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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 Jun 05. 2020

엄마라서 미안해

큰 아이가 오래전부터 고기 장조림을 먹고 싶어 했다. 사실 우리 집에선 고기 장조림보다 계란 장조림이나 메추리알로 장조림을 더 많이 만든다. 아직은 반찬을 가리는 작은 아이를 위함이었다. 작은 아이는 특별히 신경 써서 음식을 해주는 것보다 담백한 음식 소위 말하면 양념을 걷어낸 음식을 좋아한다. 아무것도 넣지 않고 계란만으로 포슬포슬 만든 계란찜, 조선간장과 마늘이 들어간 숙채 나물보다는 오이나 파프리카를 생으로 썰어주면 더 좋아한다. 이런 음식도 하루 이틀이지 작은 아이를 위한 밥상을 따로 차리는 것 아니 반찬을 생각해 내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작은 아이는 계란으로 만든 음식은 대체적으로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 계란이 떨어지는 날은 별로 없다. 계란을 이용한 이런저런 음식을 만든다. 계란 또는 메추리알로 만든 장조림을 만드는 날이면 큰 아이는 고기 장조림이 먹고 싶다고 한다. 계란 장조림을 만들 때마다 한 마디씩 고기 장조림 이야기를 하지만 한 귀로 듣고 흘리는 편이었다. 큰 아이는 장조림이 아니더라도 어떤 음식이라도 잘 먹는 편이었다. 굳이 장조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냥 삼겹살이나 목살만 구워줘도 잘 먹는 편이고 볶아줘도 잘 먹는다.      


큰 아이가 자퇴를 하고 공부를 시작하면서 아이의 먹거리가 신경 쓰였다. 작년에 살이 너무 많이 쪄서 다이어트를 했는데 10kg 정도를 감량했다. 우리 부부는 통통이라는 말을  귀엽다는 말로 건넨 건데 본인은 상처로 받아들였다.(난 아직도 그때의 통통하고 여드름 투성이의 큰딸이 너무 이쁘고 그때 모습이 그립다.)  작은 아이에게도 못난이라는 말을 쓰지만 내가 그렇게 이뻐?라는 말로 어깨에 더 힘이 들어가는데 말이다. 큰아이는 왕따, 은따 경험이 있어서 다른 사람이 농담이든 진담이든 조금만 자극해도 깊이 받아들이는 것 같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은 모두 얼굴이 핼쑥해졌다는 인사가 대부분이었다. 아이는 그 말들을 은근히 즐기는 것 같았다. 한창 살을 뺄 때는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먹지 않았다. 안 그래도 큰 키가 아닌데 키가 안 큰다는 협박을 해도 살을 빼는 것이 먼였나 보다. 늘 한 두 숟가락 먹은 다음 배부르다는 말로 밥상을 떠났다. 지금은 하루 한 끼만 잘 먹는다. 올빼미형이라 새벽에 자고 오후에 일어난다. 씻은 다음 공부하러 나간다고 준비하면 보통 2~3시쯤이 된다.     


일어나서 씻을 동안 밥을 챙겨도 입맛이 없다고 얘기한다. 늦게 일어나서 씻고 무슨 입맛이 있겠어라고 아이 뜻을 인정하지만 이대로 가방 메고 나가니 걱정이 든다. 공부는 체력전인데 말이다. 아직은 힘을 바짝 쓸데는 아니니까 괜찮다고 하는데 체력도 공부처럼 누적된 결과물이다.      


예전 고등학교 때 수능을 앞두고 바짝 공부할 때였는데 자주 쓰러졌다.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는 불타는데 앉아있을 체력조차 바닥이 났었다. 그때 생각이 많이 나서 아이가 걱정이 들었다. 아이는 나가서 삼각김밥 사 먹고 에너지 바로 허기를 달랜다. 밤 11시쯤 돌아오는데 돌아올 때 첫마디부터 배고프다고 난리다. 하루 한 끼를 공부하고 돌아온 뒤에 먹는다. 많은 양도 아니고 1/3 공기 많으면 반공기 정도 되는 양이다.     


상황이 이러니 매일 해가 넘어갈 쯤에는 아이에게 무슨 반찬을 해먹여야 하나 고민에 빠진다.  얼마 전 동서가 장조림을 했다며 반찬통으로 하나를 보냈는데 고기만 집어먹는 큰 아이가 생각났다. 고기 장조림을 해야겠구나..

퍼뜩 생각이 들었다.

번거로워서 염두에 두지 않는 음식을 기꺼이 하기로 했다.     

동서네는 식구들이 고기를 좋아하니까 장조림을 자주 해 먹는 것 같았다. 장조림을 했다며 두어 번 보내 준 적이 있다. 고기와 메추리알로 만든 장조림인데 심심한 맛이었다. 자주 해 먹는 음식이다 보니 힘을 뺀 듯 한 맛이다.      


