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스러운 위로

깨진 거울과 파란 바다

by 여백의 밤


있잖아


문득 그런 날이 있어

속이 텅 비어버려서

한없이 공허한 그런 날



내가 버텨온 시간들이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흘러내려



새벽은 내가 부른 이름에

답하지 않아



거울 앞에서

나를 다그치던 목소리들이 너무 커서

유리조각은 밤을 삼켰어



깨진 거울 속에 남은 건
반쪽의 나


초라하게 빛나는 먼지

어두운 밤이 오면 난 눈을 감아



바람 소리 속에서

오래된 소원을 더듬어


매일 차곡히 쌓아온 성실한 소원이
빛 한 줄기 되기를 그저 원해



긴 시간 흔들리며 붙잡은 건
부서진 발걸음과

아직 말 못 한 두 손



달려온 만큼

나아지지 않는 기분은
희미한 마음이

나를 몰아붙이는 탓이겠지



어린 날 꿈꾸던 파란 바다
어떤 시련에도

검게 물들지 않던 바다



그 바다는

아직 내 안에 무탈히 흐르고
파도는 잔잔히 그러나

묵묵히 강인해



희망과 기대로 선명해진 두 눈을 떠
현실의 벽을 만져보면

손끝이 떨려도



부딪히는 바위 위에도

숨은 길이 있다
숨 한 번 쉬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제야 나는 알 것 같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슬픔이
찢긴 마음이 불쌍히 여겨지던

외로움이


모두

지금의 평온함을 안겨주었다는 걸



무탈히 흐르는 내 바다로 돌아가
처음의 파도를 기억하려 해



흐름은 영원하니

언젠가 닳아지는 날이 와도
그날엔 내가 더 자유로워질 거야



있잖아

또 그런 날이 오겠지


바람이 세게 불고

마음이 지나치게 차가운 날



그럴 때면

어디로 가야 하나 묻지 않을래

방황하거나 헤매일지라도

나는 잊지 않으려 해



지금의 나를 만든

아프고 찬란한 시간들


그 모든 건 나의 비밀



조용한 연료가 되어
나를 언제나 일으킬

잊지 못할 희망으로 남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