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오직 당신 자신에게만 진실해진다

도서 <의미들>

by 유정

도서 『의미들』은 미국 시카고에서 나고 자란 작가 수잰 스캔런의 진솔한 회고록이다. 어린 시절의 자신과 끝내 자살 시도를 하고 정신 병원에 입원해 지냈던 시기를 이해하기 위한,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위한 이야기. 누구나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언어화하여 마주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문자화한다는 것은, 내가 쓴 문장을 곧바로 내가 다시 보게 된다는 점에서 '말'과는 또 다른 차원의 행위다. 이 용기 있는 여인의 여정을 살짝 들여다보려고 한다.


의미들_앞표지_띠지.jpg


'_____'의 의미를 묻다


의미들이라니, 두루뭉술한 이 제목에 대해 짚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다. 마음의 고통이 있던 날들, 읽기를 하던 날들과 '의미'는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저자는 단어에 담긴 세밀한 의미들에 대해 끈질기게 고민하는 인물이다. 사람들이 부르는 '미친 여자(mad woman)'라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담기는지, 정신과 의사가 환자에게 제시하는 병적 진단에는 어떤 의미가 담기는지, 그리고 그렇게 전달되는 의미가 다시 그 '미친 여자'와 '정신병 환자'에게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드는지에 대해서 고민한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대상을 호명해야 인지할 수 있고, 인지해야 다른 것들과 구별해낼 수 있고, 구별해내야 그 원인을 추적해 적합한 치료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 제목은 본문을 읽기 시작하면 그 뜻이 제법 명확하지만, 내가 진짜 궁금했던 것은 표지에서 눈에 들어온 영어 원제 Committed의 의미였다. 직관적으로 세 가지 정도가 떠오른다. 죄를 저질렀거나(commit a crime), 자살을 했거나(commit suicide), 혹은 어딘가에 굉장히 헌신적인/사로잡힌(committed) 상태라는 의미가 있다. 처음에는 중의적인 의미를 포함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아마 마지막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후술하겠지만 작가는 '광기'의 성질이 끈질김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한 사람의 내밀한 일기를 엿보다


책은 말 그대로 저자의 일기를 훔쳐보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날 것의 텍스트로 가득 차있다. 타인의 고민을 이렇게 깊고 솔직한 수준으로 들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나 역시도 스스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때면 펜을 들고는 한다. 잔뜩 쏟아내봤자 한 페이지 남짓, 그 이상은 제 풀에 지쳐서 번번이 쓰기를 그만뒀다. 이쯤 했으면 됐다. 힘든데 들여다보지 말고 그냥 털자. 하고 말이다.


그만큼 글쓰기를 통한 분출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멈추지 않고 계속 해온 저자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고민을 완성된 텍스트로 옮겨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노력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게 그녀에게 꼭 좋은 일이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스스로가 또 한 번 적었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병원에 있던 기나긴 나날의 상당 부분을 읽고 쓰면서 보냈다.
꼭 꼬집어 읽고 쓰지 말라는 말은 들은 적이 없지만,
내 방에서, 내 머리에서 나오라는 말은 자주 들었다.
그들은 자주 내가 자신을 고립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고립하지 말라고. 고립함으로써 나 자신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고.
그토록 고립되어 지내니 외로움이나 슬픔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지만 읽고 쓰는 삶은 필연적으로 고립의 삶이다.
그것이 작가들이 하는 일이다.
p.217


나를 표현할 언어를 찾는다는 것


그게 내게는 맞는 말 같았다.
엄마의 죽음이 내 삶의, 내 행복의 끝이었다는 말.
하지만 그건 완전한 진실은 아니었다.
실비아 플라스는 내가 나의 고통을 설명하도록 도와주었다.
내가 도움을 얻기 위해 사용하게 될 것은 언어였다.
p.137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자가 그렇게나 글쓰기에 몰두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녀는 그저 자신이 겪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싶었을 뿐이다. 본인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괴로워하는 것만큼 끔찍한 게 또 없다. 그래서 그냥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싶었던 거다. 그래야 누군가에게 - 어쩌면 자신에게도 - 자신을 납득시키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테니까.


자신이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 이유인 '정신병'이 어떻게 사람을 규정하는지, 그게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탐구했다. 다음은 책에서 언급된 그녀만의 '광기'에 대한 정의다.



p.42
나는 우리가 정신 질환이라는 말로써
의미하는 바의 일부는 이런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으로서는 그러지 않을 수가 없는 일.

p.54
햄릿은 광기를 연기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이 이 극의 핵심 질문이 된다.
햄릿은 미친 것인가, 아니면 미친 척하는 것인가?
누가 그 차이를 알 수 있을까?

p. 149
내가 내 광기를 설명할 수 있다면,
그건 어떤 감정이 끈질기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을 좋은 책이다, 나쁜 책이다 평가하고 싶지 않다. 어쩌면 그의 슬픔에 일부 공감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금도 '일부'라고 강조하는 것처럼, 나는 나의 고민을 자주 드러내지만 그렇다고 아주 깊고 어두운 부분까지 온 동네에 보여주기는 두려운 사람이다.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나에게 어떤 낙인으로 작용할지 무섭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잰은 용기를 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스스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기에 할 수 있었던 글쓰기다. (본인은 그저 살기 위해서 쓰고 싶었을 뿐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평가하고 싶다.) 누군가가 스스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에 써내려간 글에 구태여 나쁜 코멘트를 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다.


글을 읽으며, 가만히 나도 나에 대해서 돌아본다. 그녀의 문장 중에서 나를 표현하고 있는 문장은 무엇인지, 어떤 마음은 나와 다른지 생각하며 알아차리는 시간을 가진다.


내 말의 의미를,

내 마음의 의미를,

내 생각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아트인사이트 | https://www.artinsight.co.kr

본 포스트는 아트인사이트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고 작성되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가 나일 수 있게, 당신이 당신일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