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절의 꿈에게, 인사

인사로 남은 한 시절

by 여백의 밤


매일 밤 꿈을 꾸었지


손에 잡히지 않아도

눈에 담기지 않아도


자유로운 발걸음으로

어디론가 뛰어가던 목소리



반짝이는 불빛을 향해

뛰어가던 목소리는


마침내 그곳에 도착하고

아른거리는 많은 이들은


끝끝내 도착하고야 만

목소리를 향해

안도의 박수를 보내



그러나

나를 비추던


거리에 수 놓인 가로등의

불이 순식간에 꺼지고


반짝이던 불빛마저 사라지면

눈바람 치는 외로운 거리일 뿐이야



그곳에서

멀어져 가는 목소리와 인사를 해


안쓰러운 마음에

내일 밤

또 만나자는 인사를 건네면



오늘이 마지막이었던가


희망찬 꿈을 담고

빛을 향해 뛰어가던 목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 없게 되나


잊어버릴까 두려워

작은 불빛하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너를 불러



암흑 속에서도

다시 만나길 바라며

갖고 있는 손전등을 켜지


너를 부르는

나의 간절한 목소리가


쓸쓸한 메아리로 되돌아와


넌 사라진 걸까


아니면 사라져야만 했던 걸까


한동안

같은 꿈을 찾기 위해

매일 밤 헤어진 자리에 서 있었지


어제와 다르지 않은 어둠


몹시 무거워진 공기


조금 더 다급해진 숨



목소리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듯했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잊은 듯

제자리에서 맴돌기만



불빛은 다시 켜지지 않았어

아무리 불러봐도


격려의 박수 소리도

자유로운 발자국도

이름을 부르던 얼굴들도


다시 나타나지 않아



그제야 알게 되었던 건


그 꿈은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이미 도착해 버렸다는 걸


나를 버리고 떠난 게 아니라

내가 그 자리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다는 걸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쥔 손이 떨릴수록

빛은 더 멀리 도망갔고


나는 점점

과거를 부르고 있었지


그 목소리는

살아가기 위해

잠시 빌려 쓴 것이었고


끝내 돌려줘야 할

나의 한 시절이었음을



그러니

이제 그만


다시 만나자는 말도

다음 밤을 약속하는 인사도


모두 접어 두기로 해



그 대신


고마운 목소리에게

한마디를 건넸지


그 시절의 나를

어둠 속에서도

뛰게 해 줘서


이제는 그만

놓아줄 거라고


그 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눈부신 불빛도

다시 켜지지 않았고


극적인 장면도

나타나지 않았고


여운 짙은

소설 속의 엔딩도 볼 수 없었지만



아주 천천히


어둠의 세상이

잔잔한 노을처럼 옅어졌을 뿐이야



더 이상

떠도는 꿈은 없었고


대신

새로운 꿈이 들어올 자리가

내 옆에 남아 있었지



포기해야만 했던 꿈에게는

작별을


악몽처럼 나를 붙들던 밤에게도

작별을


그리고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다가올 꿈에게는



처음 건네는 영광의 인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