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알바의 집, 배로나르다>
알바를 시작한지도 벌써 햇수로 4년차가 되었다. 2021년 여름의 나는, 잔뜩 긴장한 상태로 출근해서 포스기를 사용하는 방법부터 손님을 응대하는 바람직한 말투까지 하나하나 배우는 초보 알바생이었다.
그 이후로 과외도 해보며 학생, 학부모님과 직접 소통해본 적도 있고, 학원 조교 선생님으로도 일해봤다. 커피 전문점에서 음료를 만들며 수많은 손님들을 응대해본 적도 있다. 지금은 다시 처음 일하던 빵집으로 돌아와 주말 아침을 맡고 있다.
주변에서도 알바를 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내 또래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알바를 구한다. 가볍게는 용돈 벌이로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학생의 자리에서 벗어나 조금 일찍 사회 생활을 경험하기 위해서인 경우도 있다. 학비를 마련하거나 경제적 독립을 원해서인 경우도 보았다. 이렇게 알바는 어떤 이유로든 청년들의 삶에 큰 영향을 준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는 알바를 그다지 거창한 것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변변한 직장에 자리를 잡기 전 잠시 시간과 통장을 채우는, 그런 경험일 뿐.
돈을 벌고는 싶으나 아직 취업을 준비하고 있지는 않은, 애매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내 생활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아르바이트다. 이런 나는, '알바의 집'을 엿보기로 했다.
스페인 극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희곡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은 말 그대로 베르나르다 알바라는 여인의 집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다. 알바는 두 번째 남편을 잃은 후 어머니와 다섯 딸을 데리고 살아가는 여인의 이름이다.
극도로 절제된 삶을 강요하며 마을 사람들과 완벽한 단절을 요구하는 알바에 의해 그 집에 사는 이들은 모두 감금된 것과 같은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중 젊은 청년 빼빼의 등장과 함께 다섯 딸들의 억눌린 본능과 감정이 드러나며 충돌이 일어난다.
이 이야기를 단순하게 도식화하면, 알바는 억압의 주체, 젊은이들은 억압의 대상이라는 대립쌍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극단 성북동 비둘기는 이러한 도식을 한국어로만 할 수 있는 언어유희와 접목하여 오늘날의 청춘들이 겪는 억압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연극 '알바의 집, 배로나르다'는 파편화된 에피소드들을 나열함으로써 시간제 근로자로 주로 일하는 2030 청년층이 알바 중에 겪는 부조리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바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으로만 곪아가고 있는 문제 상황을 다양하게 그려내고 있다.
아우슈비츠 감옥에 갇힌 수감자들은 관리자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얼굴 근육을 있는 힘껏 움직여 억지 웃음을 보이기도 하고, 방전이 되기 전 모든 전력을 다 써버리려는 것마냥 커다란 움직임으로 손발을 움직이기도 한다. 그때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것 같았다. 가사는 다르지만 익숙한 멜로디를 가지고 있었다.
머리 젖습니다! 옷도 젖습니다! 신발 젖습니다! 양말까지 젖습니다! 옷 머리 신발양말 다 다 젖습니다~ 물에 젖고 물만 맞는 여기는 아마존~ 경쾌한 리듬과 목소리로, 그러나 기계적으로 읊는 이것은 한때 인터넷을 휩쓸었던 에버랜드 알바생들이 부르던 노래다. 놀이공원에서 신이 난 사람들 앞에 나서서 분위기를 띄우지만, 지금 하는 일이 그저 노동에 지나지 않는 그들에게서는 진짜 '즐거움'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한편 영어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한 강의실 안, 열정적인 강사의 목소리와 움직임이 무대를 채운다. 보드마카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설명을 하는 강사의 뒤로는 화이트보드도 함께 움직인다. 화이트보드 아래에는 눈치 보며 강사를 따라 보드를 옮기는 한 명의 알바생이 있다.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해 눈초리를 받기도 하는 이 알바생이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일반동사의 과거, 현재, 미래를 가르치는 강사가 예시로 사용하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나는 바빴다, 알바 때문에. I was busy because of my part time job. 나는 바쁘다, 알바 때문에. I am busy because of my part time job. 나는 바쁠 것이다, 알바 때문에. I will be busy because of my part time job. 그리고 끝내 알바생은 쓰러지고 만다.
우스꽝스러운 몸짓, 격양된 목소리, 어쩐지 어리버리한 주변인. 누가 봐도 웃기기 위해 만들어진 장면들이지만 도저히 웃을 수 없었다. 기계가 되어버리고, 한계에 다다르도록 떠밀린 그들의 상황이 전혀 우습지 않았다.
고객의 편리함을 위해 더 높은 강도의 육체 노동으로 제품을 전달하고, 고객의 만족을 위해 더 상냥한 감정 노동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어 버렸다.
돈이 필요한 시간제 근로자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착취당하면서도 이 굴레를 벗어날 길이 없다. 자기가 감옥에서 벗어나면, 또다른 수감자가 제 발로 걸어 들어와 그 자리를 채우기 때문이다.
극단 성북동 비둘기의 연극 '알바의 집, 배로나르다'는 모두가 알지만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알바생들이 서있는 우리 사회의 회색지대를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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