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나 Apr 29. 2020

명상이 별거냐~

분가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침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멸치 내장을 제거하는 일 일명 멸치 똥 따는 일이었다. 시할머니께서 계셨고 치아가 거의 없었다. 남편 또한 국물 음식을 좋아한다. 남편은 그렇다 치더라도 치아 없는 할머니의 식단에 국물이 빠질 수는 없었다. 매일 육수를 내고 국, 찌개를 끓이는 일이 큰일이라면 큰 일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주말 토요일 어머니께서 집에 계실 때는 주방을 지휘하시도록 난 보조 역할만 했다. 보통 어머니는 조미료 특히 소고기 다시*를 애용하셔서 국물음식이라도 순식간에 마법처럼 완성된다. 나도 사용을 안 해 보려고 했던 건 아니다. 어머니 곁에서 많이 봐와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끊여내면 맛이 이상했다. 내가 끊여낸 조미료 국이나 찌개는 대부분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직행해야 했다. 조미료 사용이 서툴러 국을 끓이려면 매일 육수를 끊여야 했다.

매일 끊여서 그런지 육수 냄새가 그리 역하지 않은데 일주일 한번 들어오시는 아버님은 육수 끊이는 냄새가 싫으신 것 같았다. 그래서 주말을 제외하면 멸치 똥 따는 일부터 일과가 시작되었다.     



책을 한창 읽고 있을 때 일이다. 독서 모임에서 아침시간이 멘털에 영향을 주는 최고의 시간이라면서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들을 사람들에게 물었다. 책을 읽는다는 사람, 요가를 한다는 사람, 명상을 한다는 사람....... 나의 대답 시간이 주어졌다.

“멸치 똥 따는데요.”

“그러면 안돼요, 빛나 님. 아침시간이 얼마나 정신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요. 왜 하필 그 소중한 아침시간에 멸치 똥을 따세요. 이제부터는 아침시간에 멸치 똥 따시면 안 돼요.”     



아......

당시 힘든 순간들을 억지로 매치가 되면서 내가 짜증 나고 힘든 일들이 아침에 멸치 똥을 따는 일 때문이었나 라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알았다 다짐하고 다음날부터 실천을 하려 했지만 매일 해온 루틴 때문인지 쉽게 고쳐지지가 않았다. 밤에 하고 자려해도 밤에는 서너 살배기 작은 아이가 잠이 오는지 잠투정 비슷한 짜증을 내는 경우가 잦았다. 가끔 노 할머니께 부탁드리기도 하지만 내가 해왔던 일들을 남의 손에 맡기는 것도 시원찮았다. 결국 멸치 똥을  제거하는 다른 이외의 것들로 아침시간을 채워지지 못하고 시댁을 나오기 전까진 아침 기상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시댁에서 분가한 지 2년이 넘었다. 분가하고 몇 달 후부터 일을 시작했다. 체력이 썩 강하지 못해서 집에 오면 늘 자기 바빴다. 1년간은 정말 몸도 마음도 힘이 들었다. 국이나 찌개 없이 밥을 못 드시는 시댁 어른들을 닮아선지 남편도 국물 음식을 선호한다. 하지만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찌개나 국을 위해 매일 두 어 시간을 사용할 수 없었다. 직장을 다니고부터는 어쩌다 날씨가 너무 추울 때라든지 식구들이 찾을 경우를 제외하면 김치나 다른 밑반찬 정도로 밥상을 차렸다.     



사실 멸치 똥 딴다는 일은 멸치 몸통에서 내장을 분리하는 일이다. 내장이 들어가면 육수에 쓴맛이 우러나기 때문이다. 멸치 내장을 제거하는 일을 해보면 알겠지만 그냥 몸통과 내장을 단순하게 분리하는 일이다. 그냥 무념무상이 된다. 내가 신경 쓰는 일을 내장과 몸통을 분리하는 일 그 한 가지다. 잡생각이 사라진다. 명상이 별일인가... 머리에 잡생각을 지우는 일이 아닌가... 멋진 음악이라도 틀어놓고 폼나게 해보기도 했지만 사실 음악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내장을 제거하는 일에만 전념하게 된다. 단순 노무이니 귀는 열어놓고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하다 보면 몸통 살 놓을 자리에 똥이 가있기도 하고 똥을 제거하지도 않은 멸치가 가 있기도 했다. 듣는 음악이나 방송도 흐름을 놓치고 멸치 똥도 제대로 제거하지 못해 손이 두 번 가는 일이 생겨서 그냥 그 한 가지 일에만 몰두했다.     



