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무서운 그림들>
화면 뒤에 사람 있어요. 익명의 사이버 공간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상대방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듣는 이가 저와 같은 "사람"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날선 말을 내뱉는 이들에게 일침을 날리는 한 마디이다. 눈 앞에 보이는 건 감정 없는 평평한 화면이지만, 그 뒤에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섣불리 막말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오늘은 이 말에서 분노를 조금 덜어내고,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빌려 책 한 권을 소개하고 싶다.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마다 작가 이원율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림 뒤에 사람 있어요. 라고.
그림을 감상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그림 속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인상을 주는지 생각하며 보는 것이지만, 저자 이원율은그보다 조금 더 친절한 설명을 제시한다. 그 설명의 핵심은 '누가 그림을 그렸는가'이다.
작가는 작품의 창작자로, 그림을 이해하는 작품 밖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어느 시대의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 어떤 경험을 하며 자랐는지 이해하게 되면 그의 화풍이나 화법을 읽어내기에 용이할 뿐만 아니라, 어떤 주제에 의미를 부여하였는지 이해함으로써 중요 소재에 초점을 맞추기가 훨씬 쉬워진다.
가령 주세페 아르침볼도가 자칫 보면 황제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기괴한 황제의 초상화를 그려 보이기까지, 그가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정 화가로 살아온 세월과 특이하고 희귀한 것을 애정하는 황제의 취향, 그가 받아온 신임과 그에 대한 확신, 초상화를 그릴 당시 아르침볼도가 살던 신성로마제국의 정치적 상황 등이 그 과정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창작자에 대한 기초 지식을 충분히 쌓아준 후, 저자는 다시 우리를 가장 기초적인 방법에 따라 그림 속 피사체에 집중하도록 이끈다. 화가의 시선에서 바라본 당대의 상황이나 주제는 어떠한지 이해했으니 이제 화가가 어떤 방식을 활용하여 그것을 표현했는지 이해해보자는 것이다.
미래가 기대되던 화가에서 한순간에 핍박의 대상인 유대인으로 전락한 펠릭스 누스바움은 조국을 떠나있는 내내 스스로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그린 그림 속에서 독일에서 가져온 주방용 타올 하나로 조국에서의 삶을 그리워하던 독일인인 동시에 키파(뾰족한 뿔 같은 게 튀어나온 둥근 모양의 유대인 전통 모자)를 쓴 유대인이었다.
화려하기만 한 르네상스 회화에 회의감을 느끼던 존 에버렛 밀레이가 꾸밈없이 자연스러운 화풍을 연습하고 그 대상이 누구든 현실 속 인간, 현실 속 자연과 비슷한 모습으로 그려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심지어 그것이 환상 속의 요정이나 성경 속 예수일지라도 말이다.
제목의 '무서운 그림들'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무서운 내용이 담긴 그림? 섬뜩한 제작 비화가 있는 그림? 혹은 '미술'이라는 것 자체가 어려워서 다가가기 무서운 그림?
죽은 시체의 머리를 들고 있는 여인의 그림은 그 왜 하필 그 여인을 그렸는지 고찰해봄으로써 당대 '마성의 여인'에 대한 시선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기묘한 느낌을 주는 커다란 눈동자의 그림도 무엇이 화가를 사색에 빠지게 만들었는가를 알면 어쩐지 그 마음이 이해되는 것 같기도 하다. 결국 사람이 그린 그림이고,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책을 읽으며 붓질을 할 때마다 화가가 곱씹었을 생각을, 그리고 내 안에 새롭게 떠오르는 생각을 천천히 따라 걷는다.
그렇게 무서운 그림들은 더이상 무섭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