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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tenjohn May 12. 2024

영원히 맴돌 것 같은

[얻어걸린 책] 호밀밭의 파수꾼

우연히 제 손이 간 책들을 대충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분명 읽으려고 산 책이었음은 분명하다. 유명하다니까 읽어야 하는 줄 알고 샀겠지. 언제 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이 책에 다시 손을 뻗은 이유는 유튜브 프리미엄의 가격이 올라 이번 참에 유튜브를 끊어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즐겨보는 편이 아니었는데도, 음악을 포함해서 주당 10시간을 넘게 유튜브를 보고 있다는 것에 왠지 경각심이 들었던 탓이다.


 책장에는 읽은 책과, 읽으려 했던 책들 이렇게 두 종류였는데, 두툼하고 빽빽한 인문서적이나 과학서적을 읽기에 최근의 내 머리는 그것들을 소화할만한 힘이 없었다. 해서 소설 쪽으로 가닥을 잡았는데, 뭔가 지하철 같은 데서 읽을 때 폼도 살아야(?)하고 암튼, 여러 가지 이유로 나름 <세계문학전집>의 일부인 '호밀밭의 파수꾼'을 손에 들게 되었던 것이다. 꽤나 유명한 책으로 알고는 있었는데, 제법 독서를 즐긴다는 소리를 듣는 나는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했다. 제법 영화도 즐기는 편인데도 굳이 아직까지 '기생충'을 보지 않은 괴벽이랑 비슷한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이 책에는 명문 고등학교에 다니는 부잣집 아들 홀든이 방학 사흘 전 퇴학을 당하면서 벌어지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홀든은 기숙사 룸메이트나 선생님 등 주변인물에 대해 세세한 묘사와 함께 개인적인 평가를 진행하는데, 썩 공감가는 내용은 아니다. 몇몇을 제외한 주변의 모든 인물들에 대한 평가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정적이며 부정적이다.


 그는 집에 바로 돌아가면 퇴학 당한 사실을 부모님이 알까봐 걱정한 나머지(걱정이라기보단 뭐 이래저래 불편해질까봐) 며칠을 뻗대기로 한 모양이다. 그러면서, 새로운 인물을 만나고 옛 사람을 생각하고 또 평가하고 그리워하고, 결국 만나서 실망하고, 또 그런 일들의 연속이다. 그러다 결국 집에 들어간다는 이야기인데, 세세한 내용은 혹시나 책을 읽을 분이 알아서 느낄 수 있도록 더 설명하지 않으려 한다.


 이 책의 마지막 구절,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 이 이 책을 안 읽은 사람들에게까지 너무나도 유명한 까닭은 이 문장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무엇인가를 자아내는 아련함 때문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느낀 점은, 이 문장이 이 책의 거의 모든 것을 담았다는 점이다.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길지 않은데, 밑밥을 까는 데에 위 다섯 문단이나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이 마치 사람을 그리워하기 위해 그 사람이나 그와 함께 겪은 대해 굳이 자세한 묘사를 늘어놓았던 홀든과 비슷해진 것 같다. 하지만, 홀든의 그리움이 단순한 인간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었다든가, 역시 인간과 가족은 소중하다는 보편적인 진리를 깨달은 것이라면, 나는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마자 당장 채소 로고를 가진 중고마켓에 올렸을 거다.


 이 책이 재미있는 점은, 홀든의 시시껄렁한 행적과 주변인들에 대한 같잖은 평가, 말기 성인이 되기 직전 말기 중2병 고등학생의 허세나 염세가 당연히 아니다. 그건 홀든의 사고야 어떻든 간에 그가 주변인들에게 가지고 있는 깊은 관심과, 그들을 영원히 맴도는 츤데레 청년의 데면데면한 수줍음 아닐까.


 다가가고 곁에 있으면 부대끼는 괴로움에 멀어지고 싶으면서도, 정작 멀어지면 그리워지고 외로워지는 것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이다. 정작 영원히 떠나지 못하고, 또한 영원히 함께 할 수 없기에 맴도는 시간을 우리 모두는 겪지 않았던가.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해도, 나를 포함한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은 평생을 떨쳐낼 수 없는 괴로움이기도 하다.


 사실 모두가 모두에게 맴돌고 있다는 것, 슬프고 애잔하면서, 왠지 귀엽고 웃기지 않은가. 혜성처럼 떠나면 한참이나 안 보이는 모진 궤적이 아니라, 행성이나 위성처럼 적당한 거리에서 떠나지 못하고 계속 기웃거리는 그런 모습 말이다. 때로는 가시 돋친말이나 생각따위로 영원한 탈출을 도모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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