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사람을 기획하는 일>
글을 쓰고 콘텐츠를 제작하며, 나만의 기준을 차근차근 세워온 지도 어느덧 5년이 되었다. 화려하고 잘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한 콘텐츠의 바다에서, 내가 주목하는 기조는 바로 사람 냄새다.
잘나고 화려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쉽게 이목을 끈다. 멋지고 화려한 콘텐츠 속에서 눈에 띄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잘나야 하고, 더 화려해야만 한다. 어쩐지 경쟁만 이어지는 느낌에 피로감이 든다. 다른 세계의 일처럼 느껴지는 거창한 이야기보다, 바로 내 옆에서 일어난대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소박하지만 생생한 이야기에 조금 더 마음이 가는 요즘이다.
겉모습을 넘어 한 사람의 서사를 깊이 들여다보면 세상에 애정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조금이라도 더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데, 이해하면 반드시 조금은 좋아하게 되기 때문이다.
편은지 PD는 KBS 예능국의 PD로서 바로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왔다. 그의 저서 <사람을 기획하는 일>은 그가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온 과정과 그 사랑을 콘텐츠로 풀어낸 시간의 기록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생각보다 고된 일이다. 우리는 타인의 단면만을 보고 오해하거나 거리감을 두고는 한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던 행동 뒤에 숨겨진 이유를 알게 되는 순간, 마음의 벽은 허물어진다.
콘텐츠의 역할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기획자는 출연자가 사랑받을 수 있도록 촘촘하게 판을 짜는 사람이다. 기존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찰나의 진심을 포착하고, 그 빛나는 포인트를 전면에 내세워 시청자가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야 한다.
편은지 PD는 예능 <1박 2일> 제작 당시, 출연자였던 이승기를 향한 팬심 어린 시선으로 그의 매력을 세밀하게 담아내 ‘국민 남동생’이라는 캐릭터를 구축했던 동료 기획자를 언급하며, 기술적인 기획이 아니라 대상의 존재를 긍정하는 다정한 관찰에 주목한다.
기획자가 마주하는 출연진은 분명 저마다의 특색이 있을 것이다. 때로는 숨어 있고, 때로는 빛나지 않는 이들에게서 매력을 발굴해내는 것은 기획자의 의무다. 그리고 이에 대해 편은지 PD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기획자의 질문은 단순히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던지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라는 다정한 메시지를 먼저 건네는 방식입니다. 이것은 출연자의 여린 정서를 보호하고, 동시에 콘텐츠 안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기획 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사람을 지켜보다 보면, 어느 순간 기획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 49쪽, Chapter 1. 사람을 어떻게 ‘본다’는 것인가
스토리텔링이나 브랜딩의 행동 지침은 자칫하면 뜬구름 잡는 소리가 되기 쉽다. 좋은 말들을 모두 모아 한 데 섞으면 그럴듯해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일단 말랑말랑한 에피소드로 독자들을 사로잡은 뒤, “나도 이런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때쯤 당장 콘텐츠에 적용해볼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뚜렷하게 제시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을 울렸던 부분은 ‘기획은 본래 자극적이고 짜릿하기보다 지루한 것임을 인정하자.’라는 문장이었다. 늘 새롭고 강력한 한 방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야 한다는 압박이 존재하고는 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기획의 본질은 화려한 마술이 아니라, 묵묵하고 끈질기게 상대를 탐구하는 성실함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앞으로 콘텐츠 속 인물의 선명도를 높이기 위해, 굳이 묻지 않아도 될 디테일을 하나 더 질문해보려고 한다. 사소한 습관 하나, 말투 한 마디를 더 채워 넣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은 텍스트가 아닌 생생한 사람으로 살아 움직일 거라 믿는다.
이렇게 좋은 가르침을 주었던 수많은 ‘기획자의 메모’ 중 일부를 아래에 공개한다.
보여주기보다 연결하기
1. 사람들은 완벽하게 꾸민 장면보다, 진심이 묻어나는 ‘살아내는 이야기’에 마음을 연다.
2. 내가 만든 콘텐츠(혹은 브랜드)는 사람의 감정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3. 관계가 아니라 외형에 집착했던 순간은 없었는가?
- 31쪽, Chapter 1. 사람을 어떻게 ‘본다’는 것인가 [기획자의 메모]
기획자의 6가지 태도
인내의 태도 → 기획은 본래 자극적이고 짜릿하기보다 지루한 것임을 인정하자.
관찰의 태도 → 트렌드가 아닌 누군가의 표정과 호흡을 지켜보자.
맥락의 태도 → 결과물보다는 어떤 흐름에서 시작되었는지 유추해보자.
실패의 태도 → 실패를 인정하고 혹평을 공짜 피드백으로 기꺼이 받아들이자.
경청의 태도 → 끝내 수용하지 않더라도 진심을 담아 가만히 귀 기울이자.
결단의 태도 → 본질에 집중하며 확고히 결단하자.
- 99쪽, Chapter 2. 사람을 기획하는 태도 [기획자의 메모]
마감에 쫓기고 예상치 못한 변수와 씨름하다 보면, 사람을 좋아해서 시작한 이 일에서 정작 ‘사람’을 잃어버리곤 한다. 좋아함의 에너지는 생각보다 빨리 고갈된다.
<사람을 기획하는 일>은 단순히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대신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이 일 역시 지속 가능하게 사랑할 수 있는 태도를 알려준다. 지난한 과정의 버팀목이 되어줄 ‘사람을 잘 좋아하는 법’이 여기 모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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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트는 아트인사이트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