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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u Dec 09. 2018

따뜻하도록

주초반부터 나의 토요일은 남편을 제외한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고, 평일의 것들은 일절 생각하지 않으려 계획했고 잘 지켰다. 느지막이 일어났고, 다정한 남편이 몇 차례의 식사를 계속 챙겨주어 아무 일도 안 하고 온종일 오직 엄마에게 퇴원 선물로 줄 목도리를 뜨기만 했다. 부드러운 털이 보슬하게 부풀어 있는 실이기 때문에 특별한 무늬 없이 반복되는 작업이 지겨워질까 봐 알쓸신잡을 1화부터 4화까지 다시 보기로 틀어놓고 대충 보는 시늉 하며 소리를 들으며 말이다.


유희열은 오래전 나의 이상향이었다. 이성으로서 이상형이 아니라, 이상향

그는 내가 연애를 몰랐던 때 청춘의 언어로 연애 감정을 교과서처럼 알려주었다. 윤상이나 윤종신, 김동률 같은 뮤지션도 꽤 많이 좋아했지만, 그땐 유희열을 티비에서 보는 게 정말 드물었고 라디오 외엔 미디어 노출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상향으로서의 막연한 환상을 갖기에 충분했다.

유희열이 결혼한다고 기사가 났을 때는 심지어 조금 충격을 받기도 했다. 반나절 정도 어안이 벙벙한 기분이었는데 '우리 오빠가 결혼을 하다니!' 이런 건 전혀 아니었고, 나의 청춘 언어가 노래가 이제 들을 수 없게 될 것만 같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그건 굉장히 좋지 않은 기분이었다.


여하튼 오늘 티비에서 두오모 성당 내부의 계단을 나이 많은 여자 패널의 손을 꼭 잡고 함께 오르는 모습을 보며 오래전에 내가 그에게 느꼈던 감정이 다시 솟았다. 까만색 소니 시디플레이어에 토이 시디를 넣고 등교했던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날 아침. 혼자 지하철 타고 고속버스터미널의 서점으로 가서 그의 삽화집을 샀던 어느 주말.


나는 오래전부터 그런 정도의 따뜻한 온기를 뿜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세심하게, 다정하게 그리고 장난기 어린 유머러스함 딱 그 정도의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곰살맞다'라는 말을 처음 알았을 때 스프링 노트에 '곰살맞은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썼던 때를 기억한다.

생각해보면 모두 오래 전의 추억인데, 여전히 그렇구나 라는 것을 알았을 때 당황했다. (아직 전혀 그런 사람이 되어 있지 않아서 그리고 그럼에도 여전히 그런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건조한 마음을 자주 마주친다. 꽤 아무렇지 않게 어쩔 수 없지 라고 체념해버린 일도 잦았다.

그런 나날들 중에 오늘의 기분을 새긴다. 깃발이 아닌 나무 심는 마음으로 정성으로 새긴다.

조금 더 따뜻해지자. 조금 더 소중히 하자. 감사한 일이 많았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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