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린 무대와 객석에는 무엇이 남을까
어느 날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들을 때면 내가 떠오르는 노래가 하나 있다며, 내가 그 노래를 들으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고 말이다.
문자 속 노래의 제목을 보고 살풋 웃음이 나왔다. 그 곡의 정체는 바로 샤프(Sharp)의 '연극이 끝난 뒤'. 한창 공연을 보러 다닌답시고 열을 올리던 나의 모습이, 그 친구에게는 꽤나 인상적이었나 보다.
오늘은 이 노래의 가사를 따라서, 극예술이 가지는 의미를 내 나름대로 정리해 보려고 한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노래는 위의 질문과 함께 시작한다. 대상을 지목하지는 않지만, 차근차근 읽어보면 누구에게 묻는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다. 평소라면 북적이는 객석에 앉아 있을 사람,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볼 일이 없는 사람. 이 질문을 받는 이는 연극을 보는 관객이다.
공연을 보러 극장에 들어선 관객은,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선보이는 허구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바쁘게 돌아가는 조명과 무대 장치, 때에 맞게 흐르는 음악은 관객이 한층 더 깊게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배우는 그 배역이 아닌 배우 본인으로 돌아간다. 극을 보는 동안 관객이 사랑했을, 혹은 미워했을 극중 인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무대에 남아
아무도 없는 객석을 본 적이 있나요
다음 질문은 누구를 향한 것일까. 아무도 없는 객석을 두고 무대에 오를 일이 없는 사람. 두 번째 질문의 대상은 바로 연극을 이끌어가는 배우다.
배우 역시 마지막 대사가 끝나면, 극중 인물에서 본래 자신으로 돌아오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주인공이었던 자신을 위해 울고 웃었던 관객도 곧 퇴장하고, 각자의 일상으로 빠르게 돌아간다. 박수와 환호 소리는 잦아들고, 정적만이 남는다.
시간이 흐르면 결국 막을 내리는 공연은, 무형의 예술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한 사람과 본 사람은 있지만, 그 순간의 연기와 노래는 어떠한 형태로도 남지 않는다. (최근 스트리밍 서비스나 DVD 제작을 통해 기록이 남는 경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 역시도 수백 번의 공연 중 단 몇 번만이 남을 뿐이니 차치하도록 하자.)
어떤 사람들은 연극의 이러한 휘발성을 두고 그 가치에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어차피 실제도 아닌데, 보고 나면 끝일뿐인 역할 놀이를 그 돈 주고 보기 아깝지 않으냐는 질문을 나 역시 수차례 들었었다.
하지만 정말로 공연은 남기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까. 관객으로서 극장을 드나들었던 입장에서 말해보자면, 결코 그렇지 않다.
나는 극을 보기 전의 나와 보고 난 후의 내가 전혀 다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어떤 공연이든, 상상 속의 인물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존재한다. 우리는 무대 아래 객석에서 그를 바라보며 그가 던지는 주제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얻게 된다.
주인공의 의견에 반드시 동화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공연을 보는 관객 스스로가 그 인물의 생각에 동의하는지 혹은 반대하는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관객은 스스로에 대해서 배우고, 또 기존의 자신과는 달리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감히 추측하건대, 배우도 인물을 체화하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배움을 얻을 것이다. 이들이 느끼는 생각과 감정은 허구가 아니다.
배우가, 관객이 각자의 자리를 비우고 나면 분명 극장 안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고요하고 고독한 정적이 이어진다.
그러나 어떤 울림은 소리 없이 계속되기도 한다.
2023. 01. 08.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