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살리기 위한 대화

도서 <예술은 죽었다>

by 유정

예술이 죽었다. 작가의 영혼이 살아 숨 쉬고, 열정 끝에 완성된다고 믿어지는 그 예술이 죽었단다. 도발적인 제목으로 눈길을 끄는 책이다.


제목만큼이나 저자 박원재의 이력이 재미있는데, 그는 '원앤제이 갤러리'를 설립하고 세계 최고의 아트 페어 '아트 바젤'에서 아시아 갤러리 최초로 발루아즈 상을 수상했다. 성공을 향해 달려온 끝에 그가 느낀 것은 놀랍게도 즐거움과 성취감과는 사뭇 다른 감정었다. 소수의 엘리트가 인정하는 예술가, 예술 작품, 그리고 예술의 장(place)만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현실을 마주한 그는 오히려 이 예술계에 염증을 느꼈다.


그는 도대체 왜 예술이 죽었다고 하는 걸까? 살아있는 예술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해야 생생하게 살아 있는 예술을 되찾을 수 있을까?



자본과 엘리트가 예술을 죽였다


저자는 1부에서 무엇이 예술을 죽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고찰을 전한다. 답은 꽤나 명료하다. 먼저 자본주의가 예술을 향유의 대상이 아닌 거래의 대상, 즉 상품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상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엘리트는 예술을 감각의 대상이 아닌 학습의 대상으로 만들어 사람들로부터 격리시켰다.


그 결과 충분히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설명할 수 있는 '격조 높은 지식'으로서의 예술은 이제 값비싼 상품이 되었다. 이 상황에서 어떤 고가의 작품을 보고 가격이 부풀려졌다고 말하면, 우리는 못 배워 가치를 못 알아보는 사람이 될 것이다.


몇 년 전 내가 아트인사이트 지원서를 작성할 때, 현재 발생하는 문화 이슈 세 가지 중 한 가지로 '현대 예술의 엘리트화'를 적어냈던 기억이 난다.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고, 아는 사람들만 계속 가치를 칭송하는 예술 세계. 저자는 더욱 날카로운 시선으로 이 현상을 꼬집어 낸다.


이 상품화와 격리의 끝은 어디일까? 예술이 시장의 논리와 아카데미의 틀에 완전히 종속되면, 그것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다. NFT로 거래되고 이론으로 해부되는 예술은 우리가 알던 예술의 껍데기만 남긴다. 이 과정은 예술이 죽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다.

/ p.51 산업은 왜 예술을 우리로부터 멀어지게 했나


살아있는 예술은 서로 다른 삶을 연결한다


사실 2부부터가 진짜 재미있는 부분이다. 앞선 장에서는 지금의 예술이 마주한 문제를 지적한다면, 2부는 그것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예술의 역할은 서로 다른 이들을 묶어주는 연결고리라는 점에 있다. 나는 이를, 설명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하는 시도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나와 다른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그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라면 안 그랬을 텐데, 저 사람은 왜 그러지? 나는 이런데, 저 사람은 왜 아니지? 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던지며 억울해 한다. 혹은 아예 무관심으로 일관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관점은 그들의 것이고, 나는 이렇게 살 거야- 라고 말이다. 심지어 때로는 자신을 설명하는 것조차 어려워 한다.


예술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감정적으로 전달하는 하나의 프로세스다. 감정은 종종 이성적이지 못하고 쓸모 없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성에서 좀 벗어나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소설 속 인물이 겪는 사건을 따라가며 나와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걸 느끼고, 어떤 춤을 보며 어떤 움직임이 나에게 해방감을 주는지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러니 예술은 서로 다른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것을 돕는 하나의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를 생존의 조건을 위한 공존으로 설명한다.


함께 살아야 한다는 말은 단순한 도덕적 명제가 아니라 생존과 의미의 조건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서로 너무도 다른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중략) 예술은 다름을 제거하지 않고 공존하게 만드는 실험의 장이다. 그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고, 명령이 아니라 제안이며, 정답이 아니라 관점이다.

/ p.125-127 예술의 목적: 함께 살아가는 삶을 위하여


우리는 더 이상 어떤 정체성에 소속되어야만 존재를 인정받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오히려 각자의 경험, 감각, 상처, 지향성에 따라 자신만의 정체성과 삶을 새롭게 구성해 나가는 능력 자체가 주체성의 핵심이 되었다. 그리고 이 전환은 예술이 가장 잘 보여주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 p.142 삶의 주체성 회복


소통을 위한 예술, 그리고 그 다음은?


그래서 예술이 우리 사회의 존속을 위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책에서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제시되지는 않는다. 대신 저자는 공동체적 경험으로서의 예술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앞서 말한 예술을 죽인 두 가지 원인을 제거한 상태라고도 할 수 있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느낄 수 있는 '공동체'의, 학습이 아닌 '경험'.


그 철학적인 방향성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어떻게 쟁취해야 할지를 알고 싶다. 아직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결론을 내리기가 역부족이다. 예술을 사람들이 '경험'하려면, 예술사조를 외우고 미술 기법을 구별하는 것 이상으로 감상하도록 안내받아야 한다. 그 안내는 공교육이 될 수도 있고, 각 기관에서의 직접적인 가이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 느낄 것인가에 대한 교육은 현 시점에서 예술계 사람들에게도, 교육계 사람들에게도, 정책가들에게도 고민의 우선순위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공동체로서 이를 경험하라고 하는 것은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을 예술 작품 앞에 모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양질의 작품이 더 많이 나와야 할 것이고, 예술 창작자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작품을 하면서도 먹고 살 수 있어야 하고, 그렇다면 작품의 평균 값어치가 올라가야 한다. 한편 더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쉽게 접할 수도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작품을 창작하는 창작자의 사이클과, 수용자의 접근성을 어떻게 모두 구현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여전히 여러 물음표가 남아있지만, 이렇게 모호한 부분이 오히려 독자들에게 더 많은 토론과 생각을 독려할 것 같다는 기대감도 든다.


그렇다면 미술 산업은 이와 같은 체험적 예술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단순히 이론만으로 그칠 수는 없다. 전시 공간은 정적인 감상의 공간에서 벗어나 살아 있는 체험의 플랫폼으로 바뀌어야 한다. 음악과 스포츠가 그러하듯, 미술도 몸을 움직이고 감정을 던지게 하는 실천이 될 수 있다. (중략) 그것은 단순 감상이 아니라 온몸으로의 체험이고 공동체적 사건이다.

/ p.230 앎에서 삶으로, 이미지에서 경험으로


***


예술이 사회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지, 그것을 둘러싼 환경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꾸준히 관찰해 온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저자의 의견을 보여주는 하나의 대화록이다. 모든 부분에서 그의 의견에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반박을 하고 싶은 부분에 대해서도 이유를 고민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예술을 좋아하거나 그와 관련된 모든 것, 즉 예술 산업부터 예술 철학까지의 요소 중 하나에라도 관심이 있다면, 분명 이 책에서 나오는 주제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정립해온 바가 있을 것이다.


예술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추천한다, 권한다는 말은 리뷰를 쓸 때면 습관적으로 쓰게 되는 표현이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진심을 담아 적어본다. 만약 예술을 주제로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싶다면, 이야깃거리를 풍부하게 던질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고, 그 생각을 공유해주기를 기대해본다.



아트인사이트 | https://www.artinsight.co.kr

본 포스트는 아트인사이트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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