아이가 딱히 말은 한 건 아니지만 해줬으면 하는 장조림은 아롱사태로 만든 장조림이다. 사태나 양지는 국거리로 많이 쓰이는 부위다. 사태는 양지에 비해 기름기가 적다. 아롱사태는 사태 중간중간 근육이나 힘줄 조직이 있다. 오돌오돌 씹히는 맛이 좋다. 아이 초등학교 때 아롱사태로 한 장조림을 해 준 적이 있는데 그 맛이 아직도 머리에 남았나 보다. 가끔 아롱사태 장조림 얘기를 했다.     




본격적으로 음식을 만들기 전 핏물을 빼야 한다. 1~2시간 물을 계속 바꿔주면서 핏기를 빼낸다. 그래야 누린내도 없고 장조림을 만든 후 딱딱해지는 걸 막을 수 있다. 맛의 차이는 양념이 많고 적고의 차이가 아니라 미세함의 차이다.     


채수를 따로 만들고 고기를 삶고 섞어서 사용해야 깔끔한 맛이 난다고 하시는 분도 계시는데 별 차이가 없는 맛이다. 난 물에다 대파와 무, 양파, 생강, 다시마를 넣고 끓이다가 끊기 시작했을 때 고기를 삶았다. 국 요리를 할 때는 찬물에 같이 고기를 넣고 끓이는데 장조림은 고기가 주된 요리라 끓는 물에 고기를 적당히 삶아내기만 하면 된다.     


고기양이 많아서 1시간 정도 삶았다.

고기는 건져냈고 식혀야 한다. 식을 동안 국물을 체에 밭쳐내었다.     

고기를 칼로 썰어내면 문제가 없는데 장조림은 손으로 찢어내야 먹음직스럽다. 사태는 결대로 쪽쪽 잘 찢어지지만 아롱사태는 힘줄과 근육 때문에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 찢어내다가 너무 힘든 부분은 가위와 칼의 힘도 빌렸다. 이제 본격적인 장조림을 만들 시간이다.   



  간장과 육수를 혼합하고 설탕으로 단맛을 맞추면 된다. 간장 베이스 물에 조리는 거라 간장을 짜지 않게 혼합해야 한다. 양조간장이 주된 베이스가 되고 난 집간장과 액젓을 같이 혼합해서 사용한다. 내 취향을 조금 가미해 너무 달지 않게 만들었다. 2/3쯤 조려졌을 때 메추리알을 넣었다. 메추리알은 작은 아이를 위한 거다. 작은 아이를 위해 메추리알은 조려진 즉시 반찬통에 따로 담아냈다. 마지막에 살짝 매콤한 꽈리고추를 넣었다. 매콤한 맛이 순간의 느끼함을 잡아주기도 한다. 순식간에 훅 익어버리기 전에 고추 색깔이 변하는 시점에 불을 끄고 뚜껑을 열고 식혀야 한다.        


 


새로 지은 쌀밥을 준비했고 장조림과 함께 먹을 오이지를 담아냈다. 늦은 밤이지만 아이를 위한 첫끼를 만들었다.      




아이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때는 잘할 수 있을까 우려를 나타내며 이야기했다. 자주 만나는 지인은 역시 OO 답다는 용기를 줬지만 난 회의적으로 답했다. 내가 잘난 척하며 내 딸이 이것도 저것도 잘한다고 자랑하면 오히려 좋은 기운이 안 좋은 기운으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혹시나 아이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경우 그렇게 설치고 다닐 때부터 알아보았다는 따가운 시선을 막아낼 방어막 같은 거다. 아이에게는 용기를 주고 잘되었다는 말을 건네도 타인에게는 회의적으로 말하는 말 같지 않은 작은 이유이다. 아이는 혼란스러워한다. 본인에게 말하는 것과 타인에게 말하는 것들이 다르니 말이다.


엄마라서 미안해. 지금은 너를 지켜낼 힘이 없는 것 그리고 항상 별처럼 반짝이는 아이로 자라길 응원하지만 이렇게 이중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 모두 다 말이야.....


친정엄마를 많이 원망하며 아이를 키워냈지만 나 또한 자식이라 그 깊은 속을 들여다보지 못했던 부분이 있을 게다. 뿌린 대로 나는 받았다.     


본인은 안 했던 공부를 몇 시간 동안 왕창 하는 중인데 해야 할 것들을 언급하면 큰 부담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목에까지 차오르는 말들을 아끼려 한다. 특히 공부에 대해서는 말이다. 대신 지치지 않도록 좋아하는 음식들로 한 끼를 온전히 담아낼 생각이다.  이 한 끼의 의미를 언젠가 아는 날이 오겠지.....     




사진출처 https://media.dongwon.com/post/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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