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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 Jun 04. 2020

비 내리는 날엔 역시 부추부침개

작은 부처들을 위한 기도

봄이라 부르기엔 날씨가 제법 덥다. 이제 여름 같은 날씨다. 아침저녁으로 좀 싸늘한 바람도 불지만 한낮에는 더워서 숨이 막힐 지경이다.      

비가 내렸다. 여름 비는 후덥지근한데 봄비라 그런지 살짝 싸늘한 기운도 있다     


저번 주 장에 가서 부추 한 봉지를 사 왔다. 부추는 봄, 여름에 맛이 좋다. 특히 봄에는 초벌부추라고 해서 갓 수확한 부추가 나온다. 여름 이후서부터는 잎이 넓적하고 기다래지는 데 봄에 나오는 초벌부추는 실파처럼 가늘고 생으로 먹었을 때도 부드럽다. 부추가 가장 맛있는 계절이다. 부추와 오이로 소박이를 하기도 하고 좋은 부추 한창일 때 부추김치를 담그기도 한다. 부추김치는 장마 전에 담가놓으면 여름 내내 효자노릇을 톡톡히 한다.    

 

오늘은 초벌부추로 부추전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예전 친정에서는 제사가 잦았는데 밀가루에 부추만 넣어서 부추 부침개를 많이 했다. 전을 부칠 때 엄마 옆에서 먹던 부추전은 종이장같이 얇았다. 쫀득한 맛이 좋아 부치는 내내 엄마 옆에서 입으로 거든 적이 많다.     


엄마의 손맛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잘 먹는 재료 넣어서 만들 생각이다. 

부추를 깨끗이 씻어 약 3cm 정도의 길이로 썬다. 검지 손가락 두 마디 정도가 되겠다. 부추 한 봉지 양이 너무 많아 반 봉지만 썰어 넣었다. 깻잎 스무 장 정도를 씻어 반을 접어 부추의 굵기로 얇게 채설어준다. 꼭지를 기준으로 매끌한 부분이 안쪽으로 가게끔 반을 접어 썰면 잘 썰어진다. 푸릇한 기운만 가득하니 당근도 반 개 정도 얇게 썰어 채친다. 파프리카를 넣으면 색감은 좋긴 한데 나중에 부쳐놓으니 두꺼운 것 같았다. 굵기 조절이 되는 당근이 더 나은 듯했다. 양파도 얇게 채 썰었다. 매운 청양고추와 붉은 고추를 숭덩숭덩 다진다. 우리 집은 작은 아이가 매운 걸 못 먹기에 청양고추 넣기 전 먼저 한두 장 부쳐놓고 고추를 넣는다.     


냉동실에 깐 새우가 있어서 물에 살짝 녹인 후 넣었고 저번 김치전 해 먹을 때 남아있는 갈아놓은 돼지고기도 밑간 살짝 하고 마늘과 후추를 넣은 뒤 살짝 볶아서 같이 넣었다. 오징어나 조개를 넣어도 맛이 좋다. 쫄깃거리는 식감이 좋아 아이들이 좋아한다. 겨울엔 부추가 흐들해지고 맛이 없어지니 단맛이 가득 든 대파나 쪽파에 굴을 가득 넣고 만들어도 좋다. 돈 받고 파는 것도 아니니 제철에 흔한 재료 사다가 좋아하는 재료 듬뿍 넣고 만들면 그만이다.     


오늘 만드는 부추전은 예전 친정에서 먹었던 얇은 전이 아니다. 재료가 많이 들어간 전이라 밀가루를 최소한으로 넣었는데 한 컵 반 정도 넣었고 감잣국 해 먹고 남은 채수가 남아있어서 물 대신 넣었다.     


모든 음식이 맛있고 맛없고는 간에 있다. 부추전은 간장도 찍어먹으니 약간 심심한 듯 만드는 것이 좋다. 소금을 살짝 넣어도 좋고 다시다를 살짝 넣어도 좋다. 평상시엔 다시다를 전혀 사용하진 않는데 시어머니께서 가끔 오셔서 음식을 하시기도 한다. 시어머니 손맛은 다시다로 낸 진국이라 어머니가 오시면 불편하지 않도록 작은 봉지로 소포장된 다시다를 사다 놓는다. 채수가 들어가 다시다로 간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오늘은 다시다로 살짝 간을 맞추었다.     


반죽만 봐도 먹음직 자체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한국자 크게 떠서 수저로 골고루 펴준다. 너무 뭉침이 없게끔 골고루 펴주어야 골고루 잘 익는다. 가장자리의 밀가루가 익어가고 중간중간 불투명한 색이 띌 때 뒤집어 준다. 재료가 많이 있는 부침개는 너무 빨리 뒤집으면 찢어지니 밑면이 바짝 잘 익은 다음 뒤집는 것이 좋다. 부치는 내내 전 냄새가 방에 있는 식구들을 끌어낸다. 재료가 많이 들어가니 비주얼로 아이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집 밖으로 넘쳐난다.     


김치 냉장고에 남편이 사둔 맥주가 남아있다. 전을 부치고 나니 열이 올라 맥주를 보자마자 자동으로 손이 갔다. 아이들은 오미자 청에 얼음 타서 시원하게 만들어주고 남편과 난 맥주를 마셨다. 늦은 밤에는 음식을 잘 먹진 않는데 시원한 맥주와 먹으니 그냥 술술 넘어갔다. 달달한 막걸리도 좋긴 하지만 사러 나갔다 오기 귀찮다. 맥주도 그럭저럭 좋은 친구다.     


좋은 사람들과 먹는 음식은 항상 즐겁다. 식구들이 힘들거나 지쳐 보일 때도 맛있는 음식 한 접시로 기운을 바짝 내줄 수 있다. 공부하는 큰아이의 기운 없는 전화 목소리가 전해질 때 저녁 메뉴만 전해도 박카스 같은 반짝의 흥분을 줄 수 있는 것 같다. 오늘 부추 부침개가 그러했다. 밤늦게 돌아온 식구들의 지친 어깨를 투닥거려 준 듯하다.     




가족의 의미가 내가 아이를 낳았다는 기준보다 서로 살을 부대끼고 살아낸 세월인 듯하다. 나중에야 집 밖으로 나가서 살게 될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품 안의 자식이니 내가 베풀 수 있는 음식으로 공양한다. 작은 부처들을 섬기다 보니 예전엔 거짓말이라고 생각되었던 말들이 진짜 참말임을 깨닫는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고 느린 것이 빠른 것이라는 흔히들 입에 올리는 진부한 말들 말이다. 이런 말들의 진짜 의미가 내 삶으로 들어왔다. 받는 것보다 베푸는 것이 진짜 기쁨인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더 많이 사랑해줘야지라고 마음먹는다. 이남옥 교수는 아이들은 부모가 좋아해 주는 만큼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가 된다고 했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큰아이 티를 몇 벌 사서 방 책상 위에 두었다. 교복만 입고 다닐 때는 옷을 거의 사주지 않았는데 요즘은 공부하러 매일 밖에 나가니 편한 옷들이 필요했고 여름이라 여벌의 옷들이 더 있어야 했다. 아이는 티 한 두벌에 입이 해벌 죽이다. 사춘기 아이라 예쁜 옷 입고 싶어 하고 입술에 하나라도 찍어 바르고 싶어 한다.     


집에 돌아온 식구들의 얼굴을 보니 오늘의 작은 공양은 성공한 듯하다. 힘으로써 우위에 있는 부모가 아니라 덕으로써 내 아이들의 마음을 얻고 싶다. 권위적인 부모가 아닌 권위 있는 부모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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