느껴지는 단어에 가까워지려면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할지 상상해 봤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을 느끼기엔 45일은 귀여울 정도로 짧은 시간이니까요.


차라리, 연애와 긴 결혼생활의 경계선인 지금 이 순간을 오롯이 즐기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와 늑대의 시간-해질녘-처럼, 아까울 만큼 빛나는 시간들입니다.



거의 매일밤 이런 풍경(...) 사진은 최근 개최된 제1회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



이렇게만 쓰면 신혼생활이 스윗하기만 한 것 같지만(상당부분 스윗한 것도 사실이지만), 사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서 가장 결혼을 실감케 한 것은 어마어마한 양의 집안일이었습니다. 우리는 특히나 결혼식에 임박해서야 신혼집이 완공되었기에 더욱 그런 것일지도 몰라요. 신혼여행을 다녀와서부터 맨바닥을 사람이 살만한 공간으로 꾸며야 했거든요. 정리할 건 왜그리 많고 매일매일 해야 할일은 왜그리도 많은지, 집안일의 개미지옥에 입성한 줄 알았습니다. 욕실에 항상 뽀송뽀송한 수건이 구비되어 있다는 건 누군가의 사랑과 헌신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식당에서 지불한 밥값에는 재료비 인건비 외에도 설거지 하지 않을 권리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결혼하고서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문득 '아 무슨 집안일이 이렇게 많지' 울컥해서 휙 옆을 보면 열심히 또다른 집안일을 하고 있는 룸메이트가 눈에 들어와, 걍 마 조용히 입을 다물곤 합니다. 그냥, 두 사람 몫의 살림을 산다는 것 자체가 일이 많은 것 같아요. 자취를 해본 적이 없어 잘은 모르지만, 자취의 집안일과는 또다른 차원일 거라 생각합니다. 함께 사는 사람이 있고, 이 집이 나만의 것이 아니며, 내가 조금 더 부지런해지면 상대방이 더 쉴 수 있기 때문에, 혼자 사는 경우보다는 가사일에 더 신경쓸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아크로바틱하게 커튼을 다는 룸메
요리천재 룸메가 차려준 정성가득 생일상(는 자랑)



또 한가지 변화가 있다면, 몸은 떨어졌지만 심정적으로 부모님들에 대해 더욱 깊이, 자주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평생을 가족들과 함께 살았기에 한번도 가족에 대해 '그립다'는 감정을 가져본 적 없던 나는, 아빠의 ^^ 웃음표시가 붙은 짧은 문자만 봐도 눈앞이 흐려지는 상울보가 되었습니다. 고작 “밥은 챙겨 묵었나? 뭐 뭇노?” 가 대화의 전부인, 2분 정도의 짧디 짧은 통화에도 할머니는 뛸 듯이 좋아하신다는 것을, 나는 집을 떠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전화를 끊기 전 어른들의 아쉽고 애틋한, “그래...” 말끝 흐린 한마디에 가슴이 저릿해져 오는 건, 분명 내가 결혼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자주 찾아뵙지 않는 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결혼 후 대부분의 주말은 양가 부모님들을 뵙는덴 할애했거든요. 독립을 했는데 원가족들을 찾아뵙는 일이 이렇게나 우리 신혼을 크게 차지하다니, 예상했던 일이 아니라서 처음엔 조금 당황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신혼부부는, 특히나 우리처럼 아직 모든것이 서툴고 설익은 햇병아리 부부에게는 부모님들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것이 물리적인 도움이든(반찬과 먹을것을 듬뿍 싸주신다던지), 심정적인 만족이든(얼굴을 뵈었다는, 보여드렸다는).


무엇보다도 우리를 너무나 반가워하시고 애닳아하시는 그 마음들이 전해져서, 어른들을 뵙고 돌아오는 길은 항상 눈이 충혈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가정으로 독립을 하고서야 원가족을 더욱 생각하게 되는 것은, 결혼의 또 다른 아이러니일지도 모르겠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ㅜ



"남친이 생기거나 결혼을 하면 연락도 안되고 일상이 흔들리는 친구들이 많은데, 너는 너 자신을 잘 유지하는 것 같아.” 친구가 말해주었습니다. 듣기 좋은 말이었습니다. 나는 결혼한 내가 결혼전 나의 확장판일지언정 다른 사람이 되지 않길 바랍니다. 나는 여전히 나를 아는 그 누군가에게 친근하고, 열정적이며, 종종 얼굴을 보고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길 바랍니다. 그 언젠가 내가 더 어렸을 때 결혼한 사람들을 보았던 시선, 다른 세상에 사는 이를 보듯 낯설고 멀게만 느꼈던 기분을, 결혼하지 않은 나의 벗들이 내게서 느끼지 않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친구들도 만나야 하고, 회사에서 맡은 일도 잘 해내야 하고, 내가 바쁠까봐 차마 먼저 연락하지 못하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연락도 챙겨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것이 부족하게만 느껴집니다. 결혼전의 세계를 보존하면서 결혼 후의 새로운 삶을 직조해 나가는 일은, 한정된 몸과 시간으로 해내기엔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 모든 것들에 몸을 적응시키면서, 마음의 파동을 달래면서, 한 달하고도 절반을 더 살았군요. 어느새.



당분간은 다른 생각이 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마치 따끈한 탕에 천천히 몸을 담그듯, 천천히 새로운 삶에 온도를 맞추는 중이니까요.




D+45, 2017. 12. 4




+ 결혼 45일차에 쓰기 시작한 이 글을 53일차에 마무리했다. 공교롭게도 남편이 먼 곳으로 출장을 간 날이다. 역시나, 신혼생활에 약간의 공백이 생겨야만 글을 쓸 생각이 생기는걸까(으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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