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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Nov 28. 2024

음악은 추억을 부른다

뮤지컬 '바람으로의 여행'

나뭇잎이 바싹 마르며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는 가을, 찬 바람 불어오는 겨울이 되면 어김 없이 찾게 되는 목소리가 있다. 바로 우리나라 포크 음악의 대표 가수 김광석이다.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버석하고 거친 음색이지만, 그 목소리로 불러내는 그의 음악에는 튼튼한 밑동을 가진 커다란 나무와도 같은 힘이 있다.

그의 음악을 모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낸 공연이 있으니, 지난 11월 5일 개막하여 2025년 1월 5일까지 대학로 스튜디오 블루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바람으로의 여행>이다.


음악은 시대를 대변한다

이야기는 김광석을 존경하며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주인공 '이풍세'가 서인대학교 밴드 동아리 '바람밴드'에 들어가며 시작된다. 변변한 메인보컬이 없어 걱정하던 밴드의 선배들은 오디션에서 폭발적인 가창력을 뽐낸 새내기 풍세를 두 팔 벌려 환영한다.

메인보컬 풍세를 필두로 리더이자 퍼스트 기타 '김상백', 퍼커션과 코러스보컬 '최고은', 건반과 코러스보컬 '백은영', 베이스와 작곡 '홍영후', 그리고 퍼커션 '한겨레' 총 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바람밴드는 MBC 대학가요제를 준비하며 끈끈한 우정과 잊지 못할 경험을 쌓아나간다.

신입생 풍세의 학번은 94학번, 즉 이 작품은 1994년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는 바람밴드에서 합주를 하며 대학가요제를 준비하기도 하고, 갑작스레 어머니를 잃은 친구를 위로하러 눈 앞에 찾아온 기회를 포기하기도 한다.

또한 동아리에서 만난 여자친구를 뒤로 하고 군대로 떠나고, 제대 후 친구의 부탁으로 학생운동을 위한 가요 무대에 서거나 그 친구의 비극적인 결말을 지켜보는 등 그 시대에만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한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들은 너에게, 이등병의 편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등 김광석의 음악으로 이어진다.

90년대에 일어났던 일들을, 90년대를 풍미했던 김광석의 노래로 엮어내는 이 작품은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강렬하게 그 시대의 분위기와 기억을 현재로 가져온다.


추억을 불러내는 음악극

앞서 말한 줄거리와 소재를 고려하면, 공연장을 채운 관객들의 연령층이 생각보다 높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수도 있겠다. 이제껏 대학로에서 많은 연극과 뮤지컬을 봐왔지만 나의 부모님과 또래 세대로 보이는 관객으로 이렇게나 객석이 가득찬 것은 처음이라 꽤나 놀랐던 기억이 있다.

조금은 딱딱한 관람 문화를 가지고 있는 대학로지만, 이 공연만큼은 뮤지컬보다는 마치 가수의 일반 콘서트처럼 보다 편안하게 즐기는 것이 허용되는 분위기였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노래가 나올 때마다 느껴지는 사람들의 반가운 기색은 약간의 흥얼거림과 들썩임으로 이어졌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연주하다

음악 콘서트 같은 분위기에서 관객들이 공연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만들어낸 멋진 음악 덕분이었을 테다. 이들은 대학밴드라는 설정에 걸맞게 각자 맡은 악기 - 기타, 베이스, 퍼커션, 건반 - 를 열정적으로 연주하며 현장감을 뽐냈다.

특히 풍세 역을 맡은 배우 '김소년'의 가창이 돋보였다. 그는 원곡자 김광석이 보여주는 절제된 감정 속 진정성을 잘 재현함과 동시에, 극장을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의 성량으로 두 시간이 넘는 공연 시간동안 열창했다.

극이 다루는 시간대를 살아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김광석의 노래는 그 자체만으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고, 이를 한 데 모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공연을 관람하는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아트인사이트 | https://www.artinsight.co.kr ​

본 포스트는 아트인사이트에서 초대권을 지원 받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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