휴직 중인 현재는 아침에 노트를 펴거나 노트북 여는 일로 시작한다. 예전에 멸치를 박스채로 사면 너무 많아서 지퍼락에 옮겨 담아 쓸 양만큼 다듬어 쓰곤 했는데 요즘엔 가격도 많이 오르고 박스 멸치의 상자 크기도 많이 작아졌다. 사자마자 박스 채 다듬어 놓고 볕 좋은 베란다에 살짝 말려놓기도 하고 날씨가 좋지 못하면 기름 없는 팬에 달달 볶아서 열기만 빼고  냉동실에 보관한다.

멸치가 영 귀찮다 싶으면 디포리를 구매하기도 했다. 디포리는 내장이 거의 없는 생선이기 때문에 똥 따는 일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요즘은 다시 국이나 찌개를 끓여낸다. 요즘 국물 낼 때는 섞어서 사용하는데 같이 사용하면 구수한 맛과 단맛, 감칠맛이 더 좋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육수를 베이스 삼아 국이나 찌개를 끓여냈다.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되었다. 멸치 똥 제거하는 일을 아침마다 한다는 무시 비슷한 것도 받았지만 이제는 그런 시답지 않은 말엔 신경이 쓰이진 않는다.      

국물요리의 가장 기본은 밑 국물이다. 된장찌개를 끓여도 김치찌개를 끓여도 말이다. 맛있는 맛이라고 혀가 알아채는 건 국물 맛이다.

그 국물 맛을 내기 위해선 가장 하찮은 일부터 해야 한다. 내장을 제거하고 비린내를 날리고 오랜 시간 우려내야 한다. 그 위에 김치를 얹으면 김치찌개가 되고 고추장을 얹으면 고추장찌개가 완성된다. 베이스만 탄탄하면 맛있는 국물 요리로 완성은 식은 죽 먹기다.


     

어느 누구나 그 밑바탕 다듬는 일이 가장 귀찮아하고 천대받기 일쑤다. 맛집 소개하는 프로그램들의 조리과정을 보아도 정말 하찮은 일에 공을 들인다. 초밥을 찍어먹는 간장 하나 완성시키기 위해 1년을 기다리고 불고기 간장 베이스를 숙성시키는데 2년이라는 시간을 내어준다.

시간이라는 조미료가 더해져 더 풍부한 맛을 선사한다. 그 맛을 잊지 못해 맛집 앞에서 줄을 서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감수한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조차도 설렘이다. 식당의 셰프에게 보내는 최고의 찬사이기도 하다.  


   

멸치 똥을 제거하는 일, 통마늘을 사서 껍질을 제거하는 이런 하찮은 시간까지 음식 맛을 표현해준다. 참으로 정직하게 말이다. 그래서 난 맛있는 맛 내기를 좋아한다. 하찮음을 위해 내 시간들을 많이 내어준다. 그것을 얻는 과정들이 참으로 근사하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 신안 바닷가에 가서 토판염을 사러 갔다. 1년 된 소금과 5년 이상 묵은 소금의 가격 차이는 몇십 배였다. 몇십 배, 아니 몇 백배의 값어치를 하는 물건임을 알기에 망설임 없이 몇 년 먹을 양을 구매했다. 하찮은 아이들이 시간을 더해 귀한 값이 매겨진다. 묵힘의 시간을 돈으로 구매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얼마 전 큰 아이가 겨울왕국을 보고 어떤 캐릭터가 제일 마음에 드냐고 했다. 별로 생각해보지 않아서 글 쎄라는 말을 연신 내뱉었고 머릿속은 계속 겨울 왕국 캐릭터들로 맴돌았다. 멋진 엘사와 안나, 올라프, 크리스토퍼.....     

“엄마, 난 불의 정령이 가장 마음에 들어. 영화의 나오는 엘사는 화려하고 눈을 뗄 수가 없게끔 아름답지만 난 작고 하찮은 캐릭터들이 눈에 더 띄어. 그리고 그것들과 사랑에 빠져.”

하찮은 것을 것들이 진짜 힘이 있다는 걸 어린 나이에 벌써 알아차리다니 마흔이 넘은 나보다 낫다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