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을 쉬었다.
일을 시작한 건 20살 때였고, 본격적인 회사생활은 21살부터였다.
지금이 35이니까 한 번도 쉬지 않고 일한 건 아니지만 꽤 업무강도가 높은 업계에서 10년을 넘게 일하면서
'지금은 쉬는 달이야' 하고 결재받고 푹 쉬는 건 처음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한 달간 유급에 휴가비까지 나오니 이런 인생이 가능한가 하는 감격도 몇 번 있었다.
오전을 놓친 적 없이 부지런히 일어났고 라디오를 자주 챙겨 들었다.
집에 있는 거의 모든 날은 손에서 뜨개질을 놓지 않았고
사두었던 책도 여태까지 4권째 읽고 있다.
챙겨보는 미드가 생겼고 시즌 5를 달리고 있다.
늦은 아침 이른 점심 겸으로 열 번 가까이 요리를 해 먹었고
후쿠오카, 속초, 부산, 도쿄로 짤막한 4번의 여행이 있었다.
틈틈이 찍어둔 사진 덕에 sns 게시물 수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지금 잠깐만 떠올려도 기억에 남는 일들이 꽤 많이 있다.
우연히 마음에 드는 카페에서 우두커니 커피를 마시고 화분을 구경한 것
혼자 걷는 집 앞 길목에서 마음에 드는 꽃과 유칼리툽스를 산 것
햇볕이 드는 겨울 오후엔 최대한 자주 또봉이를 산책시킨 것
어찌해야 하는 마음이 없는 이런 시간은 아마 다시없을 것 같다.
정말 자-알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