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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 Jun 02. 2020

최고의 엄마가 뭐 별건가요?

8살 작은 아이는 밥 마니아다. 무엇을 먹더라도 꼭 밥을 먹어야 한다. 외식을 하더라도 집에 와선 꼭 밥을 찾는다. 급한 대로 냉동실에 얼려놓은 얼반을 데워서 김이랑 김치를 싸서 주기도 하고 계란말이를 휘리릭 하기도 한다. 아직은 냉장고에 있는 고춧가루 듬뿍 들어간 음식을 마음껏 먹지 못해서 간이 심심한 음식을 따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     


김치 대신 오이를 썰어주거나 파프리카를 썰어주면 아주 좋아한다. 맵지 않은 배추김치의 줄거리 부분을 송송 썰어주거나 깍두기를 새끼손가락 한마디 정도로 작게 썰어줘도 아주 잘 먹는다. 계란말이도 아주 좋아하는데 야채가 들어간 것보다 계란만으로 만든 것을 더 좋아한다. 계란말이 마지막에 맛술을 넣어 겉을 달달하게 코팅해주면 더욱더 좋아한다.     


오늘 난 속이 더부룩하고 언니와 아빠도 없다. 작은 아이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데 계란도 똑 떨어졌다. 다용도 상자에 보니 아주 커다란 감자가 딱 하나 남아있다. 감자채 볶음도 좋아하는데 오늘은 감자조림을 만들어줘야겠다.     


감자가 아주 커서 보통 감자의 2개 정도 되는 양이다. 햇감자라 칼이 아닌 다용도 수저로 껍질을 긁어내니 아주 잘 벗겨진다. 모양이 우둘투둘한 생강도 수저로 벗기면 칼보다 더 좋다. 도마에 무언가 써는 소리가 들리니 작은 아이가 주방으로 달려왔다. 자기가 해보고 싶다고 한다. 써는 방식을 알려주니 야무지게 잘 썰어낸다. 칼질만 했을 뿐인데도 본인이 만들어 낸 양 뿌듯해한다.     


썰어놓은 감자의 전분을 없애느라 씻어내고 접시에 담았다. 전자레인지에 4~5분 정도 돌려놓고 조림 간장을 만든다. 생감자를 바로 조리는 것보다 전자레인지에 익혀서 조리면 조리시간도 단축되고 물속에서 감자가 뭉개지는 것도 막을 수 있다. 아이는 과하게 양념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간장과 물을 섞고 설탕이나 올리고당을 아주 조금만 섞어 놓는다.     


맛탕을 할 때도 전자레인지를 사용하면 좋다. 고구마를 썰어서 튀겨내는 것이 어려워 맛탕 만들기를 꺼려하지만 먹을 만큼의 양만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전자레인지에 익히고 달달하게 조려 내기만 하면 맛탕도 간편하게 만들 수 있다. 전자레인지에 익히면 수분이 날아가 겉이 마른 듯 익지만 조려내었을 때 부서질 염려도 없다.     


감자조림은 작은 양만 만들 거라서 에그 프라이팬을 꺼냈다. 기름을 살짝 두르고 감자를 넣어 조림 물을 넣고 졸인다. 조림 물이 없어지기까지 3~4분 정도면 된다. 오늘은 설탕 대신 올리고당을 써야겠다. 생협에서 사 온 올리고당을 두르고 1~2분 정도 더 조리다가 참기름 살짝 깨소금 살짝 넣어 마무리했다.     


어렵지 않게 만든 반찬 몇 가지로 최고의 엄마란 말을 들었다. 시어머니께는 좋은 선물을 하거나 용돈을 두둑이 챙겨야만 듣는 소리고 남편 또한 그런 립 서비스는 인색하다. 직장에서는 눈에 띄는 성과가 나와야 최고라는 말을 간혹 듣기도 한다. 하지만 건조한 일로 무장된 사회에서보다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듣는 최고의 찬사는 몇 배 더 값지다. 그 최고가 되는 일 또한 부담스럽지도 않고 말이다.     


자신의 일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해서 좋은 기운을 퍼지게 한다는 말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한다. 내가 무리하게 누군가를 위한 도움보다는 내가 무리 없이 해나가는 일이 나아가 좋은 영향력까지 행할 수 있을 일들을 생각해본다.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즉 좋은 삶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배설되는 결과물들 또한 좋은 것들이 될 수 없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쩌다 얻어걸려 좋은 결과는 낳을 수 있겠지만 지속하긴 힘들다. 우여곡절을 넘기며 살다 보니 최고라는 건 내 삶을 기반해 만들어진다는 걸 깨달았다. 어쩌다 우연히 좋은 결과를 얻는 뜬구름 잡는 희망 대신 내 삶을 아름답게 가꾸고 싶다. 아름답게라고 표현했지만 고통이 따를 수도 있고 치열함이 묻어날 수도 있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진이라고 떠도는 연습벌레 강수진의 발 사진이 그런 아름다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간단히 만들어진 음식에서 내 삶의 치열했던 부분들을 꺼내본다. 소복하게 담긴 음식 접시들 안에서 날카로왔던 내 모습들이 보이기도 한다. 힘듬과 매운맛들이 느껴지기도 한다. 남의나이에서 얻을 수 없는 여러 가지 모습들이 겹쳐 보였다.     


조리가 수훨한 음식으로 최고의 엄마가 되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듣는 말이라 기쁘고 더 값지다. 때론 쓴소리도 하겠지만 이 또한 혹독함이 엄마 됨의 과정이겠지 하고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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